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KOLONMALL. ALL RIGHT RESERVED
채소 식탁으로 나를 돌보는 삶을 실천하고, 이웃과 함께 맛있는 요리를 먹고 나누는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고 싶다는 신소영 쉐프를 만났다. 인터뷰가 끝난 뒤 손수 키운 제철 재료들로 만들어 준 토마토 파스타에는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그녀의 다정한 시선과 따뜻한 마음이 오롯이 담겨있었다.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감각
Q. 쉐프가 되기 전에 공연 기획 쪽에서 일을 했었다고요.
맞아요. 제가 스페인어를 전공했지만 문화 예술 쪽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졸업할 때쯤 국제아트페어에서 코디네이터로 일할 기회가 생겨 그때부터 공연 기획 관련 일을 시작했죠. 그때 저의 주 업무는 예술가를 서포트하는 일이었는데 보람차고 즐거웠어요. 하지만 한편으론 아쉬움이 있었어요. 제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고, 주어진 일만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조금 답답하더라고요. 작은 일이라도 내가 시작하고 끝내는 감각을 느끼고 싶었고 그게 저에게는 너무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Q. 그래서 요리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건가봐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독립을 했는데, 끼니를 스스로 챙겨 먹어야 하잖아요. 퇴근하고 와서 너무 피곤한데 요리하는 과정은 너무 재밌는 거죠. 과정에 깊이 몰입하게 되고, 제 손길과 생각이 담긴 결과물을 보는 것도 즐거웠어요. 그러면서 요리에서 재미를 발견했고요.
Q. 그때 스페인으로 요리를 배우러 떠난 거예요?
바로 떠나진 않았고요. 제가 대학원을 다녔는데 그때 연구를 위해 스페인 ‘산세바스티안'이라는 곳에 갈 기회가 있었어요. 그곳의 음식이 너무 맛있었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먹고사는 모습이 보기 좋더라고요. 그때 저는 그 나라의 언어나 건축물보다 식문화에 더 흥미를 느꼈어요.
Q. 산세바스티안은 이후에 다녔던 요리 학교가 있는 지역이잖아요. 다시 돌아갈 만큼 정말 좋았나봐요. 처음 갔을 때 특별히 마음에 와닿은 장면이 있었어요?
북적거리는 골목에 있는 타파스 바에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였어요. 제일 인상 깊었던 건 계절에 따라 좋은 식재료가 식당 앞에 전시되어 있더라고요. 토마토 한 소쿠리, 버섯 한 바구니. 그걸 보면서 형언할 수 없는 좋은 기분을 느꼈어요.
Q. 그래도 쉐프가 되기로 마음을 먹는 건 큰 용기와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을 텐데요.
요리를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그동안 쌓아온 커리어를 뒤로하고 완전히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게 쉽진 않았어요. 그런데 문득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는 것도 나의 성장과 연결되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떠나기 위한 핑계이지 않을까 싶지만(웃음). 일단 가서 공부해보고 아니면 돌아오자는 마음으로 떠났는데 2년 동안 요리 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이어갔어요.
#작은 성취로 만들어가는 건강한 식습관
Q. ‘마하키친’은 제철 재료로 만든 요리와 건강한 식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요리 학교에 다니면서 현지 바스크 전통 음식점에서 일을 한 적이 있거든요. 그때 ’토마토 샐러드’가 메뉴에 있었어요. 농장에서 딴 토종 토마토, 그 지역에서 나는 올리브유, 지역 염전에서 얻은 소금을 버무려 먹는 건데 너무 맛있더라고요. 손님들도 좋아하고요. 이런 메뉴를 통해 자연, 사람, 음식이 하나로 연결 되는 걸 느끼다 보니 건강한 식단이나 제철 채소에 더 관심이 가더라고요.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마르쉐 농부 농장을 알게 됐고요. 스페인에서 배웠던 건강한 식문화를 마하키친을 통해 실현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Q. 문득 쉐프님의 식탁이 궁금해요.
조금 부끄럽지만 건강한 음식 문화를 제안하는 일을 하면서도 제 식습관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어요. 몸을 많이 쓰는 일을 하다보니 자극적인 음식을 먹기도 하고 야식도 먹었죠. 제가 전하는 메시지를 살아내지 못하니까 마음이 불편하더라고요. 내가 실천하지 않는데 다른 분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싶었죠.
Q. 쉐프님과 조금 가까워진 것 같아요.
저도 떡볶이 좋아하거든요(웃음). 그런데 좋은 재료를 발견하는 여정에서 동물성 식품이 생산되는 과정이 건강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후로 건강한 땅에서 나는 채소들을 많이 먹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Q. 요즘처럼 쉽고 빠르게 맛있는 음식을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품이 많이 드는 채소 식을 하기가 쉽지 않아요. 늘 마음은 먹지만.
