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KOLONMALL. ALL RIGHT RESERVED
축구와 농구, 요가와 러닝까지. 다양한 스포츠로 일상을 채우고 때로는 깊은 사유가 담긴 글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정인천님을 만났다. 스포츠 IT 스타트업의 PO(product owner)이자, ‘북클럽 '다소 사적인 클럽'을 운영하며 완전한 타인들과 모여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고 자신의 세계를 넓혀나가는 사람. 그에게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온 그간의 걸음과 지금의 모습,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물었다.
안녕하세요, 먼저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성수에 사는 정인천’입니다. 엄청 간단하죠(웃음)? 누군가에게 저를 소개할 때 ‘어떻게 소개하는 게 좋을까?’라는 고민을 오랜 시간 해왔는데요. ‘직업이나 직급, 나이’와 같은 내용들은 제외하고 오롯이 저라는 사람 자체를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어느 순간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최대한 간단히 소개하는 버릇을 들이고 있습니다. 현재 스포츠 IT 스타트업에 PO(product owner)로 일하고 있고요. 본업 외에는 ‘다소 사적인 클럽(a.l.p.c)’이라는 북클럽을 5년째 운영하고 있습니다.
스포츠 IT 스타트업 PO는 어떤 역할을 하나요?
저는 축구 운동량 분석 서비스 ‘사커비(SOCCERBEE)’를 담당하고 있고요. 프로 축구 선수들이 사용하던 기술을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적용한 것인데요. 개인의 운동량을 파악하여 목표 수립과 달성을 지원할 수 있도록 분석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러닝의 ‘NRC’나 자전거의 ‘STRAVA’와 비슷한 서비스라고 생각해 주시면 될 거 같아요. 보통 프로 선수들에게 적용되던 이런 운동량 분석 기술을 EPTS(Electronic Performance-Tracking System) 전자 기기를 활용한 퍼포먼스 트래킹 시스템이라고 하는데요. 지난 월드컵 때 황희찬 선수가 상의 탈의 세리머니를 하면서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어요. 여러모로 황희찬 선수에게 굉장히 감사한 시즌이었습니다.
PO는 서비스에 대한 오너십을 바탕으로 제품에 대한 ‘의사 결정의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에요. 제품을 어떻게 하면 매력적으로 제안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팀의 KPI를 설립한 뒤 달성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는 등의 업무를 하고요. 마케팅, 브랜딩, 판매 실적 체크, 서비스 발전 방향 설계, 투자를 위한 IR 준비 등 제품의 영속을 위해 필요한 전반적인 것을 기획하고 운영합니다. 좀 어렵긴 한데, 이 모든 게 재밌다고 생각하며 일하고 있습니다.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스포츠 IT 스타트업의 PO가 되셨다는 게 굉장히 흥미로웠는데요. 어떻게 이 길로 접어들게 됐나요?
‘국어국문학과’는 제가 원해서 간 건 아니고 점수를 맞춰서 간 거거든요(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국문학’을 선택한 건 글쓰기가 '취향의 영역' 안에 있었기 때문 같아요. 어쨌든 당시 워낙 나이브하게 과를 선택한 탓에 방황을 오래 했어요. 마침 영장이 나와 군대를 가게 되면서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에 대해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죠. 그러다 마흔 즈음엔 여행 다니며 쓴 글로 먹고사는 삶을 꿈꾸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제 주변에 ‘글’에 재능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서, 단순히 ‘글’만으로 작가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저를 가라앉히더라고요. 그때 정한 목표가 일단 유명해지는 것이었어요. ‘유명해지려면 뭘 해야 할까?’ ‘뭘 할 수 있을까?’ ‘나는 스포츠를 좋아해’ 그리고 ‘말을 좀 잘한다고 주위에서 그러더라’, ‘그럼 스포츠 캐스터가 되어서 중계를 하자, 유명해지면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을 주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들이 뒤따라왔죠(웃음).
끝없는 고민과 선택의 반복이었네요.
