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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자신감이 넘치는 편은 아니에요. 하지만 무엇을 하든 최선을 다합니다.”
『도쿄 큐레이션』과 『패션 만드는 사람』의 저자 이민경 작가는 성실하고 진실된 삶의 태도가 자신이 가진 강력한 무기임을 지금까지의 발자취로 증명해 보였다. 그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인터뷰 장소로 특별히 ‘홍건익가옥’을 추천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서촌이나 북촌처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을 좋아해요. 서울은 워낙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라 가끔 그 속도를 따라가기 벅찰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바깥세상과 단절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좋아요. 고요하고,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아 안정감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보통 우리는 어떤 공간을 찾을 때 특별한 목적이나 의도를 가지고 가잖아요. 여기는 그런 목적성 없이도 머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어느 도시를 가든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마음을 여유롭고 풍요롭게 해주는 것 같아요.
유행과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으면서 클래식하고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좋아한다는 게 흥미로워요.
패션 에디터로 일하면서 브랜드가 인기를 얻었다가 금세 사라지고, 다시 부활하기도 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그 과정에서 어느 순간 ‘이게 정말 무슨 의미가 있지?’,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더라고요. 결국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 곁에 남아 있는 것, 쉽게 변하지 않는 가치에서 의미를 찾았고요.
두려움 없는 마음
요즘 하루 일과가 어떻게 돼요?
아침마다 레몬물을 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해요. 일주일에 네 번 정도는 운동도 가고요. 운동 끝나고 나면 이메일을 확인하면서 일을 시작해요. 요즘은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데, 여러 브랜드의 콘텐츠 관련 글을 쓰기도 하고, 준비하는 책과 관련된 취재도 하고, 매거진 번역 작업도 하고 있고요. 뭐, 여전히 마감이 있는 삶을 살고 있어요.
오랫동안 몸담았던 패션 업계는 떠났지만, 그 이후로도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데요. 민경님의 시작이 궁금해요.
원래는 기자가 되고 싶어 언론을 전공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일기나 독후감에 진심을 다할 만큼 글쓰기를 정말 좋아했고요. 상을 받으면 항상 글과 관련된 상이었거든요. ‘매거진 키즈’로 자라서 잡지도 좋아했고 문화, 건축, 도시,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도 많았고요. 신문 기자가 되면 특정 분야에 관한 글을 써야하는 반면, 잡지 에디터는 패션 이외에도 문화, 예술, 인문 등 여러 방면의 글을 쓸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전공을 살리면서도 다양한 분야를 다룰 수 있는 이 길을 선택했어요.
패션 업계가 치열한 걸로 유명하잖아요. 중간에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 해본 적 없나요?
물론 있죠. 밤낮 없이 일했으니까. 20대 때는 아침에 퇴근한 적도 많았어요. 그런데 매달 마감이 있고, 하나를 끝내면 곧바로 다음 달에 해야 할 일이 기다리고 있어서 미친 듯이 일만 했어요. 다른 걸 생각할 여력이 없었거든요. 그렇게 10년 넘게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결국 몸이 안 좋아져서, 자연스럽게 패션 업계를 떠나게 됐어요. 그 후론 밤낮이 있는 삶을 기대하며 다른 분야로 이직을 했죠.
패션 에디터로서의 삶은 민경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한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사람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되거든요. 보고 들은 것을 내 것으로 소화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어요. 또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죠. 뭘 하든 두려움이 없어요. 에디터로 일하면서 기획, 섭외, 시안 작업, 화보 촬영, 인터뷰, 분석 기사 작성 등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왔기 때문에 웬만한 일에는 겁이 안 나요. 패션 업계를 나와 이직해서 새로운 업무를 맡았을 때도, 프리랜서가 된 후에 외부 전시 기획 의뢰가 들어왔을 때도, 에디터 시절의 경험들로 업무의 흐름이 예측이 되니 할 수 있겠더라고요. 실제로 해냈고요. 모든 일은 결국 설득의 과정인데, 그걸 수도 없이 반복해 왔으니까… 다 되더라고요(웃음).
나와 온전히 마주하는 시간
그렇게 열심히 달려오다 잠시 멈추고, 도쿄에서 6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는데요. 그 시간을 통해 새롭게 배운 게 있나요?
