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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지나쳐버릴 평범한 순간을 매일의 기록을 통해 ‘나만의 작은 역사’로 만드는 김신지 작가를 만났다. 계절마다 좋아하는 것에 마음을 쏟으며 살아가는 그녀는 최근 출간한 『제철 행복』을 통해 우리에게 스물네 번의 다정한 안부를 건넨다. 당신의 행복한 순간을 잘 누리고 있냐고.
1년 동안 스물네 번의 절기를 따라 살며 느리고 무용한 것들 속에서 발견한 삶의 지혜와, 나답게 행복한 삶에 대해 말하는 김신지 작가. 그녀에게 제철 행복이란 무엇이냐고 물었고, ‘이게 사는 건가’의 순간이 아닌 ‘이 맛에 살지’의 순간을 늘려가는 일이라고 답했다.
어쩌다 절기에 관해 쓰게 된 거예요?
저희 부모님이 농부이시거든요. 농사를 지을 때 절기를 활용하는데 농부가 절기에 맞춰서 해야 할 일을 하듯, 제가 도시에 살면서 때에 맞춰 하는 일이 있어요. 봄에는 봄에는 이른 봄나물로 요리를 해 먹는다거나 북쪽으로 벚꽃 배웅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6월에는 무주산골영화제에 가서 초여름의 정취를 즐기기도 해요. 제가 때마다 즐겨 하는 제철 활동들을 절기에 따라 써보기로 한 거예요.
절기에 따라 살며 어떤 점이 좋았어요?
1년을 사계절이 아닌 '이십사 계절'로 살아가게 된 점이요. 절기가 한 달에 두 번씩 들어 있고 보름 남짓한 단위인데, 절기가 시작될 때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스물네 번 행복해질 기회가 찾아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서요. 1년을 훨씬 촘촘하게 감각하고 때마다 누리고 싶은 행복도 찾아가며 살게 됐어요.
‘자연과 계절’, ‘무용한 것’들을 틈틈이 누리며 사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자연을 좋아했어요?
아니요(웃음). 어린 시절에는 시골에서 살았기 때문에 조금 더 넓은 세상으로 가고 싶은 마음에 ‘어른만 되면 이 마을을 뜰 거야’라면서 지냈어요(웃음). 그땐 자연을 애호하는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커서 생각해보니 시골 아이가 제일 처음 사귀는 친구가 자연이더라고요. 흙 만지고 놀고, 풀꽃으로 반지 만들고… 어쩌면 ‘최초의 우정’ 같은 거예요. 그런 어린 시절을 보내고 스무 살에 바라고 바라던 서울로 왔는데 친숙한 게 자연 밖에 없더라고요. 개천에 나가 걷고, 공원과 나무가 있는 곳에서 마음에 평안을 얻고,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지역에 자취방을 구하고 있는 저를 발견한 거죠. 도시살이하면서 제일 많이 기대고 익숙했던 친구 같은 존재가 자연이었어요.
자연이 ‘최초의 우정’이라니. 정말 멋진 표현이에요. 스물네 번의 절기 중 어떤 절기가 제일 마음에 들었어요?
특별히 어느 절기를 꼽을 순 없을 것 같아요. 절기를 따라 살면서 모든 절기를 공평하게 사랑하게 됐거든요. 각 계절마다 역할이 있고, 때마다의 아름다움이 있어요. 덜 중요하고, 더 중요한 계절은 없다는 걸 알게 됐죠.
작가님을 보면 스스로를 잘 알고 돌볼 줄 아는 사람 같아요. 그런 작가님에게도 ‘나를 놓치며 살았던 시절’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제가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책에, ‘바빠서 나빠지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결국 바쁘니까 나쁜 사람이 되었다.’라는 글을 썼어요. 일에 너무 매몰돼서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니까 마음의 여유도 같이 없어지더라고요. 가족, 친구, 연인과 같은 관계가 정말 소중한데 가깝다는 이유로 전화도, 안부를 묻는 일도 다 귀찮아져서 나중으로 미루게 되고요. 몇 년을 그렇게 보내다 보니 제 자신이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을 열심히 하는 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일을 하고 있는 제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일상도 무너지는 듯했죠.
그때 가장 많이 고민한 건 뭐예요?
삶은 내가 쓴 시간으로 이루어지니까, 내 삶이 좋아지려면 마음에 드는 시간을 늘리고 별로인 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러기 위해선 선택과 포기를 해야 하는 순간이 오거든요. 그때 ‘나는 안정적인 월급이나, 커리어나 명함 같은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일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결국 선택할 수 있는 걸 선택하고, 그 후에 따라오는 것은 책임을 지자는 마음으로 퇴사를 한거죠.
퇴사 후 계획이 있었어요?
아니요(웃음). 퇴사하기 전 몇 년간은 ‘읽고 쓰는 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이 없었어요. 연차가 쌓이지 않은 20대 때는 더 그랬고요. 30대는 일에 집중하면서 자기와 잘 맞는 걸 찾아가는 시기잖아요. 여러 시도와 탐색을 하면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데이터를 쌓았어요.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저에 대해 알게 되고 나서 퇴사를 선택할 수 있었던 거고요.
