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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상치 않은 것이 출현했다. 브랜드 ‘브라이언 두들’이다. 단순히 옷을 파는 브랜드가 아니다. 이야기는 만화로부터 시작한다. 옷도 만화도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라고 생각해서다. 흡사 괴짜 소년의 일기장을 가져온 듯한 만화 속 이야기는 이지호 대표의 손을 거쳐 우리 앞에 “현실화”된다. 신비로운 가면을 쓴 모델, 몽환적인 분위기가 흐르는 룩북은 마치 꿈속 장면 같다. 나는 어느 날 어떤 그림, 어떤 공간, 어떤 옷에 매료되었고 그 세 가지가 모두 한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멈춰 섰다. 하나의 영혼을 각각 다른 그릇에 담은 것처럼, 형태는 달랐지만 닮아 있었다. 그것을 만들어낸 손을 보고 싶어졌다. 그 손이 만들어낼 것들을 지켜보고 싶어졌고, 거기엔 브라이언 두들이 있었다.
창덕궁의 비밀 산책로가 내다보이는 작업실에서 이지호 대표를 만났다. 들어서는 순간 마음이 평온하고 고즈넉해지는 이 공간 또한 이지호 대표와 그의 형의 손을 거쳤다. 두 형제는 어느 날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이 낡은 집을 빌려 천장을 부수고 벽을 허물어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었다. 공간의 곳곳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는 동양화들도 이지호 대표의 작품이다. 옷과 사랑에 빠져 그 주변을 맴돈 지는 16년이지만, 브랜드를 시작한 것은 이제 4개월이다. 공간 디자인, 설치 미술, 공예, 동양화, 만화, 의복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움직이던 손은 브라이언 두들이라는 이름 앞에 모였다.
브라이언 두들을 소개한다면?
안녕하세요, 브라이언 두들의 이지호 대표입니다. 브라이언 두들은 동명의 브라이언 두들이라는 캐릭터가 만화를 그려내고, 그 만화를 좌표 삼아 디자인한 제품들을 선보이는 브랜드예요. 이야기가 옷을 통해서 현실의 생활 속으로 옮겨오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풀어내고 있어요.
옷을 배운 지 16년 만에, 드디어 브라이언 두들이라는 브랜드를 론칭 하셨는데요. 멀리 돌아온 만큼 계기가 있었으리란 생각이 들었어요.
작년까지 고민이 정말 많았어요. 옷을 때려치우기 일보 직전까지 갔었어요. 늘 ‘특별한 옷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특별한 옷이 뭔지도 모르겠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공허한 생각들만 머리를 어지럽히는데 우연히 짐 정리를 하게 됐어요. 그런데 제가 물건을 소중히 하는 사람이 정말 아닌데도 불구하고, 제 옷 중에 소중한 옷이 너무 많은 거예요. 거기서 충격을 받았어요. 특별히 비싸거나 귀한 옷도 아니고, 그냥 가지고 있던 옷들인데 왜 이렇게 소중할까 생각했죠. 옷이라는 물건은 개개인의 정말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고스란히 담는 것 같아요. 특별한 날에 특별한 곳에서 특별한 사람과 함께 했던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소중했던 거죠. 휘황찬란한 옷이 아니라 이야기가 담긴 옷이 특별한 옷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내가 진짜 전개해나가고 싶은 작업을 찾았다는 느낌을 받았죠.
옷을 정리하다가 브라이언 두들을 만들 결심을 하신 거군요.
