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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패킹은 불편하고 부족하지만 배낭 하나 짊어진 채 자연과 가장 가까이 가는 여정이다. 길 위에서 대자연의 일부가 되어보면 평소 내가 얼마나 많은 문명의 이기들에 둘러 쌓여 있는지 깨닫는다.
“겨울에는 춥고 위험하지 않나요?”
춥다. 그렇기에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왜 사서 고생하나요?”
고생하는게 아니라 고치는 과정이다. 자연의 품은 지친 이들을 위로해주고 다친 곳을 낫게 하는 힘이 있다.
“혼자 다니면 외롭거나 무섭지 않나요?”
외로워서 백패킹을 간다. 자연은 우리를 외롭게 하지 않으니까. 사람이 무섭지, 자연은 무섭지 않다.
제주도 비양도와 통영 수우도 해골바위 풍경.
백패커들도 봄, 여름, 가을에만 계획을 잡는 경우가 많다. 동계 백패킹을 마음 먹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동계, 극동계 백패킹은 백패커들에게 두려움이자 로망의 대상이다.
먼저 동계와 극동계의 기준을 알아보자. 동계는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겨울, 극동계는 그 중에서도 가장 추운 겨울이라고 할 수 있다. 추위를 느끼는 정도가 개인마다 다를 수 있기에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기 어렵겠지만 일 최저기온을 기준으로 구분하면 될 것 같다.
*동 계 : 최저 온도 0ºc ~ -15ºc (12월~2월)
*극동계 : 최저 온도 -15ºc ~ -25ºc (1월 초중순)
자연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겸손하게 접근함이 옳다. 그러므로 기상청 예보의 최저 온도를 참고해 박지(텐트를 설치하고 잠을 자는 곳)의 기후 조건을 꼼꼼하게 계산해야 한다. 예를 들면, 강원도 선자령은 11월 중순만 되도 극동계가 된다. 기상청에서 선자령이 포함된 대관령면 전체 평균 최저기온을 -5ºc라고 예보하더라도, 실제 선자령은 대관령면 해발고도 보다 500~600m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실제 기온은 -10ºc(*100m 단위로 1ºc 내려감)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그곳은 평균 15m/s 바람이 항상 부는 곳이기에 체감 온도는 -15ºc에 이르는 셈. 이렇게 지역별로, 높이별로, 풍속별로 온도가 달라지므로 박지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는 것과 이에 맞는 장비를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자령 정상( -12ºc, 2023년 11월18일)과 이천 남한강 합수부(-10ºc, 2023년 12월23일).
그렇다면 극한의 겨울이 선사하는 감동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떤 장비가 필요할까? 백패킹은 말 그대로 배낭 안에 입을 것, 먹을 것은 물론 수면을 위한 장비까지 다 넣고 다니는 것. 고로 장비 선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성비(무게 대비 성능)와 부성비(부피 대비 성능)라고 할 수 있다. 동일한 기능이라면 무게가 더 가볍고, 부피가 더 작은 장비가 좋다. 그럴수록 가격은 비싸진다는 함정이 있지만. 필자가 실제로 사용하는 장비들을 위주로, 주요 장비들에 대해 소개해보고자 한다.
텐트
텐트는 눈,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차디찬 겨울밤을 견디려면 한강이나 계곡에서 쓰는 피크닉용 텐트로는 어림 없다. 강한 바람을 견딜 수 있는 구조와 소재를 갖춰야 한다.
코오롱스포츠 에어로라이트2P가 설치된 모습이다.
필자는 코오롱스포츠의 에어로라이트 2를 사용한다. 지난 겨울 선자령에서 20m/s 이상의 바람도 버텨냈을 정도로 튼튼하다. 튼튼하다고 해서 무거울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팩/가이라인 등의 부속품을 다 포함하고도 무게가 2kg를 넘지 않는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백패킹은 가벼울 수록 좋다. 에어로라이트 2는 두 겹으로 된 더블월(double wall) 경량 돔형 텐트로, 설치가 간편한 자립형 폴 구조로 되어 있다. 동계 텐트의 기본을 다 갖춘 텐트다. 혹자는 한 겹으로 된 싱글월(single wall) 텐트가 가볍고 결로현상을 줄여줄 수 있어 더 좋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큰 차이는 없다. 동계에는 밤사이 텐트 내부 천정의 결로가 얼어서 눈 처럼 떨어지기도 하는데, 더블월의 경우 이너 텐트가 이를 막아주기도 한다.
침낭
백패커의 체온을 지켜주는 제일 중요한 장비가 바로 침낭이다. 동계 침낭은 대부분 필파워 700+ 이상의 구스 다운을 사용하고, 다운 충전량은 800~1,500g 정도다. 침낭의 내한 온도*는 Comfort, Limit, Extreme 3단계로 나누어 표시되는데, Comfort는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도 편안하게 잘 수 있는 온도를, Limit는 추위에 덜 민감한 사람이 약간 웅크리고 잘 수 있는 정도의 온도를 가리킨다. 마지막으로 Extreme은 죽지 않을 정도의 온도를 말한다. 즉 잠을 잘 수 없다는 얘기다.