맞아요. 전역하자마자 복학하는 대신 스포츠 캐스터가 되기 위해 뭘 해야 하는지 알아보며, 아나운서와 스포츠 관련 대외 활동을 시작했어요. 티켓 회사의 스포츠 사업팀에서 계약직으로 일도 해보고, 아시안게임 조직위에서도 근무해보고, 나이키 매장 세일즈를 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저도 모르게 스포츠 산업 안에 깊숙이 들어오게 됐고요. 그렇게 마음속에 캐스터라는 목표를 거의 6년 정도 품었고, 아나운서 학원에 등록해 캐스터 수업까지 들었죠. 그런데 한 6개월 정도 본격적으로 준비해보니 ‘아, 이건 내 길이 아니다.’라는 느낌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그 길로 바로 접었어요(웃음). 그 후에도 ‘뭘 해야 하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 이어졌어요. 결국 ‘국문과’ 출신이라는 제 배경과 취향, 그리고 ‘스포츠 산업’에서의 경력을 살려 축구 문화 매거진에서 에디터 일을 하게 되었죠.
그곳은 어땠나요?
막상 들어가 보니 그 업계 또한 중노동과 저연봉이 만연한 분위기였어요. 그래도 제가 선택한 길이니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으로 일했지만, 어느 날 임금 체불을 겪게 되면서 스포츠 산업 자체에 환멸감이 찾아왔어요. 업무에 있어서도 관리자가 노동자를 설득하는 과정을 최소화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보니 이해의 한계에 부딪히는 일들이 빈번하더라고요. 저는 어떤 일이 추진되기 위해서는 구성원 간의 이해와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고, 그런 ‘커뮤니케이션’이야말로 조직 퍼포먼스의 비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설득이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수직적인 문화가 나에겐 안 맞다는 걸 느꼈죠. 그래서 다른 업계를 선택하는 것으로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결단과 실행, 도전과 포기의 반복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데이터를 계속해서 쌓아왔네요.
그런 과정을 통해서 결론적으로는 ‘고민을 많이 해야 하는 일을 하자, 세상에 놓인 문제를 해결하고 변화를 주도하는 이왕이면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일을 하자.’라는 다짐을 했고요. 그런 것들을 시도할 수 있는 곳이 ‘스타트업’이라고 생각해서 이 길로 접어들었어요. 지금 있는 사커비에서는 입사 후 마케팅 리드 업무를 쭉 맡아왔고, 계속 일하다 보니 PO 직무까지 업무가 확대되었습니다.
저는 제 업을 스포츠보다 IT 스타트업으로 범주화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그래서 가끔 저에게 스포츠 마케팅과 관련한 강연 요청이 오는 경우에 이 말을 꼭 전해요.“'스포츠' 산업 종사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마케팅에 접근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마케터'라는 직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스포츠가 전문인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별히 ‘스포츠’ IT 업계를 선택한 이유가 뭔가요?
미우나 고우나 제가 스포츠를 재밌어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고요(웃음). 제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해서 스포츠 IT 스타트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들을 통해 스포츠를 사랑하는 분들이 스포츠를 더 좋아했으면 좋겠고, 스포츠 신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하나 흥미로운 게, ‘사커비’ 서비스를 활용하는 이유가 개인마다 다르거든요. 누군가에겐 ‘나 오늘 운동했다!’라는 운동량 인증의 용도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데이터를 통한 역량 성장의 도구’가 될 수도 있겠고요. 또 누군가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를 데이터로 증명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고요. 어떤 용도이든, 개인에게 이로운 쪽으로 활용되면 좋겠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거예요.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나눠주세요.
