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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놓여있는 대형 아이스크림 모형, 벽면에 걸려있는 시계와 달력까지. 입구에 들어서기 전부터 박정수 대표의 취향을 엿볼 수 있다. 가게를 오픈한 2017년부터 지금까지 약 400여 가지의 메뉴를 직접 개발해서 제공하고 있으며, 기발하고 재밌는 콘텐츠로 손님들과 꾸준히 소통하며 로컬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다. 단순히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 를 넘어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과 일상을 함께 공유하는 공동체 역할을 하고 싶다는 박정수 대표에게, ‘녹기 전에’ 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인터뷰를 통해 물었다.
#녹기 전에, Before it melts
젤라토가 너무 맛있어 보이는데요. 먼저 대표님 소개 부탁 드려요.
저는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서 ‘녹기 전에’ 라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운영하는 박정수 라고 합니다. 고객 분들은 저를 '녹기 전에 사장님' 을 줄여 ‘녹싸’ 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녹기 전에’의 모든 젤라토는 저희가 직접 만들고 있어요. 2017년부터 지금까지 약 400개가 넘는 메뉴를 개발했고요. 아이스크림을 바탕으로 한 재미있는 콘텐츠들로 손님들과 다양한 교류를 하고 있고요. ‘언제나 더 나은 아이스크림 생활’이라는 기조를 가지고 일하고 있습니다.
‘아이스크림 생활’이라는 표현이 인상 깊네요. 아이스크림에 대한 진심이 느껴져요(웃음). 하루 13시간 정도 일을 하신다고요.
맞아요. 제가 집에 있는 것보다 밖에 있는 걸 더 좋아해요. 매장에 9시쯤 출근해서 오픈 준비를 해요. 그러면 2시간 정도 시간이 남는데 그땐 책이나 뉴스를 읽어요. 요즘은 곧 출판 예정인 책을 쓰면서 시간을 보내고요. 그리고 정오부터 밤 10시까지 근무를 하고 퇴근해요. 일과 일상의 구분을 두지 않는 사람이라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웃음).
처음 ‘녹기 전에’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아이스크림 가게라고 해서 굉장히 신선했어요. 이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됐나요?
가게를 오픈할 때 다른 젤라또 브랜드들을 보니 대체로 ‘외래어’ 를 사용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이름들이 크게 와 닿지 않았어요. 게다가 제가 이탈리아에서 젤라또를 먹어본 적은 있지만, 그 기억만 가지고 어려운 외래어로 가게 이름을 짓는다는 게 내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최대한 한국어나 한자를 포함한 '우리 말’ 로 만들려고 했어요. ‘녹기 전에 '라는 이름이 지금 저희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스크림을 매개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으니까요. 브랜딩 측면에서 잘 맞아 떨어졌고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현재를 충실히 살아내자’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아이스크림은 시간이 흐르면 녹아버리잖아요. 한번 녹아버리면 그 전 상태로는 돌아갈 수가 없어요. 인생도 비슷해요. 지금을 즐기지 않으면 그냥 흘러 가버려요. 그러니 현재를 잘 살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원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가 창업하셨다고요. 창업을 결심한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전 회사 생활을 딱 두 번 했어요. 그런데 두 회사 모두 6개월, 4개월 정도 다니다 그만뒀어요. 전 이미 20대에 저 자신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들여다보면서 ‘회사원은 못하겠다’ 라고 결론을 지었어요. 그럼에도 제가 회사에 다녔던 이유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던 것도 있고, 그보다 지금처럼 제가 궁금해 찾아오는 분을 만났을 때 여러 회사에 다녔던 제 과거와 지금 제 모습의 차이에서 오는 ‘호기심’ 을 가질만한 배경을 만들어보고자 했어요. 다 계획되어 있었던 일이에요(웃음).
아이스크림 가게를 차리는 것도 계획된 거였어요(웃음)?