저와 마주하는 시간을 보내고, 제 삶을 돌아보는 법을 배웠어요. 일본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조또마테 구다사이’,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라는 표현인데, 이 말이 일본의 문화적 특성을 잘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선 ‘빨리빨리’가 중요한 가치라면, 일본은 여유를 두고 기다리는 문화가 자리잡혀 있거든요. 개인의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고 ‘나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는 나라라 더 그런 것 같아요. ‘혼밥’ 문화도 일본에서 시작됐고, 심지어 어떤 카페는 정해진 시간 동안 손님들이 침묵을 지켜야 하기도 해요. 그런 곳에서 저만의 시간을 보내며 사유하고 관찰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어요.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직접 살아보며 느낀 한국과 도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한국 사람들은 미래를 위해 살아간다면, 일본 사람들은 ‘현재’에 집중하며 살아간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인 것 같아요. 물론 지진이나 태풍이 잦은 일본의 날씨나 지리적 특성도 영향을 미쳤겠죠.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살다 보니, 사람들 의식 속에 ‘오늘을 살자’는 생각이 자리 잡은 것 같아요.
한국에 돌아온 지 2년이 지났는데, 지금도 민경님만의 속도로 잘 살아가고 있어요?
그러려고 하는데, 사실 쉽지 않아요. 한국인들이 일본 사람들보다 SNS를 더 많이 사용하는 것 같거든요. 자기를 브랜딩하고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분들이 많고요. 물론 자신을 표현하고 증명하기 위한 활동이 성장의 측면에서 의미 있는 일인 건 맞아요. 그런데 너무 많은 정보에 노출되다 보면 보고 들리는 게 버거울 때가 있어요. 그래서 너무 피곤할 땐 인스타그램을 아예 쉬기도 해요.
저도 요즘 느껴요. 보고 듣는 게 많으니까 피로하고, 쉬고 싶지만 뭔가를 계속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맞아요, 가끔은 그냥 퍼져 있고 싶을 때도 있잖아요. 그런데 막상 쉬면 '이러고 있어도 되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누구에게나 멈춰 서는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자기 삶도 너무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거리를 두고 보면 보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해야 할 일이 많더라도 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게 뭔지 깊이 생각할 시간은 꼭 확보하려고 해요. 나만의 속도를 유지할 수 있게. 덕분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이 길러진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깨달음이 더 크게 와닿았던 건, 도쿄로 가기 전 정말 치열하게 살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정말 극명하게 대비되는 삶을 살면서 발견하게 되는 것들이 많았거든요. 정말, 도쿄에서의 시간은 저에게 하나의 긴 ‘산책’이었어요.
도쿄에서의 삶이 가져다준 가치관의 변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제는 무엇이든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쉽게 안다고 말하지 않으려고 해요. 또한 사람이나 상황을 쉽게 평가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요. 『도쿄 큐레이션』을 펼쳐 거의 처음 마주하게 되는 표지에 ‘비로소 보이는 풍경’이란 글이 있거든요. 이건 제가 좋아하는 책, 『앵무새 죽이기』에 나오는 ‘상대방의 신발 속으로 들어가 걸어 다닐 때까지는 그 사람을 절대 이해할 수 없지’라는 문장을 떠올리며 쓴 거예요. 한 나라를 잠깐 여행하는 것과 그 나라에서 실제로 살아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거든요. 예를 들어, 일본에서 맥도날드를 ‘마그도나르도’라고 발음하는 걸 두고 웃는 분들이 있는데, 일본어를 배우면 그 발음이 자연스러운 이유를 이해하게 돼요. 일본어에는 받침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발음할 수밖에 없는 거죠. 현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함께 살아보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많았어요. 편견이 깨지는 순간도 많았고요. 덕분에 사람을 바라보는 시야와 이해의 폭이 넓어졌어요.
남이 아닌, 나에게 떳떳한 삶
취향과 스타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트렌디하면서도, 자기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는 팁이 있을까요?