일단 전 세계 축구인이 ‘사커비’를 쓰는 것이고요. 그 후엔 제가 갖게 된 영향력으로 지역 사회에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제 고향이 ‘전주’거든요? 전주 지역을 발전시키는데 투자해보고 싶어요. 사실 지방과 수도권의 문화, 경제적인 격차가 굉장히 크기 때문에 청년들 대부분 수도권으로 진출하려고 하잖아요. 그래서, 지방에 있는 청년들이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어 함께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가급적 IT 스타트업이면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복합문화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지방 도시가 관광 상품으로 소비되기보다는 가치 생산자들이 모여 살기에 좋은 곳이 되었으면 하는데, 누군가가 활성화의 고리를 만들면, 선순환이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어려울 순 있겠지만 한번 도전해보고 싶어요. 저에게는 어렵다는 것 자체가 도전하는 큰 가치 요소거든요. ‘그거 어렵게 왜 해?’ 라는 질문에, ‘어려우니까 하는 거지 뭐.’만한 대답이 없더라고요. 그래도 남들이 어려워하는 일을 쉽게 해낸 듯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게 ‘프로’ 같아 보이니까요(웃음).
#독서란,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는 것
집이 책으로 가득하네요. ‘다소 사적인 북클럽'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책과 친해지고 싶다.’ ‘독서를 취미로 하고 싶다.’는 분들에게 그게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알리고 싶은 마음에 커리큘럼을 짜서 모임을 시작하게 됐어요. 독서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근본적인 이유는 '저'를 위한 거였어요. 사실 제가 조금 편협한 면이 있었거든요. 제 자아가 너무 강하다 보니까 누군가 의견을 냈을 때 저를 ‘설득’하지 못하면 그걸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 여자친구도 좀 힘들어했죠(웃음). 의견은 서로 다를 수 있고, 자기 의견을 누군가에게 설득할 만한 '스킬'이 부족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럼 그걸 이해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데 제게 그 부분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있는 그대로 듣고 또 수용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북클럽을 시작하게 됐어요. 게다가 책을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함께 대화를 나누다 보면 책을 더욱 깊이 있게 사유하게 되고,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되잖아요. 그런 요소들이 저에게 유익하게 다가왔어요. 또, 하나의 콘텐츠를 두고 여러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나를 마주하는 시간, 또 내가 말할 때 깊이 있게 들어주는 누군가를 만나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누구나 ‘자기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순간이 필요하잖아요. 무엇보다 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시기여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어느덧 5년째예요. 북클럽을 지속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우선 제가 재미있어서 하고 있고요. 저에게도, 참여하시는 분들에게도 이로운 점이 많아서 지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새로운 사람을 대하는 스킬이 는다는 점도 좋고요. 북클럽 호스트로서 매주 새로운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되는 게, 인터뷰를 하는 것과 비슷하거든요. 누군가 질문을 던지면 자기 생각을 정리하게 되고, 자기 자신을 정의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그럴 시간이 많이 없어요. 보통 회사에서는 목적성이나 효용성이 있는 대화를 주로 하게 되니까요. 사람에겐 누구나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데, 북클럽을 통해 저뿐만 아니라 참가자분들도 그런 시간을 서로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유익하다고 봐요. 그리고 참여해 주신 분들이 좋은 피드백을 해주실 때 보람을 느껴요. 예전에 한 분이 북클럽 모임이 일주일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라고 말씀해 주신 적이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뿌듯하더라고요. 저희 모임에는 책과 친해지고 싶거나, 책 읽는 것을 취미로 만들고 싶은 분들이 주로 오시는데 그런 피드백을 받으면 아무래도 기분이 좋죠.
굉장히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시더라고요. 소설, 철학, 자기 계발, 인문학, 만화 등등. 특별히 애정하는 분야가 있으신가요?
특정 분야를 좋아한다기 보다, 국어국문학과를 다니며 느낀 제 개인의 부족함과 결핍을 채우기 위해 문학 책에 집착했던 시기가 있어서 문학 장르에 대한 수용성이 좋은 편이에요. 그리고 저는 '이것 아니면 안 돼.' 보다는 '이게 안 되면 저것도 괜찮아.' 라고 생각하는 제너럴리스트에 가깝거든요. 하나를 깊이 파는 것보다 다양하고 넓게 접하는 것을 즐기고 잘하는 편인 거죠. 그래서 다양한 분야의 책을 가리지 않고 읽는 편이에요. 최근에는 인문 교양 서적의 재미에 빠져서 북클럽 선정 도서 외에는 인문 교양 서적 위주로만 읽고 있어요. 북클럽에서는 계속 문학 도서를 선택해서 읽으며 ‘난 문학을 좋아하잖아!’ 라고 스스로 각인 하면서요. 스페셜리스트가 되고 싶은 제너럴리스트의 욕망이 제 책 취향에도 드러나는 것 같아서 재밌네요(웃음).