아니에요. ‘녹기 전에’ 를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가 이십 대 중후반이었는데, 그때의 제 마음가짐은 ‘내가 뭔들 못할까!’ 였어요. 원래 새로운 일을 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는 편이에요. 게다가 제가 설계했던 것 중 하나가 '5년에 한 번씩 직업 바꾸기' 였거든요. 그래서 직업은 크게 상관없었어요. 물론, 퇴사하고 한두 달 정도 쉬면서 ‘아이스크림 가게를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으니까요. 그래서 어느 날 ‘아이스크림‘ 을 검색하다가, 젤라토 가게에서 운영하는 블로그 하나를 발견했어요. 그래서 “직접 찾아가겠다”는 쪽지를 보내고 놀러 갔죠. 매니저분께 “제가 쪽지 보냈던 사람인데요”라고 인사를 건네고,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고 식사 요청도 드렸어요. 그러고 한 보름쯤 뒤에 매니저분께 연락이 왔어요.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됐는데 혹시 일해볼 생각이 있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원래는 이탈리아 젤라또 대학에 가려던 계획이었는데 그 전에 경험을 쌓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죠.
#나를 위한 선택으로 채우는 삶
5년에 한 번씩 직업을 바꾸고자 했던 이유가 있나요?
저에게는 시간이 너무 중요하니까 ‘어떤 시간이 가장 중요할까?’ 질문을 던졌어요. 그리고 내린 결론은 '죽을 때 행복해야 한다’ 라는 거예요. 그래서 죽을 때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해 보니 추억이 많아야겠더라고요. 요즘은 '평생직장’ 이라는 개념이 없잖아요.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의 라이프 스타일을 볼 수 있고요.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삶은 구성되고 먹고 살 수 있어요. 저는 ‘일’ 을 통해서 구현하고 싶은 게 많거든요. 다양한 일을 통해 추억을 쌓으면 제 삶의 마지막에 행복할 수 있겠다고 생각을 하니까 직업을 바꾸는 것에 있어 두려움이 없어요. 저에겐 너무 당연한 거예요.
언제든지 또 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면 직업이 바뀔 수도 있는 거네요?
그럴 수도 있겠죠(웃음)? 그런데 당장은 아니에요. 2019년 이후로 ‘이 일을 평생 해야겠다!’ 는 생각이 들어서 ‘5년’이라는 시간 제약을 두지 않기로 했어요. 이게 너무 재밌거든요. 그리고 언젠가부터 추억을 많이 남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세상에 무엇 인가를 남기는 게 더 중요한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먼저는 ‘아이스크림’ 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니까 ‘아이스크림 계의 새로운 문화' 를 만들어가고 싶어요.
퇴사 후 4개월 정도 준비해서 이 가게를 오픈했다고요. 실행력이 엄청난난데요?(웃음).
4개월이라는 시간이 무엇 인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에게 민망할 정도로 짧긴 하죠. 다만 그럴 수 있었던 건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원리가 공학을 닮아서 였다고 생각해요. 각각의 재료들이 분자 단위에서 서로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어떤 재료가 공기를 포집할 여유를 얼마나 가지는지, 무엇이 어는 점을 내리는 데 얼마나 기여하는지 등을 파악하는 것이 전기 전자공학을 전공한 제게 조금은 익숙하게 느껴졌어요. 하나하나의 요소들을 분석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리긴 했지만 재밌었어요. 공부와 연구를 바탕으로 한 이론이 맞는지 검증하는데도 시간을 많이 들였죠. 집에 배치 프리저(Batch Freezer)라는 젤라토 제조 기계를 두고 연습을 많이 했어요. 한번 뽑을 때마다 3L의 양이 나오는데 너무 많은 양이라 이웃들에게 나눠주곤 했어요(웃음).
치열한 준비 준비 끝에 2017년, 익선동에 '녹기 전에'를 오픈했죠. 처음 반응이 어땠나요?
저희는 처음부터 잘 됐어요(웃음). 지금은 1년 중 1월 한 달만 쉬지만, 그땐 1년에 3개월 정도 쉬었거든요. 이대로라면 9개월만 일해도 먹고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요. 당시 익선동이 조금씩 뜨던 때라 핫플레이스가 많이 생겼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시류를 잘 만나 잘 되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2~3년째 운영할 때 한 번 위기가 왔지만요.
어떤 위기였나요?