네, 그전까지는 특별한 옷을 만들어야겠다는 목표 자체가 옷 만드는 걸 업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오히려 비관하게 만들었어요. 왜냐하면 특별한 기법과 특별한 재료를 써서 특별한 사람을 위해서 만드는 옷은, 사실 쭉 그런 일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저한테 되게 낯설고 부자연스러운 방향이었거든요. 제가 그런 옷을 안 사고 안 입으니까요. 그에 비해 디자인에 이야기를 담는 것은 제가 쭉 디자인을 대하던 친숙한 방향이었어요. 사람들은 소비에 있어 브랜드의 스토리텔링에 민감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허황된 아이덴티티 속에 스토리를 꼭꼭 숨기거나 공허하게 포장하고 싶지 않았어요. 반대로, 대놓고 직설적으로 직관적으로 이야기를 재밌고 진정성 있고 엉뚱하게 풀어내는 브랜드를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브랜드 스토리를 미디어나 사진을 통해 분위기 정도로만 느껴지도록 표현하는 것 같은데 브라이언 두들의 매체는 ‘만화’라서 놀랐어요.
다양한 시각적인 요소들을 무겁지 않게 쉽게 따올 수 있는 장점 덕분에 만화로 정하게 됐어요. 제가 몇 년 전에 되게 다운되어 있었을 때 평소처럼 일기를 썼는데, 일기가 너무 난해하고 무슨 소리인지 저조차도 모르겠고 꼴 보기 싫은 거예요. 그래서 그걸 만화로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러니까 저한테 있었던 되게 무거운 일들이 자연스럽게 가벼워지고, 사랑스러워지고, 해결되지 않았던 일들에 기승전결이 생기더라고요. 그때 만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에 매력을 느낀 것 같아요. 그리고 그걸 지금에 와서 브라이언 두들이라는 브랜드에 접목을 시키게 됐죠.
혼자서 컬렉션을 기획하고, 생산하고,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제작과 판매까지… 실무적인 면에서 정말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용기를 내셨나요?
두려움은 항상 있고 확신은 전혀 없어요. 진짜 말씀하신 것처럼 아무도 그렇게 안 하는 건 너무 힘들어서겠죠. 일이 정말 많아서 혼자서 모든 일을 해나가다보면 매일이 고비처럼 느껴져요. 근데 고비를 느낄 때마다 그동안의 경험 속에서 익혔던 기술들이 자연스럽게 해결할 방법을 알려주는 것 같아요. 혼자서 하는 게 외롭다고 느낄 때쯤 저를 항상 도와주고 있는 친구들이 떠오르고요.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확신은 따로 없고, 제가 그동안 쌓아온 기술들과 도와줄 친구들을 믿고 시작한 것 같습니다.
사진 : 브라이언 두들
브라이언 두들은 이제 4개월 된 신생 브랜드잖아요. 그전까지 설치 미술, 자수, 동양화, 의상, 공간 디자인까지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셔서 어쩌면 팀이 아닐까 싶었는데 한 분이어서 놀랐어요. 다양한 분야를 오가며 활동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이렇게 말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늘 손이 가자는 대로 가는 편이에요. 제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언어보다는 손이 항상 훨씬 잘 그려내는 것 같거든요. 손이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면 그림과 관련된 일을 찾아주고, 손이 작고 섬세한 작업을 하고 싶어할 때는 자수 관련된 작업을 해보고, 좀더 큰 스케일의 무언가를 근질근질해 할 때는 공간 디자인 쪽에서 일하는 식으로요. 손을 따라가는 것 같아요. 디자인이라는 게 시각적인 스토리텔링이잖아요. 손을 믿을 수 있는 것은 다행히도 손이 먼저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전달 방식들을 단련했던 덕분인 것 같아요. 손만 너무 훈련하고 머리가 부족한 것도 있고요.(웃음) 그래서 손을 믿고 갑니다.
그날그날 손이 뭘 하고 싶구나 하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어요?