최근 읽은 책 중에, 삶에 영향을 준 책이 있나요?
최근에 지야드 마라의 『평가받으며 사는 것의 의미』라는 책을 인상 깊게 읽었는데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평가와 시선을 신경 쓰며 살잖아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고요. 그런데 그것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평가'라는 것 자체가 왜곡되어 있다는 걸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말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평가라는게 객관화 하기가 참 어렵거든요. 그리고 내가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그 판단마저도, 사실은 확증 편향의 하나에 지나지 않다는 것, 또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들도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죠. 저에게 생각의 전환과 질문을 계속 던질 수 있게 한 책이라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네요.
그리고 또 하나의 책은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휴먼카인드』라는 책이에요. ‘인간은 기본적으로 선하다.’고 믿는 입장에 관한 이야기죠. 최근 들어 비극적인 사건 사고를 많이 접하게 되면서 사람에 대한 신뢰도 많이 떨어지는 것 같은데요. 그런데 사실 이전의 시대에 비하면 요즘 범죄율은 낮은 편이거든요. 전보다 더 많이 ‘포착’되는 것이지. 서로를 상해 하는 일이 더 많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람이 가진 ‘부정 편향’을 이용하는 미디어에서 광고와 클릭을 위해 자극적인 내용들을 더 부각시키다 보니, 세상이 자꾸만 안 좋아지고 살기 어려워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통계는 우리에게 ‘전보다 더 살기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말하는데, 우리는 왜 감정적으로 경험적으로 ‘살면 살수록 살기 어려워진다.’고 느끼는 걸까. 그건 결국,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구조, 그런 프레임을 통해 만들어진 사회 시스템 때문은 아닌가?’그런 질문들이 책에서 이어져요.
이토록 혼란스러운 세상에, 작가가 제안하는 삶의 방식이 있나요?
우리가 더 나은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선 자신에게 닥친 현실적인 고민과 고난, 시련, 인간에 대한 상처 앞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선하다고 믿고, 믿어야 한다.' 고 말하는 것 같아요. 성악설을 내심 지지했던 저이지만, 앞으로 무엇을 믿을지가 더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급적 ‘사람은 기본적으로 선하다.’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해요.
‘사람은 기본적으로 선하다.’라는 시선을 가지기 위해선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인천님은 어떤 시도를 하시나요?
무엇이든 한번 더 의심하는 것을 실천하고 있어요. ‘정말 눈에 보이는 게 다인가?’라고 한번 더 의심하는 거죠. '사람은 선하다.'는 명제를 바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사람은 정말 악할까?' 질문해봐요. 그럼 그리 비극적이거나 비관적이지만은 않다는 걸 발견하게 되기도 하거든요. ‘그거 사실 안 좋아.’였던 비판의 관점을, ‘아냐 사실 그거 좋아.’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거죠. 저는 염세든 비판이든 쿨하기 보다는 뜨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의 생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는 거잖아요. 짐작하지 못하거나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요. 바로 그 이유가 저는 각자의 존재 당위에 대한 낙관이라고 여기고, 분명 서로 내놓고 표현하지는 않더라도, 감각의 영역에서 공명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진정한 낙관은 철저한 비관 속에서 피어오른다고 생각하거든요. 낙관하기 위해서 비관한다는 게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저는 그런 태도로 살아가고자 하고, 사람에 대한 특별한 기대는 없지만 ‘인류애’ 만큼은 잃지 않고 믿으며 살고 있습니다.
매년 20권 정도의 독서를 하신다고요. 인천 님에게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무엇을 의미하나요?