제가 처음 익선동에 갔을 땐 모던한 브랜드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점점 유동 인구가 많아지면서 멋있고 힙한 브랜드들이 생겼어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더 이상 왜 익선동에 가게를 열었는지 궁금해하지 않더라고요. 그냥 여기가 힙하니까 열었겠지가 돼버리는 거죠. 그리고 ‘녹기 전에’가 익선동에서 쌓아온 메시지와 앞으로 이야기할 거리가 너무 많은데, 계속 늘어나는 화려한 브랜드들 속에서 저희의 철학이 사람들에게 닿지 않는 거에요. 사람들의 관심이 눈에 보이는 것, 디자인적으로 얼마나 힙한지에만 치우치는 걸 느꼈죠. 저희의 콘텐츠나 메시지, 분위기가 점점 익선동의 분위기와는 멀어지기 시작했어요. 그때 조금 힘들더라고요. 그렇게 혼란을 느끼던 때 코로나의 영향으로 손님들이 안 오는 시기를 맞이했죠. 정말 힘들었을 땐 사람들을 만나는 게 겁이 나서 화장실에 숨어 있기도 했어요.
익선동의 분위기가 어느 시점에 크게 변화했죠. 조금은 차분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의 동네였는데 한순간 ‘붐’이 일어났으니까요. 그럼 염리동은 어떻게 오게 된 거예요?
익선동 시절 찾아온 손님 중에 염리동에서 카페를 하던 분이 있었어요. 그 손님을 통해 염리동을 알게 됐고, 지도에 표시를 해두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지나가다가 생각이 나서 이 동네에 오게 됐는데 이 공간이 마침 비어있더라고요. 무엇보다 처음 봤을 때, 쉬기 좋은 공간이라고 느꼈어요. 산장 같기도 하고요. 그때 당시에 저는 눈이 올 때 매장 안에서 그 풍경을 볼 수 있는 공간을 원했거든요. 눈이 오면 손님은 많이 안 오겠지만, 눈 오는 모습을 보면 제가 즐겁고 그럼 1년 내내 기분이 좋을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이곳을 선택했어요. 인테리어는 따로 하지 않았어요. 여기가 원래 카페를 하던 곳이었는데 인테리어가 그대로 남아있어서 유지하는 쪽을 택했어요. 공간 디자인 감각이 전혀 없기도 하고, 이 공간을 부수고 새로 만드는 것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롯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이 공간을 선택한 거네요?
맞아요. ‘크리에이터’에겐 남들이 뭘 좋아 하는지가 아니라 내가 뭘 잘할 수 있는지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하거든요. 자기 자신에게서 나온 것 이여야만 꾸준히 성장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행히도 이곳에 온 뒤로 마음이 편해지면서 다시 하고 싶은 것들이 하나둘 생각나더라고요. 그래서 ‘장사를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마케팅, 브랜딩 관련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 책들을 보면서 제 것이 아닌 것을 찾고 있더라고요. 그곳에 답은 없었어요. 다만 '네 자신으로 돌아가라'는 '본질'적인 메시지가 공통적으로 눈에 띄었어요. 나에게 집중해서, 하고 싶은 대로, 하던 대로 해보자고 마음을 먹고 '녹기 전에' 운영을 다시 시작했는데 방향이 잘 맞았던 거죠.
지금은 너무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고 있죠.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도 진행했고요.
최근에 의류, 문구, 자기 계발 플랫폼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을 했어요. 사실 전 이런 걸 꿈꿔왔어요. 저희와 비슷한 식품 계열 브랜드와의 협업을 넘어, 다양한 영역의 브랜드와 협업을 원했거든요. 한 가지 추구하는 방향이 있다면 저희가 가지고 있는 브랜드 가치와 협업 하는 브랜드의 가치를 잘 녹여내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버려지는 것’ 없이요. 예를 들어 굿즈를 만들게 되면 팔지 못한 제품들은 결국 버리게 되잖아요.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에 유해한 영향을 미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앞으로 제 계획 중 하나가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 협업’이에요. 지금과 같은 ‘인터뷰‘도 될 수 있겠죠. 눈에 보이는 물건은 아니어도 대화가 남잖아요. 대화를 통해서 공통점과 다른 점을 찾고, 서로 영감 받은 것이 있는지 등을 나누며 내용을 창출하는 것이 하나의 협업 방식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이런 협업은 굿즈라는 눈에 보이는 열매를 내진 못하겠지만, 더 깊이 뿌리내릴 수 있게 서로를 다져주는 것과 같을 거예요. 제 기준에서는 이게 조금 더 건강한 협업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참치 맛, 깻잎 맛, 당근 맛, 고수 맛 등 젤라토 맛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맛을 선보이잖아요. 그런데 가끔은 무모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웃음).