그날그날이라기보다 약간 시기적인 건데, 얘가 뭐를 못하는지 얘가 뭐를 지겨워하는지 살펴봐요. 그러니까 어느 날은 막 자수를 12시간, 16시간도 거뜬히 하는데 어느 날은 30분도 못하겠는 그런 날들이 있거든요. 그럼 얘가 이거 말고 뭘 하고 싶을까? 고민하게 되는 그런 개념인 것 같아요.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패션 스쿨 마랑고니를 졸업하셨다고 들었어요. 옷에 대한 관심은 어린 나이부터 있으셨던 것 같은데, 그것에서 시작해서 정말 다양한 분야로 관심이 넓어졌다가 다시 옷으로 돌아왔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옷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어렸을 때부터 옷을 정말 좋아했는데 옷을 입는 걸 좋아했던 건 아니었어요. 항상 옷을 만드는 사람들, 디자이너들과 브랜드들이 전개하는 시각적인 것들에 총체적으로 매력을 느꼈던 같아요. 옷 하나하나보다는 컬렉션과 쇼 자체에 매료되었던 거죠. 당시 온스타일 같은 TV에서 해주는 디자이너 소개나 컬렉션 쇼 들을 정말 유심히 봤어요. <섹스 앤 더 시티>나 <프렌즈> 등에서 디자이너 브랜드들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걸 만드는 사람들은 누굴까 생각했어요. 저걸 만드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되게 개인적인 작업을 옷을 통해서 그려나가는구나 이런 게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그런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옷을 만드는 일과 정말 사랑에 빠지게 됐죠.
단순히 옷을 입는다는 의미보다는 어떻게 보면 창작의 의미로서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이군요.
맞아요. 그렇게 관심을 갖게 돼서 중학교 3학년 방학 때 무턱대고 봉제 공장에서 알바를 시작했어요. 그 공장이 인천 부평에 있었고 저희 집은 서울 종로구였거든요. 출근 시간을 맞추려고 맨날 새벽 5시 반에 일어났었어요. 공장 아줌마들 사이에서 일하는 환경이었는데, 아줌마들이 보기에 아직 고등학교 입학도 안 한 애가 새벽마다 바들바들 떨면서 와서 일하는 게 얼마나 예뻤겠어요. 그래서 진짜 저한테 따뜻하게 잘해 주셨었는데, 그때 옷 만드는 환경이랑 옷 만드는 일에 홀딱 반해버린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땐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인턴십도 하고 어린 나이에 패션쇼도 가보고 촬영장도 가보고 하면서 제대로 배워봐야겠다는 결심이 섰고, 유학을 가게 됐죠. 밀라노에서 옷을 만드는 것 자체에 공을 들이고, 디자이너의 정체성을 옷으로 풀어내는 것을 굉장히 환영하는 환경을 접할 수 있었어요. 그런 과정을 통해 특별한 옷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옷에 관심을 갖게 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봉제 공장 알바라니 놀랍네요. 진짜 직관적으로 접근을 하셨네요. 어떻게 보면 그 관심이 옷이 아니라 로봇이나 자동차로 향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 같고요.
그때도 약간 손을 따라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러니까 사실 저는 처음엔 옷에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아요. 만드는 거에 관심이 있었죠. 근데 진짜 개념이 없었죠. 아무것도 모르는데 일터에서 민폐가 될 거라는 생각을 못하고 (웃음) 하지만 그만큼 긴장해서 잘했어요.
그런데 옷만 배웠다고 하기엔 정말 재주가 많으신데, 패션 스쿨에서 설치 미술이나 공예까지 다 배운 건가요?