저의 세계를 넓히는 것이요.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글 내용을 외우게 되고, 그러다 보면 그 글의 배경이 된 사유 체계가 머릿속을 흐르는 경험을 하곤 해요.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의 시선과 생각을 그대로 따라가게 되는 거죠. 암송을 통해 내재화된다는 게 다른 시각 미디어들과의 가장 큰 차이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제 사고의 저변을 넓히고, 현실에서 감각하는 세계 그 이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데 책이 참 좋은 콘텐츠 같아요. 더불어 북클럽을 운영하다 보니, 책을 매개로 계속 새로운 분들을 만나게 되잖아요? 그런 만남들을 통해 다양한 세계를 마주하게 되고, 제가 가진 사고 체계의 표면적이 점점 더 넓어진다고 느껴요. 지금까지 북클럽을 운영하며 100명 이상 만나 온 것 같은데, 그 100여 명이 생각한 ‘정인천’을 통해 저라는 사람이 더 다채로워지고, 그렇게 더 넓은 세계를 가진 사람이 되고 있지 않나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수한 시도의 결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굉장히 다양한 스타일의 옷을 소화하는 걸 볼 수 있어요. 원래 패션에 관심이 많은 편인가요?
저는 개인의 단점을 잘 가리는 것이 ‘패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계기도 저의 외적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 였던 것 같아요. ‘제가 남들보다 훤칠하고, 외적으로 더 멋있었다면 지금처럼 패션에 관심이 많았을까?’ 생각하기도 해요(웃음). 전 20대 때부터 지금까지 굉장히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해봤어요. 옷도 진짜 많이 샀고요. 투자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좀 제 스스로도 기이하다고 느낄 정도로 물욕이 많아요(웃음). 그런데 그렇게 하나둘 시도하다 보니 저에게 어울리는 ‘데이터’가 쌓여서 지금의 제 모습이 됐어요. 그리고 전 스스로 옷을 잘 입는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제 헤어 스타일이나, 수염을 기른 모습이 한 몫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웃음). 흔하지 않다 보니 ‘개성 있다.’ 고 봐주시는 것 같기도 하고요.
평소 즐겨 입는 패션 아이템이 있나요?
평소에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데요. 헬멧 때문에 머리가 많이 눌려서 원하는 스타일을 유지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커버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각종 스타일의 모자를 즐겨 쓰고, 수집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주행 풍과 일교차를 대비하기 위해, 재킷을 즐겨 입는데요. 그러다 보니 웬만한 여름 날씨에도 재킷을 꼭 챙겨 다니는 버릇이 생기더라고요. 더우면 벗으면 되지만, 추우면 답이 없다는 논리입니다. 그런 버릇이 재킷류를 많이 사게 해서 옷장에 사계절과 날씨 변수들을 대비하는 아우터들이 그득합니다.
어느덧 마지막 질문이에요. 인천님에게 옷을 잘 입는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제가 잘 표현되는 옷을 입는 것 아닐까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찾은, 저와 잘 맞는 옷을 입을 때 잘 입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패션에 대한 관심 역시 '재미'의 영역이 가장 커요. 옷을 사러 가서 디자이너들이 어울리는 아이템끼리 매칭해 둔 대로 입으면 재미가 없어요. 다양한 옷을 조합해서 저와 맞는 스타일을 찾아가는 게 재밌어요. 그렇게 자신에게 잘 어울리면서 아이덴티디와 가치관도 은연 중에 표현이 된다면 옷을 잘 입는 것 아닐까 생각해요.
✨정인천 PO의 코오롱몰 픽 아이템 보러가기
1. [스톤아일랜드] 멤브라나 후드 자켓
2. [아디다스] 리버시블 버킷햇 양면 모자
3. [나이키] 축구/풋살화 티엠포 레전드
스포츠 IT 스타트업 유비스랩의 ‘사커비(SOCCERBEE)’ PO(product owner)이며, ‘다소 사적인 클럽(a.l.p.c)’ 북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첫번째 댓글을 달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