제가 가수 윤종신을 좋아하는데요. 그분이 낸 히트곡이라면 2017년에 발매된 ‘LISTEN 010 좋니’ 앨범의 <좋니>라는 곡이 있겠죠. 이 곡은 많은 분들이 알아요. 그런데 2015년 발매된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에 <쿠바 샌드위치>라는 곡이 있거든요. 이 곡을 아는 분은 많이 없을 거예요. 그래도 이 곡을 알아 봐주는 분들이 있어요. 어떤 시도를 꾸준히 하다 보면 남들은 봐주지 않는 저희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반응해 주는 분들을 만나게 돼요. 무모한 것을 통해 연결되는 사람인 거죠. 그리고 저희의 무모함을 좋아해 주는 분을 대할 때 더욱 최선을 다하게 돼요. 우리의 의도를 예쁘고 멋지게 잘 포장해서 드러내지 못했을 때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조차 상상의 여지로 생각하며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거든요. 모든 시도는 의미가 있어요. 그리고 저희의 기획은 손님들과 티키타카로 완성돼요. 저희가 30% 준비하면 70%는 프로젝트의 의도를 아는 사람들이 채워 주길 기대해요. 저희 인스타그램을 팔로우 하시는 분들은 ‘녹기 전에’의 톤앤매너를 좋아하는 분들이 대부분이거든요. 이분들에겐 뭘 던져도 받아줄 거라는 걸 아니까 이것저것 시도하게 돼요.
#일상을 함께 하는 공동체
손님들을 향한 신뢰가 굉장히 두텁네요(웃음). 최근 한 인터뷰에서, ‘친절함도 능력이고, 그 능력을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가게를 운영하며 ‘태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신 다고요.
‘녹기 전에’를 처음 시작했을 때의 목표는 '좋아하는 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표현하는 방식은 '진지함과 유머’를 담은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드는 거였고요. 그래서 악필 대회나, 민트 데이 등 다양한 시도를 했는데 많이 좋아해 주셨어요. 좋아하는 일을 해서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자는 목표를 달성한 거죠. 그 후에 자연스럽게 다음 스텝으로 ‘태도와 공동체’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많은 손님을 만나다 보니, 그분들을 '어떻게 대할 것 인가' 가 점점 중요해지더라고요. ‘그분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도 고민했어요. 손님이지만 더 넓은 의미에서는 모두가 같은 땅에 살아가는 동료이고, 공동체니까요.
그래서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접객 가이드’라는 내용의 『좋은 기분』이라는 책을 쓰신 거군요. 무려 160쪽이더라고요.
맞아요(웃음). 최근에 직원을 채용할 때 지원에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한 참고 자료로 PDF 파일을 공유했어요. 지금은 볼 수 없지만, 곧 책으로 출판 될 예정이에요. 생각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놀랐어요.
어떤 내용이 담겨있나요?
저와 함께 일하게 될 분이 누구든, 이곳에서 일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려주고 싶더라고요. 하루에 일하는 시간이 8시간에서 10시간 정도 돼요. 굉장히 긴 시간인데, 그 시간 동안 저에게 남는 것들이 너무 많거든요. 함께 하는 친구에게도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까 고민이 되더라고요. 먼저 ‘우리 매장이 어떤 매장인지, 어떤 걸 하려고 하는 매장인지, 당신의 삶에 어떤 가치를 남겨주고 싶은지'에 대해서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첫 번째 챕터에 「결국에는 태도가 뿌리다」라는 내용을 담았고요. 그렇게 하나둘 채워가다 보니 160쪽이 됐어요. 물론, 손님에게 인사할 때 표현하는 방식이나, 매장을 운영하고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서비스하며 일어나는 다양한 변수에 대처하는 방식은 개인마다 다를 거예요. 그게 맞고요. 저희가 가진 메시지를 바탕으로 각자의 색을 빛내면서 제 역할을 해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업’과 ‘태도’에 대한 진심이 통했는지, 하루에도 손님들이 공유한 스토리가 수십 개씩 올라와요. 매 순간 너무 뿌듯할 것 같아요. 7년간 매장을 운영하며 보람을 느낀 순간은 언제예요?