아니요. 그런 거는 대부분 독학으로 배웠어요. 운 좋게 대학교 2학년 때 헤드 피스를 만드는 브랜드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많이 배운 것 같아요. 그리고 생활고 때문에요. 그러니까 돈이 없어서. 원래는 졸업하고 좋은 브랜드에서 커리어를 차근차근 쌓아가고 싶었는데, 그 당시 브랜드들의 인턴십 월급이 500유로(60만 원 상당)였어요. 근데 제 월세도 500유로였거든요. 하고 싶어 하는 애들이 너무 많으니까 공짜로 일을 시켜도 할 사람이 넘쳐나는 거죠. 그래서 그 길로는 절대 갈 수가 없었고, 프리랜서로 들어오는 일을 다 하다 보니까 오히려 많은 브랜드들과 이렇게 다양한 일들을 함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번 컬렉션을 포함해서 지금까지 해오신 작업물들을 딱 봤을 때 드는 느낌이, 좀 기괴한 것 같아요. 제가 브라이언 두들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한데요. 기괴하고 추상적이고 신비롭고, 약간 신화적이기도 하고요. 어둡고 무섭기도 해서 엄마가 보자마자 ‘이게 뭐냐’라고 할 것 같아요. 이런 건 전혀 대중적이지 않잖아요. 보통 브랜드들은 심플하고 모던하고 깔끔한 걸 지향하려고 하죠. 그게 쉽고, 먹히니까요.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뭔가 첫눈에 일반적으로 보이진 않아요. 좀 이상하잖아요.
한국에 와서 활동하면서 컨펌 과정에서 기괴하다, 징그럽다, 난해하다는 말을 처음 듣게 됐어요. 저에게는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라 약간 콤플렉스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더 정확히는 저의 확고한 취향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해요. 제가 좋아하는 창작자들도 대부분 그런 기괴하고 신비로운 색을 띠고 있고요. 저만의 색이 뚜렷한 디자이너로서, 제 취향과 색을 포기하고 대중들에게 억지로 맞추기보다는 편집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저만의 색을 밀고 가려는 편이에요. 저한테 귀엽고 예쁜 것들은 항상 무섭고 징그러운 면이 있는 것 같아요.(웃음) 저는 제가 좋아하는 걸 알고, 저의 브랜드에서는 그걸 편집하고 싶지 않아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너무 멋진 일인 것 같습니다. 다양한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고, 분명히 어딘가에 있는 같은 감도의 사람들이 알아볼 테니까요. 이런 브라이언 두들의 감성을 듬뿍 담은 이번 룩북을 보면 굉장히 실험적인 옷들도 보이는데요. 정작 판매하는 옷들은 정말 웨어러블한 옷이에요. 어떤 의도를 두셨나요?
우선 신인 디자이너로서 앞으로 브랜드가 전개해나갈 방향을 시각적으로 임팩트 있게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을 동원해서 브랜드의 분위기를 보여주려고 노력했죠. 그리고 제가 모든 것에 있어서 약간 드라마틱한 걸 좋아하는 편이거든요. 잔잔하고 차분한 웨어러블한 피스들과 요란하고 좀 실험적인 피스들을 같은 분위기에서 함께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브라이언 두들의 만화 또한 그렇고요.
말씀하신 대로 옷 자체는 정말 편하고 웨어러블하고 기본에 충실한 것 같아요. 실제로 입어봤을 때 제대로 배운 디자이너가 만들었다는 느낌이 바로 들더라고요. 핏도 예쁘고 만듦새도 튼튼해서 사고 나서 이것만 입었어요.
제가 진짜 자주 입어서 가장 잘 아는 옷을 만들었어요. 어떤 몸으로도 편하고 예쁘게 입을 수 있도록 특히 신경 썼어요. 제가 몸무게가 많이 변하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어떤 몸으로도 입을 수 있는 옷들을 좋아해요. 대부분 오버 사이즈의 옷들인데, 편하면서도 부하지 않고, 좋은 핏으로 떨어질 수 있도록 연구했죠. 그렇다 보니 어떤 체구의 몸을 가지셨든 잘 어울리도록 디자인했어요. 옷의 품질 면에 있어서는 제가 워낙 예민해요. 소재나 디자인도 이태리에서 공부하고 배웠다 보니까 까다롭게 고르는 게 익숙하고 친숙해요. 저에게 친숙하고 잘 아는 방향으로 접근해서 시작하고 싶었어요.
이번 컬렉션 이름이 ‘GOOD BONEy TIMES’잖아요. 어떤 메시지를 담으셨나요?
