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KOLONMALL. ALL RIGHT RESERVED
인생에서 가장 요상하고 요란한 장마를 겪고, 8월이 왔습니다. 물속을 걷는 것만 같은 미친 습도와 마른하늘에 쏟아지는 폭우를 경험하며 “기후 위기”라는 말이 피부로 느껴지는 날들인데요,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end가 아닌 and를 위해, 깨어나라 환경 감수성! OLO매거진이 알아두면 쓸 데 있는 환경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EU 기후행동 친선대사 줄리안을 만났습니다.
@aboutjulian 인스타그램 캡처.
JTBC '비정상회담', '톡파원 25시' 등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방송인이기도 한 줄리안은 이태원에서 제로웨이스트샵 '노노샵'을 운영하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강연, 인터뷰, 플로깅 등 환경을 위해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알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환경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방송을 통해 얻은 목소리를 활용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시선과 관점을 제시해줄 줄리안의 이야기를 OLO매거진에서 만나보세요.
여름방학이나 휴가를 맞아 여행을 떠나는 분들이 많은데요, 여행을 더 풍성하고 의미 있게 만드는 줄리안만의 방법이 있나요?
저는 ‘슬로우 여행’에 관심이 많아요. 슬로우 여행은 여행의 속도를 늦추고, 각 순간을 깊이 있게 즐기는 것을 목표로 하는 여행이에요. 목적지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목적지에 도달하는 과정 자체까지도 여행의 일부분으로 여기며, 그 과정에서 얻는 작은 경험들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제가 어릴 때, 스페인에 있는 할머니 댁으로 여름 휴가를 가기 위해 아빠 차를 타고 긴 여정을 떠나곤 했어요. 차 안에서 만화책을 읽고, 워크맨으로 카세트테이프를 들었죠. 종종 휴게소에 멈춰 놀던 추억들도 있고요. 저에게는 그 여정도 여행의 일부였고, 늘 기대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반면에 요즘엔 이동하는 과정 자체를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강해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도착한 곳들이 출발지와 얼마나 다른지, 실은 잘 모르겠어요. 어디에나 있는 스타벅스와 대형 패션 브랜드, 백화점이나 쇼핑몰, 또 비슷비슷한 호텔과 리조트 같은 것들이요. 이국적이지 않은 이국이라고나 할까요?
슬로우 여행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하게 소개해주시겠어요?
슬로우 여행은 말 그대로 여행을 조금 더 느리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한 곳에서 더 오래 머물면서 그 지역의 일상생활을 경험하고 느끼는 것 역시 슬로우 여행의 특징입니다. 예를 들어, 비행기를 타는 것보다는 기차나 배를 이용해 이동 시간을 늘리고 그 시간 동안 주변 풍경을 즐기며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죠. 또 도착 이후에는 주요 관광지만 급히 돌아보는 대신, 로컬의 문화에 녹아들어 현지인들과 소통을 해보기도 하고요.
사실 휴가철이 되면 SNS에 바다나 해외여행 사진이 정말 많이 올라오잖아요? 그걸 보면 여행 생각이 없던 사람도 여행에 대한 욕구가 생겨나고요. 세계 곳곳을 여행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여행 없이도 인생을 가치 있게 보낼 수 있을까?’라고 자문하게 되고, 왠지 해외의 여러 나라와 좋은 명소들을 가야만 성공한 인생을 사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죠. 여행을 하나의 권리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요. 사실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가게 된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요. 진짜 문제는 이 ‘여행할 권리’가 생각보다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거예요. 그래서 세계 곳곳의 많은 이들이 지속 가능한 여행을 꿈꾸고 실천하고 있어요. 슬로우 여행은 그 맥락에서 나온 이야기이기도 해요.
슬로우 여행이 지구에 이로운가요?
네, 슬로우 여행은 비행기 이용을 최소화하고 대신 기차나 배와 같은 더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을 이용함으로써 탄소 배출을 줄이자는 목적을 담고 있으니까요. 비행기는 이착륙 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기에 비행기의 이용 빈도를 줄이는 것도 환경 보호에 큰 도움이 돼요. 실제로 2017년부터 스웨덴에서 ‘flight shaming’ 운동이라는 게 시작됐는데, 비행기 타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거예요. 불가피한 경우 비행기를 탈 수 있지만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보다는 약간 부끄럽게 느끼자는 거죠. 이 운동 이후 비행기 이용 횟수가 줄었다는 통계도 있어요.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기차로 2시간 반 내에 이동할 수 있는 지역엔 국내선 운항을 금지하기도 했고요.
많은 학자들이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이상 올라가는 시점을 더 이상 되돌아갈 수 없는 임계점으로 보고 있어요. 이를 위해서는 2050년까지는 세계인이 모두 1인당 탄소 배출량을 2톤으로 줄여야 한다고 해요. 인천에서 뉴욕까지 가는 항공기가 한 번에 배출하는 탄소가 약 1톤 정도라고 하니, 비행기의 탄소 배출량이 얼마나 되는지 감이 잡히시나요? 반면 기차는 비행기보다 최대 25배 적은 탄소를 배출해요. 우리가 여행을 통해 남기는 탄소 발자국을 줄일 수 있어요. 슬로우 여행이 조금 더 환경에 친화적일 수 있는 이유죠.
또한 슬로우 여행은 지역 경제를 더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해요. 대형 리조트보다는 작은 로컬 숙소를 이용하고, 현지 음식을 소비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관광 생태계를 만들죠. 단순히 멀리, 세계 반대편의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것만이 아니라, 여행의 전체 과정과 경험 속에서 새로운 즐거움과 깨달음을 얻는 것이 진정한 여행의 의미라는 것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이나 벨기에에서 슬로우 여행을 즐기기 좋은 여행지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한국에서는 순천의 순천만 습지, 담양의 죽녹원도 추천하고 싶어요. 기차로도 갈 수 있는 곳들이기도 하니까요. 조금 더 멀리 간다면, 제주도 한림항을 추천드려요. 한림항에는 분위기 좋은 장소들이 많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 좋습니다. 풍력발전소 단지 해안가에서 사진을 찍기도 좋고, 곶자왈에서 자연을 만끽할 수도 있고요. 한림항에 있는 비건 카페 ‘앤드유’는 꼭 방문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벨기에에서는 겐트를 추천합니다. 겐트는 벨기에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도시로, 시내 대부분의 도로에 자전거 전용 도로가 설치되어 있어서 차를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중세 도시의 매력을 즐길 수 있어요. 이탈리아의 풀리아 지방 해안가 소도시나 폰자 섬에서 며칠 지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아름다운 바다와 맛있는 음식, 아기자기한 로컬 풍경들이 느린 여행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줄 거예요.
“어디에 꼭 가야지만 휴가인 건 아닌 것 같아요. 어디에 있든, 어떤 마음으로 있느냐가 중요하죠.” 얼마 전 유튜브 예능 핑계고에 출연한 배우 전도연 씨가 휴식에 대해 언급한 대목이 떠올랐어요. 이국적인 풍경, 호화로운 숙소, 인생샷이라고 불리는 사진들만이 휴가나 여행의 충분조건은 아닐 테죠. 여행이 우리의 삶을 넘어 지구에는 어떤 발자국을 남기게 될지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 기후 위기 시대를 지나는 지금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요?
이태원에 위치한 제로웨이스트샵 ‘노노샵’을 운영하며, EU 기후행동 친선대사로서 다방면의 환경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첫번째 댓글을 달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