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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인의 이별 소식을 들었는데, 그 이유가 다소 황당했습니다. 갈등의 원인이 ‘청바지’였거든요. 여자친구가 말도 없이 남자친구의 청바지를 세탁해버린 겁니다. 옷 좀 세탁한 게 무슨 이별 사유까지 되냐고요? 이 글을 끝까지 읽어보신다면 조금은 수긍이 가실지도요. 청바지만큼 사연 많고 낭만적인 아이템도 없으니까요. 게다가 그게 빈티지 리바이스 501이라면 더욱이요!
이름을 갖게 된 노동자의 옷
19세기 후반 미국, 독일 출신 유대인 리바이(Levi)에 의해 서부의 광부들을 위한 튼튼한 작업복으로서 탄생한 리바이스 501. 구리 리벳을 활용한 디자인 특허가 만료되기 전, 자신의 제품을 차별화하고자 당시 데님 원단을 보관하던 창고 번호 501에서 착안해 제품에 이름을 붙이면서 청바지의 대명사 ‘리바이스 501’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20세기 초부터 501은 지속적인 변화를 통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청바지의 원형을 갖추게 됩니다. 1901년에는 도구를 더 많이 수납하기 위해 뒷주머니가 하나에서 두 개로 늘어나 현재의 5포켓 디자인이 완성되었으며, 1922년에는 벨트 고리가 추가되어 멜빵 대신 벨트를 사용하는 추세를 반영했습니다. 1937년에는 가구나 안장에 흠집을 내던 뒷주머니의 리벳을 숨기는 '히든 리벳'이 도입되었죠. 청바지를 구매할 때 뒷주머니에 달린 종이 태그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것도 501에서 시작됐습니다. 히든 리벳 도입 후 소비자들이 리벳이 사라져 품질이 떨어졌다고 생각할까 봐 “리벳은 여전히 있습니다(The Rivet’s Still There)”라는 메시지가 적힌 종이를 뒷주머니에 달아 판매했거든요.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물자 절약 규제에 따라 구리 리벳이 철로 바뀌고, 바늘의 땀수도 적어지는 등 디테일이 간소화되기도 했습니다. 전쟁이 청바지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새삼 오묘합니다.
전쟁이 끝난 후, 작업복의 상징이던 청바지는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합니다. 1954년에는 동부 지역 소비자들의 취향을 반영해 지퍼를 장착한 '501ZXX' 모델이 출시되었으며, 제임스 딘, 말론 블란도 같은 영화배우들이 501을 입고 등장해 인기를 끌게 됩니다. 나아가 전설적인 1968년 우드스톡 페스티벌에 참가한 청년들이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거부한다는 의미로 정장 대신 청바지를 입으면서, 청바지는 문화적 위상을 갖춘 아이콘으로 등극하게 되죠. 아니, 그래서 고작 청바지 때문에 헤어졌냐고요? 일단 더 들어보세요.
취한다, 청바지의 낭만
1980년대 중반 이전까지의 501은 셀비지 생지 데님 원단을 사용했습니다. 셀비지 데님은 정교하고 섬세한 방법의 전통적인 직기를 활용해 내구성이 뛰어난 것은 물론, 시간이 흐를수록 착용자의 생활 방식에 따라 마찰과 주름에 의한 에이징(aging)이 발생합니다. 주머니에 지갑이나 담뱃갑을 자주 넣는 사람은 그 모양대로 색이 빠지면서 유니크한 디테일을 갖게 되죠. 또한 생지 데님은 사전 가공이 없는 원단이기에 세탁 시 염료가 급격히 빠지고, 사용자의 몸에 맞게 사이즈가 변형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즉 자신의 의도대로 에이징을 하기 위해서는 세탁의 주기를 최대한 길게 유지해야 합니다. 청바지 마니아들이 세탁에 예민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죠.
그러나 1983년 이후, 리바이스가 글로벌 확장을 위해 대량생산 체제를 도입하면서 생산 효율이 낮은 셀비지 데님은 자연스럽게 일반 데님으로 대체되었습니다. 501 특유의 품질과 디테일을 단순화하는 리바이스의 행보에 아쉬움을 느낀 소비자들이 있었죠. 신기한 건 그 소비자들이 미국이 아닌, 일본에 있었다는 겁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대중문화는 일본에 빠르게 스며들었습니다. 패션도 예외는 아니었죠. 특히 데님은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청바지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리바이스 501 같은 빈티지 데님이 희귀하고 가치 있는 아이템으로 인식되면서 직접 미국을 찾아가 실제 광부, 카우보이들이 입었던 오리지널 데님을 수집하는 마니아들도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리바이스 초기 모델들은 미국에서도 점차 사라지고 있는 상태였기에 빈티지 제품을 복각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납니다.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이 더해져 단순한 복제품이 아닌 원단, 실, 봉제 방식까지 철저하게 복각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었죠.
특히 70년대 일본에서 아메카지(American Casual) 스타일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빈티지 리바이스를 연구하고 복각하는 것이 유행을 넘어 문화로 자리잡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오사카를 중심으로 다섯 개의 복각 데님 브랜드가 설립되는데, 이름하여 ‘오사카 파이브’라고 불리며 전 세계 데님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는 곳들이죠. 풀카운트, 웨어하우스, 드님, 스튜디오 다치산, 에비스까지 한번쯤 다 들어보셨을 겁니다. 더 재밌는 건 일본 시장에서 일어난 이 복각 열풍 덕에 리바이스가 자신들의 초기 제품들을 복각하는 LVC(Levi’s Vintage Clothing)라인을 출시하게 되었다는 것. 해당 연도에 출시된 제품의 특징을 복원하여, 1937년 출시된 것은 ‘37501’, 1966년 출시된 것은 ‘66501’ 등으로 불립니다. 데님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오사카 파이브를 위시한 복각 브랜드와 LVC 제품들을 비교하는 논쟁이 늘 뜨겁게 벌어지곤 합니다.
청바지에 진심인 이들이 그토록 많은 이유는, 청바지가 다른 어떤 옷보다도 입는 이의 모습을 닮아가는 옷이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내 일상의 무늬가 오롯이 새겨진 삶의 축소판과도 같으니까요. 게다가 501의 탄생을 떠올려 봅시다. 세상 그 누구도 작업복에 이름을 붙이지 않습니다. 브랜드도 궁금해하지 않고요. 하지만 501은 광부의 작업복으로 태어나 고유한 이름을 갖게 되었고, 100년도 넘는 시간 동안 불멸의 클래식으로 자리잡았으니 마니아들의 가슴이 웅장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요?
글쎄.. 아직도 잘 모르시겠다고요?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조금씩 경험해보는 수밖에요. 여러분이 직접 501의 주인이 되어보는 거예요. 특히 Rigid 모델은 생지 보다는 관리 부담이 적으면서도 입으면서 길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입문자들에게 추천합니다. 하단의 링크에서 여러분의 시간을 함께 할 501을 선택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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