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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놀이공원, 블루도어북스의 김진우 대표를 만났다. 이 책방에는 철학, 건축, 우주, 미술, 소설, 에세이, 그림책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림과 음악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사전 예약으로 입장권을 구입한 후 제한된 시간 동안 이용할 수 있는 블루도어북스. 이곳은 외부 세상과의 연결을 잠시 멈추고 자기 안으로 침잠하기에 좋다. 은은한 조명, 인센스와 함께 공간을 둘러싸는 음악은 각 자의 세계로 몰입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동심을 발견할 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다는 그에게 블루도어북스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때를 기다리지 않는 마음
블루도어북스를 오픈하기 전까지 굉장한 다양한 일을 했죠.
대학을 그만둔 이후로 다양한 일을 했어요. 패션학과를 자퇴하고 우산을 만들어 판매했고, 아픈 부모님을 대신해 안성에서 부모님 식당을 맡아 운영했고요. 동시에 블로그에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올리고 읽은 책을 소개하고, 제 책을 내기도 했어요. 몇 년 정도 블로그에 올리다보니 책 관련 콘텐츠 반응이 점점 많아지더라고요. 좋아해 주시는 분들도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죠. 그래서 온라인 서점을 열어 책을 판매하고 포장하고 발송까지 다 했어요. 책이 팔리는 걸 보면서 기쁘더라고요. 당시에 식당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있었고, ‘계속 걸어가도 괜찮나’하는 고민을 매일 하고 있었는데 책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다 보니 제가 살아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게 진우 님의 첫 서점, ‘도하서림’으로 이어진 건가요?
식당과 온라인 서점을 함께 운영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책도 점점 많아지고 더 이상 이곳에서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죠. 점점 작은 세계에 갇히는 느낌이었어요. 그때 환경을 바꾸어야겠다고 결정했어요. 인간이 갖고 있는 자유 중 하나가 스스로 존재할 환경을 선택할 수 있다는 거거든요. 제 마음이 원하는 곳이 있어 그곳에 절 던져보기로 한 거죠. 처음엔 서점 목적의 공간이 아니라 재고 창고 겸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작업실 용도로 서울역 근처에 공간을 하나 구했어요. 그런데 공간을 둘러보면서 ‘지금’ 서점을 해야겠다고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동안은 ‘언젠가 서점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언젠가’는 절대 오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걸 해야겠다는 생각에 오프라인 서점을 준비했어요.
완벽한 때를 기다리기보다 실행했네요.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갖추어지는 때는 없어요. 그래서 대단한 걸 생각하기보다 제 삶을 이루고 있는 작은 단위인 ‘책, 음악, 그림’을 연결해서 공간을 만들었어요. ‘지브리’나, 『해리포터』 『토이 스토리』를 포함해 제가 읽은 책을 비치해 두었고요. 그 책들이 선사하는 몽글몽글함을 나누고 싶었거든요. 또 그땐 제가 읽지 않은 책을 판매할 자신이 없었고요. 음악도 정말 신중하게 선정해서 틀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도하서림에 가면 책방 주인이 그린 그림이 있대’, ‘그림을 그리면서 들었던 음악도 들을 수 있고, 직접 쓴 책도 있다고 하더라’와 같은 말을 할 수 있는 작은 세계가 만들어진 거예요. 도하서림에는 어느 것과도 연결되지 않은 채로 의무감으로부터 해방되는 순간을 바라는 분들이 오셨어요. 그런 분들께 문밖의 세계와 완전히 다른 도화서림이라는 한 세계를 선물하고 싶었고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단골’이 생기는 걸 보고 서점 발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했어요.
#동심을 발견하는 공간
그렇게 시작한 도하서림을 정리하고 블루도어북스를 열었죠. 공간 확장을 결심하게 된 이유가 있어요?
여러 사람들의 아름다운 세계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저뿐만 아니라 고객들, 제 친구들, 부모님까지 각자의 세계를 가지고 있잖아요. 다양한 사람들의 세계관을 책을 통해서 만나고 싶었어요.
이곳의 컨셉은 뭔가요?
블루도어북스를 찾는 분들이 동심을 다시 만나는 공간이 되길 바래요. 저는 잠시 잊고 지낸 동심을 다시 찾은 그 순간, 비로소 더 나은 어른이 된다고 믿거든요. 자기 안의 순수한 마음을 다시 만나셨으면 좋겠어요. 모든 것으로부터 잠시 연결을 끊고 싶을 때 편히 와서 쉬어가셔도 좋고요.