퇴사 전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 ‘캐릿’의 팀장으로 있었죠. 느리고 천천히 흘러가는 것을 추구하는 성향과는 반대로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트렌드를 파악하는 일을 해왔어요. 기질과 다른 일을 하는게 힘들진 않았어요?
일단 무엇이든 해봐야 나와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트렌드와 관련된 일을 할 때도 안 해본 일이니까, 해보면 알게 되는 부분이 있을 거라는 마음으로 도전했죠. 그리고 리더의 자리를 제안받을 때마다 손사래를 쳤었는데, 더이상 거절할 수 없는 연차가 오잖아요. 그땐 그걸 받아들이고 책임을 지는 것도 어른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서 리더를 맡기로 했죠. 모두 처음 경험해보는 것이기 때문에 도전했어요. 3년을 콘텐츠팀 팀장으로 일하면서 이 일의 어떤 부분들은 저와 맞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고요. 아마도 해보지도 않고 퇴사했다면 후회했을 텐데 맡겨진 것들에 최선을 다한 뒤에 내린 결정이었기 때문에 후회는 없었어요. 실패도 아니었고요. 링 위에서 열심히 뛰다가 하얀 수건을 던진 거죠. ‘저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라고(웃음).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여러 권의 책을 썼어요. 삶의 밸런스는 어떻게 맞췄어요?
밸런스는 잘 못 맞췄던 것 같아요(웃음). 내가 좋아하는 걸 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크니까 시간을 더 쪼개서 쓰게 되더라고요. 9시에 출근해서 저녁 9시에 집에 오면 잠들기 전까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이 3시간 남는 거죠. 그 시간을 더 밀도 있게 써야 하는 거예요. ‘직장인으로서 하루를 열심히 살았으니까 나를 위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을 쓰자!'고 마음을 먹는 거죠. 하루 끝엔 에너지가 없는데, 하고 싶을 걸 할 때 생기는 동력이 있어요. 이상하게 또다른 에너지가 또 생기더라고요.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 『평일도 인생이니까』,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제철 행복』 등 여러 권의 책을 썼죠. 모든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있어요?
‘내가 나여서 살 수 있는 삶이 있다면’이 『제철 행복』의 마지막 챕터 ‘대한’의 제목이거든요. 이게 제가 쓴 책들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주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해요. 내가 나여서 살 수 있는 삶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생각을 옮기는 게 제 에세이 작업이었거든요. 결국 나여서 살 수 있는 삶을 찾는 것은, 나한테 알맞은 행복을 발견하는 것과 다 연결돼요. 대부분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생각하지만 누구나 다 고유한 사람들이거든요. 제 책이 각자의 기질과 성장 과정, 살아온 환경을 토대로 자신에게 알맞은 행복이 뭔지 생각해볼 기회가 되면 좋겠어요. 독자들이 더 즐겁고 충만하게 살 수 있는 시간을 늘려갈 수 있길 바라고요.
결국엔 ‘나다운 삶’으로 이어지는데요. 나다움이란 뭘까요?
‘자기 자신에 대한 디테일을 아는 것’이요. 본인이 어떤 게 좋고 싫은지, 언제 즐겁고 언제 시드는것 같은지, 어떤 건 포기가 되고 어떤 건 안 되는지 등 나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는 게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니까요. ‘나다움’이라는 걸 무엇인가 특별한 걸로 생각하니까 닿지 못할신기루 같은 느낌이 있는데 커다란 개념은 작게 쪼개어보면 도움이 돼요. 예를 들어 모임을 할 때 자기소개하자고 하면 되게 거창해 보이잖아요. 그런데 '요즘 좋아하는 것 세 가지로 나를 소개하기’라고 하면 훨씬 더 쉽게 느껴지거든요.
자연이 때에 맞게 변화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모두 ‘때’가 있다고요. 작가님은 삶의 긴 여정 가운데 어느 ‘때’를 살아가고 있나요?
제게 맞는 행복을 찾아가는 시기인 것 같아요. 막연히 ‘행복이 뭘까?’라고 생각할 때는 행복이 멀리 있고 내 삶에 결여되어 있다고 느꼈거든요. 그런데 ‘나에게 무엇이 행복일까?'라는 질문을 해보니,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을 적합한 문장으로 옮기는 글쓰기를 좋아하는구나’ ‘자연 속에서 계절을 느낄 때 잘살고 있다며 위안을 얻는 사람이구나’ 등 저만의 행복 리스트가 다양해졌어요.
책에서 ‘자연스러운 삶’을 살고 싶다고 했는데, 작가님에게 ‘자연스러운 삶’은 어떤 삶인가요?