*겉옷 또는 다운자켓을 입고 텐트 내에서 견딜 수 있는 온도
고로 평온한 밤을 위해서는 박지의 최저 온도가 침낭의 Comfort와 Limit 범위 안에 들어가는지 확인해야 한다. 침낭 충전재인 구스 다운이 필파워가 높고, 충전량이 많을 수록 Comfort-Limit 구간은 낮아지기에 더 추운 온도에서도 편안하게 잘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알아야 하는 사실이 있다. 구스 다운은 인류가 발견한 최고의 보온재료이지만 수분에는 취약하다는 것. 침낭 안팎의 온도차이로 침낭 안쪽에 결로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그로인해 다운이 수분을 먹어버리면 보온 기능은 30% 이상 떨어진다. 많은 장비회사들이 자신들이 사용한 다운이 수분을 덜 흡수한다고 광고하는 이유다.
필자가 사용하는 침낭은 동계, 극동계 겸용으로 그루찌백의 ‘바이오포드 다운 하이브리드 아이스 익스트림 190W’ 이다. 필파워 800+ 구스 다운에 특별한 양모를 추가했다. 그루찌백의 양모는 다운의 습기를 흡수하고 배출하기 때문에 결로로 인한 열손실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써머레스트 파섹 -18CR은 동계용 침낭이다. 극지방이나 고산 원정시 사용하는 극동계 침낭은 아니다. 시중에는 Limit가 -30ºc, -40ºc까지 되는 극동계 침낭도 있다. 하지만 일 년에 몇 번 안되는 극동계 백패킹을 위해 별도의 침낭을 준비하는 건 그리 효율적이지 않다. Limit가 -10ºc ~ -15ºc인 침낭으로 동계 백패킹을 충분히 즐기고, 최저 기온 -15ºc ~ -25ºc의 극동계 백패킹 시에는 침낭 안에 ‘라이너’를 착용 하거나 ‘핫팩’의 지원을 받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방법일 것.
매트
침낭만으로 시린 겨울밤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침낭의 윗면은 다운이 냉기를 차단해주지만, 바닥은 체중에 눌려 침낭 속 다운 공기층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막아줄 매트가 필수인 이유다. 매트의 단열 수준을 이야기할 땐 R-value 기준을 활용한다. R-value가 높을 수록 단열 성능이 높다. 동계용 매트의 권장 R-value는 4~5 정도. 눈 위나 얼음 위에 텐트를 설치하는 경우에는 R-value 5 이상을 추천한다.
추위를 많이 느끼는 사람이라면 위 기준에서 R-value를 1단계 높여 선택하면 된다. 필자가 주로 사용하는 매트는 코오롱스포츠 마루190 매트(R-value 3.6)다. 동계에는 발포매트(R-value 1.5)를 먼저 깐 뒤 마루190 매트를 그 위에 둔다. 백패킹은 노지, 바위, 자갈밭 등 바닥이 고르지 않은 곳에 텐트를 치기에 발포매트를 먼저 깔아야 본 매트의 손상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두 매트를 겹쳐 사용함으로써 R-value가 5.1로 높아진다. R-value가 5 이상이면 극동계까지 사용 가능하다.
배낭
동계 백패킹은 다른 계절에 비해 챙길 짐이 많다. 침낭의 부피가 커지는 것은 물론, 방한을 위한 의류와 장갑, 미끄러운 눈길, 흙길 위를 안전하게 걷기 위한 스패츠, 아이젠 등의 물품도 챙겨야 한다. 이런 사유로 동계 백패킹 배낭으로 80리터, 심지어 100리터 배낭을 추천하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다. 배낭이 크면 그 크기대로 배낭을 채우기 마련이다. 총 무게가 20kg이 훌쩍 넘는 경우도 발생한다. 아무리 동계라고 하더라도 하더라도 물과 음식을 제외한 총 중량을 10kg 이내로 조정하는 것이 좋다. 필요 이상의 크기와 무게는 순탄한 여정을 방해하는 욕심이다. 배낭에 장비를 맞추는 지혜가 필요하다. 어떻게 짐을 꾸릴 때 이 배낭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수록 백패킹에 대한 애정과 지식도 깊어진다.
배낭에 담는 것도 가볍고 부피가 작아야 하지만 배낭 자체도 가벼워야 한다. 되도록 배낭 자체의 무게는 2kg을 넘지 않는 것이 좋다. 필자는 코오롱스포츠 ‘트레블러 50L’ 배낭을 사계절 사용한다. 50리터 배낭이지만 안팎 배치를 잘 하면 60리터까지도 담을 수 있다. 가벼운 백패킹까지는 아니어도 무성비, 부성비를 잘 따져 최적의 장비를 갖춘다면, 필자의 경험상 겨울 백패킹도 60리터 배낭이면 충분하다.
이천 남한강 합수부 석양.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 중에는 이렇게까지 하면서 백패킹을 가야 하나 싶은 분들도 계실 거라 생각한다. 맞다. 동계 백패킹은 불편하다. 춥다. 그래서 힘들다. 반면 벌레와 모기가 없어 한없이 게을러질 수 있다. 침낭에 앉아 텐트 문틈으로 석양을 만나면 몸과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한다. 백패킹 전후로 눈이라도 만나면 잊을 수 없는 선물이 되고, 단단해진 얼음 위에서의 하룻밤은 색다른 경험이 된다. 물론 이 모든 건 나의 몸과, 내가 가진 장비를 이해하고, 머무를 곳의 정보를 잘 파악할 때 가능하다. 그것이 백패커가 자연에게 표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예의이자 겸손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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