서점을 운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뭐예요?
서점을 방문하는 분들의 목적을 제가 정하지 않는 거예요. ‘이곳은 서점이니까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해’가 아니라 서점이니까 아무 생각 없이 쉬어도 되고, 생각나는 글을 적어도 되고, 소설을 읽다 그림책을 보아도 되고, 그림 앞에서 노래를 들어도 되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도 되고, 피곤하면 잠시 눈을 붙여도 되는 거죠. 이곳에서 각자만의 세상을 사셨으면 해요.
블루도어북스의 하나 독특한 점은 입장료를 지불하고 제한된 시간 동안 이용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 제도를 택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장사를 하는 사람이기에 늘 ‘값’에 대해 생각해요. 그건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겠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타인과 세상에 대한 이해, 현재 사회 시스템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 제가 장사를 하면서 고객에게 값을 받지 못한다면 공감을 받지 못한 거예요. 앞으로 고객님들에게 좋은 작품들과 책을 더 많이 보여 드리고 싶고, 언젠가는 서점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길 바래요. 직원들에게도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싶고요. 그러기 위해서 수익 구조에 대한 고민을 매일 하고 있어요. 또 블루도어북스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를 세심하게 고민하고 제공하려고 하고요.
이곳에선 책을 읽을 뿐만 아니라 그림과 음악을 감상할 수 있고, 그림을 그려볼 수도 있죠. 다채로운 디자인의 조명과, 해리포터 존까지… 오감을 자극하는 ‘놀이공원’ 같아요. 이 모든 건 진우 님의 취향이 반영된 거겠죠?
취향이기도 하겠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제가 가지고 있는 결핍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해요. 어쩌면 세상에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것들을 채워넣었거든요. 따뜻한 응대와 다정한 환대, 좋은 음악, 그리고 연결되어 있던 것들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차단성까지요. 제가 가진 결핍과 고객님들이 가진 결핍이 만나는 장소인 거죠.
#책, 그림, 음악을 연결하다
결핍이 만나는 곳이라니, 흥미로워요. 책 선정은 어떻게 하나요?
동료들과 함께 직접 읽고 좋은 책들을 선정하는 게 기본적인 룰이에요. 저희가 큐레이션을 할 뿐만 아니라 고객분들이 물어보실 때 안내해 드리기 위해선 내용을 잘 알고 있어야 하거든요.
책은 언제부터 좋아했어요?
수능이 끝난 뒤의 어느 날이었어요. 반에서 일 등을 하는 친구가 『위대한 패배자』라는 책을 읽고 있더라고요. 주위는 소란스러운데 홀로 고요하게 책 읽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그리고 제가 그 당시에 버스를 타고 통학했는데 버스 안에서 책을 읽는 분들이 있었거든요. 그때도 ‘책 읽는 사람은 너무 멋있다’라고 생각했어요. 문득 ‘책 읽는 사람'이 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베스트셀러부터 하나씩 읽기 시작했어요. 어렸을 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책을 통해서 정말 많이 성장했고, 책에 받은 은혜가 정말 많아요. 저는 책을 믿고 있어요.
진우 님이 책만큼 사랑하는 게 또 있죠. 그림을 그리는 일. 유화 수업도 진행하고 있고요. 그림은 배운 건가요?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어요. 요리도, 그림도, 글쓰기도요. 유화는 처음엔 여러 자료를 찾아보며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문득 깨달은 건, ‘이 방식은 이 사람의 방식이다. 이건 학문이 아니니까 나는 내 방식으로 해보자’는 것이었어요. 일단 물감을 사서 그려보면 되는 건데 물감을 뭐 살지 고민하며 그 고민 뒤에 숨어 있었던 거예요. 어느 날 식당에서 일을 하다 근처 화방에 가서 작은 캔버스와 물감을 샀어요. 그냥 예쁘고 귀여운 거, 좋아 보이는 걸 사 와 식당에 있던 쿠킹포일에 물감을 푹 짜서 붓으로 찍어서 ‘탁’ 쳤거든요. 처음 붓질했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요. 하고 싶은 걸 생각만 하지 않고 실제로 했다는 것에 마음에 무언가 가득 찼어요.
그림을 그리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게 아니군요.