이곳에 있다 보면 손님들과 함께 시간을 살아내고 있다고 느낄 때 있어요. 예를 들어, 어떤 분은 처음에는 혼자 오셨는데 다음에는 남자친구와 첫 데이트를 오시기도 하고요. 취업 준비생 이었는데 직장인이 되어 찾아오시는 분도 있어요. 저희와 함께 시간의 변화를 겪는 분들을 볼 때 보람을 느끼죠. 괜히 뿌듯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저희가 연말이 지나고 1월 한 달간은 쉬어 가거든요. 그런데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에 저희에게 인사하러 일부러 와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얼마나 감사해요. 그게 저희가 1년 동안 잘 해왔다는 의미고, 또 하나의 수확이거든요. 그런 순간을 마주할 땐 기분이 정말 좋아요.
인터뷰 내내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아요. 한 달에 한 번 진행하는 ‘나무 심기‘도 ‘시간‘과 관련이 있나요?
제가 손님을 ‘공동체' 라고 표현했잖아요. 그분들에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좋게 만들자는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서 예요. 먼저는, 제가 죽더라도 세상에 좋은 걸 남기고 싶은 마음에 나무 심기를 선택한 거고요. 두 번째는, 저희가 마주하는 메시지들이 모두 단초점화 되고 있잖아요. 숏츠 콘텐츠나, 릴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지금 당장의 만족을 위해 소비하는데 시간을 엄청 많이 낭비해요. 사실, 저 어제 본 콘텐츠 오늘 기억 안 나거든요? 그런데도 계속 봐요. 이게 과연 10년 뒤에 우리 삶에 도움이 될까요? 잘 모르겠단 말이죠. 무엇보다 ‘현재의 삶에 충실하자’는 메시지와도 맞지 않는 것 같고요.
많은 시간을 의미 없이 흘려보내게 됐죠.
맞아요. 그래서 저를 포함한 사람들에게 조금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오랜 시간 공을 들여서 얻을 수 있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아주 먼 곳의 목표를 설정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그중 하나의 매개체가 나무였고요. 묘목 하나를 심으면 10년 정도가 지나야 나무의 형태를 갖추거든요. 10년 뒤의 모습을 그려보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가 보여요. 크게 자란 나무를 원한다면, 지금 묘목을 심어야 하는 것 처럼요. 멀리 보는 습관을 기르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고, 그것으로 지금 당장의 의사 결정이 달라져요. 일상이 굉장히 건강해질 수 있어요. 개개인의 의식에 변화가 생기면 저희가 살아가는 세상이 조금 더 살만한 환경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어느덧 마지막 질문이에요. '녹기 전에'의 앞으로의 방향이나 계획은 뭐예요?
다른 매장을 여는 것을 고려하고 있어요. 염리동 에서의 ‘녹기 전에’ 매장처럼 또 다른 지역에서 살아가는 0세에서 100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에게 브랜드의 메시지와 가치를 전하고 재미있는 콘텐츠를 선보이며 교류하고 싶어요. 저는 ‘녹기 전에’가 로컬 브랜드라고 생각해요.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 만으로도 ‘로컬’ 이 될 수 있다고 보고요. 그래서 계속해서 다양한 지역에 로컬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저희와 나무를 심으러 가지 않아도, 저희가 가진 메시지에 공감하고 뜻을 같이 하면 괜찮아요. 저희를 통해 조금 더 건전하고 건강한 생각을 할 수 있다면 더 좋고요. 일상을 같이하는 공동체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서 아이스크림 가게 ‘녹기 전에’를 운영하고 있다. ‘더 나은 아이스크림 생활’이라는 모토 아래 지금까지 약 400여개가 넘는 메뉴를 개발했으며, 재미있고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며 로컬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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