혼자서는 식습관을 개선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저도 밑미 <하루 한끼 채소> 리추얼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하루 한끼만 채소 위주로 먹기’를 실천하다보니 횟수가 늘어났고 지금은 제 생활의 일부가 됐어요. 이건 굉장히 많은 준비와 결심이 필요하고 ‘틈’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누군가와 함께하면 지속할 수 있는 힘이 생겨요.
Q. 달고 짜고 매운 것에 입맛이 길들어서 한순간에 바꾸기 힘든 것 같아요. 입맛을 바꾸기 위해 가볍게 실천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요?
실용적인 방법으로는 ‘음식 명상’이 있어요. 음식을 천천히 씹어서 넘기면서 어떤 맛이 나고,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 관찰하는 거죠. 우리가 뭔가를 먹긴 하는데 그게 진짜 우리가 원하는 게 아닐 수도 있거든요. 저도 예전에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는 거로 보상하곤 했으니까요.
Q. ‘오늘 고생했으니까 이 정도는 먹어도 돼’하면서요.
그렇죠. 그런데 어느 날 ‘꼭 맛있는 음식만이 내 하루에 대한 보상일까?' 의문이 들더라고요. ‘맛’이라는 게 엄청난 행복감과 만족감을 주는 건 맞아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마음이 공허해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걸 당장 해소하기 위해 먹기도 하잖아요. 그 후에 따라오는 부수적인 어려움이 많고요. 속이 불편하다거나, 아침에 피곤하다거나. 뭔가 먹고 싶다는 기분이 든다면 원인과 결과를 다르게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왜 그런지 내 마음을 살펴보고 음식이 아닌 다른 걸로 풀어낼 방법을 찾는 것도 좋고요.
Q. 정곡을 찔린 것 같아요. ‘하루 한끼라도 건강한 식단을 해야지!’라고 마음을 먹고도 작심삼일이 된 적이 많아요. 어떻게 하면 지속할 수 있을까요?
아주 작은 성취를 조금씩 쌓아보세요. 하루 한끼만이라도 깨끗한 음식을 먹고 몸에서 느껴지는 변화나 기분을 살펴보고요. 몸과 마음, 내 기분이 좋은 쪽으로 변화하는 걸 느끼면 그 자체가 지속할 힘이 돼요. 또 일주일이든 한 달이든 내가 먹은 것들을 꼭 회고 해보시라고 권해드려요. 한 달간 채소 식단을 하겠다고 계획했다면, 한 달 후에 그간의 기분을 돌아보는 과정이 다음 한 달을 계획하는 데 도움이 되거든요.
Q. 좋은 쪽으로 변화하는 건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요. 그래서 더 가치 있는 거겠죠?
맞아요. 언어도 운동도 다 배우는 과정이 있잖아요. 내 몸속으로 들어가는 음식을 선택하고, 요리를 하기 위해 훈련을 하는 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자극적인 음식을 가끔 먹거든요? 다만 건강한 균형을 맞춰가는 게 필요해요. 가장 쉬운 방법으로 주말에 일주일 치 식단을 준비해두는 걸 추천해요. 제가 최근 목표라는 걸 다시 생각해봤는데요. 목표를 달성하려면 한 가지를 이루기 위해 다양한 자극을 쳐내는 작업이 필요하잖아요. 채소 식단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다른 변수가 끼어들 틈 없이 선택지를 정돈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아요.
Q. 한 인터뷰에서 음식을 만드는 게 예술과 같다고 했어요. 음식과 예술, 어떤 부분이 닮았나요?
제가 예술 경영을 공부하면서 생각했던 거지만 무대에 올라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 것만이 예술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일상에서 무슨 일을 하든 본질을 추구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요리를 하면서 ‘연결이 회복되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제철 재료의 질감, 색깔, 향을 맡으면서 ‘이게 어디서 왔을까?’ 떠올려 보고, 그 재료가 자라는 계절의 흐름을 느끼기도 하고요. 그 과정을 통해 ’나는 이 세상에 혼자 존재할 수 없고 다양한 존재들과 협력하며 살 수 있는 존재구나’ ‘지구와 자연 안에 있는 존재구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런 생각에서 안정감을 느꼈고요.