살면서 어떤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는 엄청난 계기나 이벤트는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저에게 계기를 찾는다는 건, 그 말 뒤에 숨어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려는 마음이에요. ‘계기’라는 건 내가 하고자 하는 걸 하는 바로 그 순간이에요. 누구나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 전에는 많은 두려움을 느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겠다고 결정하는 순간, 그것이 유일한 계기라고 믿어요. 저도 정말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두려움을 이겨내려고 해본 적이 없어요. 그냥 같이 데리고 가요. 전 그림을 못 그린다고 누군가에게 비난받는 것보다, 비난이 무서워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지 않는 것이 더 두려웠던 거예요.
취미로 시작한 일이지만 누군가에게 선보일 하나의 작품이 됐어요. 판매가 되기도 했다고요.
처음부터 이렇게 그린 건 아니에요. 아주 작은 스케치북에 그렸다가 조금씩 크기를 키웠어요. 무엇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랑하는 사람들이 절 응원해 주고, 내 그림을 아껴준다는 게 느껴졌어요. 응원의 마음들이 제가 계속해서 그릴 수 있는 힘이 됐고요. 다른 작가님들의 작품의 값이 굉장히 비싼데 그 값이 어느 날 한순간에 매겨진 게 아니에요. 과거에서부터 계속해서 쌓아왔던 노력과 무수한 고독감을 견뎌낸 값이 포함된 거죠. ‘서사’가 담긴 거고요.
진우 님에게 그림은 어떤 의미예요?
‘아무 생각 안 할 수 있는 자유’요. 그림을 그리는 순간 모든 의무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거든요.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돼서 좋아요. 깊은 몰입의 순간에 빠졌다 나오면 저를 둘러싸고 있는 고민이나 제가 사랑하는 것들을 다시 똑바로 바라볼 수 있어요. 그것은 제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데 큰 도움이 돼요. 무엇보다 그림을 그릴 때면 제가 현재에 살고 있다고 느껴요.
진우 님이 그린 작품 앞에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도 있죠. BGM 구성은 어떻게 하나요?
음악은 ‘블루도어북스는 이런 곳입니다’라는 정체성을 알려주기 위한 하나의 도구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정해요. 한 곡 다음에 어떤 음악이 나올지 그 흐름이 중요하죠. 저희는 입장곡이 있고 본 곡, 퇴장 곡이 따로 있어요. 처음에 입장했을 때는 조금 리듬이 있는 곡을 틀었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노랫소리를 줄여요. 본 곡 첫 음악이 흘러나올 때 인센스를 켜요. ‘블루도어북스는 이런 곳이구나’라고 공간으로 이야기를 해주는 거죠.
재즈, 클래식, 발라드, 인디 가요, J-POP 등 여러 장르의 음악이 흘러나와요. 좋은 노래를 발견하는 진우 님의 노하우가 있나요?
저는 예전부터 라디오를 많이 들었어요. ‘김현철의 골든디스크’ ‘배철수의 음악캠프’ ‘4시엔 윤도현입니다’ ‘푸름밤, 옥상달빛입니다’ 등 모두 즐겨 들었죠. 채널마다 다루는 음악의 장르가 달라요. 요즘은 알고리즘을 통해 비슷한 장르의 음악만 추천을 해주는데, 라디오는 다양한 청취자들이 자신의 사연에 맞는 노래를 신청하다 보니 흘러나오는 곡들이 정말 다채롭고, 덕분에 새롭게 알게 되는 곡이 정말 많아요. 그래서 라디오를 듣다가 좋은 음악이 있으면 메모해 두거나, 음악을 찾아주는 앱을 켜서 저장해둬요. 그 후에 나에게만 좋은 노래인지 블루도어북스에 틀어도 되는 노래인지 신중하게 고민해요. 매번 같은 노래가 계속 나와서도 안 되고, 계절이 바뀌면 노래의 분위기도 바뀌어야 하거든요. 때마다 어울리는 곡을 선정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고민하고 있어요.
곧 안국점에 새로운 블루도어북스가 생기죠. 한남점 블루도어의 컨셉이 ‘놀이공원’이라면, 안국점은 ‘집’이라고요. 그곳에선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나요?
안국점은 ‘집’처럼 느낄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에요. 물론 서점이라는 정체성은 지키면서요. 요가 수업이나, 유화 클래스, 워크숍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함께 곧 오픈될 예정이에요. 언제든지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길을 지나가다가 보리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공간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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