네, 뼛속의 시간, 혹은 뼈저린 시간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첫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시작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걸 어떻게 헤쳐 나갈까, 싶을 때마다 의지할 수 있는 게 정말 제가 손에 새긴 기술들밖에 없는 거예요. 뭔가를 배울 때는 정말 아등바등 열심히 하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진짜 많았거든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싶고요. 근데 그런 어리숙한 시간 속에서 우리의 손과 뼈에 평생 의지하고 살아갈 수 있는 그런 기술이 새겨지는 것 같아요. 그 이야기를 브랜드의 시작과 함께 꼭 풀어내고 싶었어요.
이지호 대표님께서 옷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지금의 저에겐 옷을 만드는 노동 환경이 제일 중요해요. 옷을 만들려면 정말 여러 사람들과 얽혀야 하잖아요. 그 사람들과 일을 해나가는 과정이 안정적이고 비폭력적이고 지속 가능했으면 좋겠어요. 사회적인 신념 때문에 그런 게 아니고, 제가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일을 하면서 경험한 모든 일터가 행복하고 즐거웠거든요. 기적적이게도요. 그래서인지 일터가 저한테 있어서는 진짜 집처럼 느껴지는 편이에요. 때로는 집보다도 더 집 같이 느껴져요. 그래서 제가 브랜드를 펴냈다는 것은 또 하나의 집을 지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이제 막 집을 지었으니, 화목하고 단단한 가정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간혹 일을 새로 시작하는 젊은 분 중에서 일이니까 이기적으로 굴어야 해, 내가 원하는 걸 쟁취해나가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돼,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을 만나고 같이 일을 하다 보면 마음이 좀 많이 상해요. 저한테는 일터가 집이니, 더욱더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과 함께 일하지 않기 위해서, 또 제가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옷을 만드는 일에서 생기는 진짜 수많은 마찰을 인간적으로 화목하게 해결해 나아가는 과정이 지금은 가장 소중한 것 같아요. 옷의 디테일이나 브랜드의 방향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건 디렉터인 제가 잘한다면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라고 믿어요.
정말 의외의 답변이었어요. 브랜드는 이제 시작이지만 일을 대하는 마음만큼은 정말 오랜 깊은 애정에 기반해 있네요.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됩니다. 훗날 브라이언 두들의 열 번째 컬렉션을 낸 이지호 대표에게 한마디 하자면?
살 만하냐?
이지호 대표에게 옷을 잘 입는다는 의미는?
진짜 모르겠어요. 누굴 보고 옷을 잘 입는다 못 입는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입고 싶은 옷을 입으시고, 멋진 사람이라면 멋져 보일 것이고 아니면 아닐 것이고. 어떤 사람인지를 속일 수 있는 마법 같은 옷은 없는 것 같아요. 입고 싶은 옷을 입고, 생긴 대로 사는 거죠.
어떤 손이 지난 자리는 특별하다. 어쩐지 그의 옷에 자꾸만 손이 간다. 자꾸만 하고 싶은 것들이 생각난다. 그것이 손이 손을 부르는 일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물끄러미 그의 손을 보며 생각한다. 그의 믿음은 실질적이라고. 그 손에 새겨진 무수한 순간들을 더듬어본다. 부지런히 익히고, 오랫동안 새기고, 그래서 매번 새로운 대답을 들려주는 손. 단단하고 지혜롭고 유능한 손. 그 손이 거쳐 간 것을 어찌 믿지 않을 수 있을까. 이지호 대표의 손을 보며, 그 손이 만들어낸 것을 보며, 그 손이 펼쳐나가는 이야기를 보며 생각한다. 어떤 손은 머리도 될 수 있고, 마음도 될 수 있다고. 어떤 손은 머리나 마음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나는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본다. 내 두 손이 보인다. 내가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질문한게 언제였을까? 언제 마지막으로 물어봤을까? 손이 꼼지락거린다.
활동명은 ‘토미에’로, 현재 의류 브랜드 ‘브라이언 두들’을 운영하고 있다.
쓰는 사람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수필집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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