Q. 본질을 추구한다면 예술이라는 말, 너무 인상 깊어요.
요리는 매번 새롭게 자기 색깔을 담아 만들어갈 수 있잖아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될 수 있어요. 무엇보다 예술은 소통이 중요하거든요. 향유하는 사람이 있어야 그 가치나 의미가 더해지니까요. 내가 만든 요리를 누군가와 함께 먹고 나누면서 사랑과 응원을 전할 수 있어요.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요리를 작은 예술이라고 자연스레 생각하게 됐어요. 물론 힘들 때도 있지만 손길과 정성 마음이 담긴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함께 나누는 행복이 너무 좋아요. 그것만큼 더 바랄 것도 없고요.
#지금, 여기에서부터 시작할 것
Q. 쉐프님은 ‘기후미식연구소’와 ‘기후미식연구회’의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죠. 이건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제가 요리사다보니 식재료를 찾아서 많이 돌아다니거든요. 2022년 가평에 있는 유기농 포도 농장 근처에 갔는데 그해에 비가 엄청나게 많이 왔어요. 추석쯤이면 포도를 수확할 때여서 맛있는 포도를 먹겠거니 했는데, 감싸고 있는 종이를 뜯을 때마다 포도가 다 썩어있는 거예요. 건질 게 없었어요.
Q. 기후 위기가 정말 심각하다는 걸 체감했던 순간이네요.
맞아요. 오랫동안 농사지은 농부님이 허망해하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도 안 좋더라고요. 앞으로 어떤 재료로 요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위기감을 느끼기도 했고요. 또 제가 종종 기후 관련 강의를 들으러 가는데, 음식물을 처리하고 폐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비중이 꽤 크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런 소식들을 접하니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기존의 삶의 방식을 유지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마을 공동체를 지원하는 도시 재생 사업에 지원하게 됐고, 작년에는 ‘마하 기후미식연구소’를, 올해는 ‘화도읍 기후미식연구회’를 만들었어요.
Q. ‘기후미식연구소’와 ‘기후미식연구회’ 두 기관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기후미식연구소는 건강한 라이프스타일과 식습관 등에 관한 이론이나 방법을 연구하는 곳이고요. 기후미식연구회는 연구한 내용을 직접 삶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하나의 커뮤니티예요. 주민분들과 한 달에 한 번 쓰레기 산에 가서 쓰레기를 줍고, 텃밭 가꾸기도 하고, 농부님을 도우면서 농사를 배우기도 하고요. 서로 기대고 의지하는 즐거움을 느끼기도 하면서요. 더 많은 분들이 이 문화를 경험했으면 하는 마음에 마하키친에서도 한 달에 한 번 채소 음식도 해 먹고 모여 놀기도 해요.
Q. 스페인에서 경험했던 좋은 식문화를 이곳에서 실현하고 있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제가 다른 나라의 문화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지금 있는 곳에서 느끼는 만족이 없고, 내가 원하는 것은 외국에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요. 이제는 바뀌었어요. 가장 가까운 주변의 이웃에게 건강하게 먹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자고 설득해나가는 게 맞는 것 같고요. 결국 내가 사는 곳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가는 게 나에게 더 좋은 삶의 방식이라는 것, 내가 원하는 삶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Q. 쉐프님이 하고 있는 일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어요?
다 같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나와 내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돌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모든 존재가 연결되어 있거든요. 모두가 주변 이웃들과 함께 건강한 음식을 먹으면서 즐겁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해요.
Q. 준비 중인 프로젝트가 있다면 나눠주세요.
최근에 기후미식연구소 첫 프로젝트로 『봉금의 뜰 레시피』 라는 책을 썼어요. 채소 식단의 레시피와 함께 둥글고 재미있게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담았죠. 앞으로도 음식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과 좋은 경험을 누리고 싶어요. 워크숍이나 팝업, 강의 등 다양한 형태의 프로젝트를 통해 저희 메시지가 한사람에게라도 더 가닿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Q. 쉐프님을 통해 많은 분이 채소 음식을 가까이할 수 있게 되면 좋겠네요.
제가 채소 중심 요리를 하면서 느낀 게 있어요. 채식이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채소로만 요리해서 사람들에게 맛을 보여드린 적이 있는데 거부감 없이 맛있게 잘 드시더라고요. 그런데 저에게 요리를 요청하시는 분들에게 ‘육류나 유제품이 배제된 음식이에요’라고 말씀드리면, ‘사람들이 안 좋아하지 않을까요?’하고 걱정을 많이 하세요. 그런 상황을 보면서 ‘채식주의’ ‘비건’이라는 정체성 안에 갇혀 있기보다 사람들이 조금 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변화를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은 ‘기후미식’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더 쉽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보려고 합니다. ‘마하키친’이 가진 의미처럼, ‘친근하게’!
『나를 만드는 바스크 요리』의 저자이자, 마하키친의 대표로, 현재 ‘마하 기후미식연구소’와, ‘화도읍 기후미식연구회’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첫번째 댓글을 달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