나무처럼 새처럼 하루를 사는 것이요(웃음). 세상은 계속 우리더러 더 나아져야 한다고 다그치는데 자연은 나무라지도 채근하지도 않고 그때그때 해야 할 일을 하며 자기 삶을 살거든요. 저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어요. 지금 해야 할 일을 하고, 챙겨야 할 기쁨도 챙기면서 사는 게 자연스러운 삶 같아요. 사실 새와 나무도 열심히 살아요. 추울 땐 숨고, 견딜 땐 견디면서요. 그런데 갓생을 살지도, 번아웃을 겪지도 않을 거예요(웃음). 앞으로 전 ‘이게 사는 건가’ 보다 ’이 맛에 살지’의 순간을 늘려가는 삶을 살고 싶거든요. 제 책을 읽는 독자들도 그랬으면 좋겠고요.
#나의 작은 역사를
써내려가는 일, 기록
기록은 언제 시작했어요?
시간에 휩쓸리며 산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시기에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아침에 일찍 출근해서 퇴근 후 집에 가면 늦은 밤이잖아요. 잠들기 전까지 유튜브나 SNS를 보면서 하루를 넘겨버리니까 시간에 떠밀려서 살아가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마치 거센 물살에 떠내려가는 나뭇잎처럼요. 그래서 오늘 내 하루를 짧게 정리하고, 스스로 매듭을 짓고 마무리하자는 마음으로 5년 일기장을 쓰기 시작했어요.
기록을 하기 전과 후, 삶이 어떻게 달라졌어요?
시간을 주도적으로 쓰게 됐어요. 제가 기록과 관련된 강의를 할 때 보여드리는 이미지 두 장이 있는데요. 하나는 계곡 물살에 흘러가는 작은 배고, 하나는 드넓은 바다에서 방향키를 잡고 항해하는 모습을 담은 이미지거든요. 후자의 삶을 살아가게 된 게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해요.
기록이 작심삼일로 끝나는 분들을 위해 기록을 꾸준히 할 수 있는 노하우가 있다면 나눠주세요.
먼저,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지 마시고요(웃음). 아주 가볍게 시작하면 돼요. 처음에는 ‘한 줄이라도 매일 쓴다’고 생각하고 해보신 다음에 양을 늘려가는 걸 추천해요. 제가 꾸준히 하고 있는 기록도 다 짧고 간단해서 지속할 수 있는 것들이에요.
매일 하는 기록이지만, 특별히 소중하게 다가올 때가 있나요?
저는 5년 일기장을 쓸 때마다 기록의 소중함을 느끼는데요. 작년의 ‘오늘’은 디테일하게 기억해낼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이 일기장을 보면 작년, 재작년의 오늘을 볼 수가 있어서 좋아요. 기록을 해놨기 때문에 볼 수 있는 나만의 작은 역사이잖아요. 오늘이 6월 3일인데, 작년 ‘6월 3일’은 제가 무주영화제에 딱 도착한 날이더라고요. 푸드 코너에서 생맥주 하나를 사서 백은하 기자님과 변요한 배우가 대담을 하는 걸 봤던 기억이 나요. 이렇게 나에게 의미 있는 순간들을 남겨두는 일이 일상을 단단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됐어요. 5년 일기장, 추천해요(웃음).
다섯 줄 남짓한 공간에 일과를 쓰다 보면 글이 시작하다가 끝날 것 같아요(웃음).
그래서 하루 중 일어났던 일 중에 특별히 나에게 의미 있고 기억하고 싶은 것을 ‘선별’해야 해요. 다 쓸 수 없기 때문에 더 촘촘히 하루를 돌아보고 남겨두고 싶은 순간을 기록하는 거죠. 오늘 무엇을 남겨둬야 할지 잘 판단이 서지 않을 때는, 이 일기 아래 칸에 도착할 1년 후의 나에게 물어본다는 마음으로 써보세요. 이 내용이 1년 뒤의 나에게 의미나 재미가 있는 정보일지 생각해 보면 오늘 안에서 적어둘 것을 가려내기가 조금 더 수월해져요.
곧 망종이에요. 이 절기를 특별한 순간으로 만들기 위해선 뭘 하면 좋을까요?
6월 5일부터 20일까지가 망종이라는 절기예요. 장마 직전에 쾌청한 초여름의 날씨가 이어지는 시기인데, 이때만큼은 무조건 바깥으로 나가 즐기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게 지금 저희가 직면한 ‘지상 과제’예요(웃음). 1년 중 누워서 하늘과 나무를 올려볼 수 있는 시기가 손에 꼽을 거예요. 지금 이 시기에는 공원이나 캠핑장이나 어디든 찾아가 누워서 하늘을 바라봤으면 좋겠어요. 자연을 누릴 수 있는 곳에서 맥주 한잔하는 것도 너무 좋을 거고요. 돗자리를 챙기고 밖으로 나가기까지는 귀찮지만 수고를 들여야 아름다운 장면을 목격할 수 있어요. 자신을 위해 그 정도의 부지런함은 발휘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보름이라는 시간이 길지 않아요. 여러분! 밖으로 나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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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기간 6.13(목) ~ 6.23(일) 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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