너무 어려운 질문이에요. 다만, 자신의 스타일을 찾는 건 시행착오를 겪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요. 무엇이든 경험이 쌓여야 하니까요. 진짜 이상한 것도 사보고, 좋은 것도 사보고 다양한 시도를 해봐야 해요. 그러다 보면 나에게 어울리는 것을 조금씩 찾아가게 돼요. 긴 여정이죠.
자기만의 스타일과 취향을 쌓는 건 결국 자신을 잘 아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 같아요. 민경님이 생각하는 ‘자기다움’이란 무엇인가요?
트렌드나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믿는 가치관이나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게 ‘자기다움’인 것 같아요. 물론 쉽지 않기 때문에 평생의 과업이라고 생각하고요.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은.
‘민경다움’을 유지하게 해주는 삶의 태도나 가치관이 있나요?
‘성실한 진심’이요. 제가 좋아하는 표현인데요. 재능도,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성실하게, 진심을 담아 일하는 거예요. 글을 쓸 때도 진심이 아니면 한 글자도 쓸 수가 없어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온 마음을 다해 쓴 글을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도쿄 큐레이션』도 오랜 시간 정성을 담아서 쓴 책이에요. 직접 발로 뛰며 사람들을 만나 취재하고, 새로운 공간을 방문해 보고 경험한 뒤에 쓴 글이거든요. 남들에게 떳떳한 것보다 저 자신에게 떳떳한 게 중요해요.
남이 아닌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게 더 중요한 거네요?
모든 건 상대적이니까 누군가에게 좋은 것이 누군가에겐 아닐 수도 있어요. 그건 제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스스로 납득할 수 있고 부끄럽지 않으면 그걸로 만족해요. 그래서 화려하고 훌륭한 결과물보다는 ‘최대치의 최선’을 다하려고 하고요. 그리고 제 손을 떠난 뒤로는 뒤돌아보지는 않아요. 순간의 최선이었으니까. 다음으로 넘어가야죠.
앞서 말한 것처럼, 지금의 취향을 만들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잖아요. 앞으로 5년, 10년 후에도 지금의 취향을 그대로 유지할 것 같아요? 아니면 시간이 지나면서 변할 것 같나요?
주변 환경이나 트렌드에 따라 조금씩 변할 수도 있겠지만, 클래식한 것과 ‘손맛’을 좋아하는 건 아마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어릴 때도 지금의 저와 크게 다르지 않았거든요. 스타일도 거의 안 변했고, 20대 때 사진을 봐도 지금과 큰 차이가 없어요. 심지어 중학교 때 입던 여름 카디건도 아직 가지고 있어요. 취향이 크게 변하지 않는 편이라서요. 전 앞으로도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클래식한 것, 나다운 것을 추구할 것 같아요.
『패션 만드는 사람』에서 ‘나를 들여다 보고 싶으면 옷장 정리를 하면 된다’고 했어요. 작가님의 옷장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아이템은 무엇인가요?
흰색 옷이 옷장의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어요. 하얀 캔버스 같은 느낌이 좋고, 캐주얼하면서도 품격이 있는 색이기도 하잖아요. 어디에나 잘 어울리다 보니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이 될 때는 자연스럽게 흰색 옷으로 손이 가요.
인스타그램에 ‘경험과 시행착오, 시간, 성실한 진심이 쌓인 무언가를 계속해서 만들어가고 싶다’고 남겼어요.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게 있다면 나눠주세요.
우리나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서울 큐레이션’ 책을 쓰고 있어요. 서울을 잘 알리고 싶은 사명감이 있거든요. 단순한 가이드북이 아니라, 이 책을 읽으면 서울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문화적, 역사적인 내용을 담은 책이에요. 현대의 서울은 단순히 ‘핫한 도시’라기보다 콘텐츠가 풍부한 곳이거든요. 한강, 고택, 카페, 전시관 등 다양한 장소를 소개하고, 그곳에 담긴 이야기와 역사적인 내용을 포괄적으로 다룰 예정이에요. 제 관점에서 큐레이션한 내용도 들어가고요. 얼마나 깊이 들어갈지 고민하면서 쓰고 있는데, 서울을 잘 알릴 수 있는 책을 만드는 게 가장 가까운 목표예요.
또 있어요?
요리에 관한 책도 함께 준비 중이에요. 요리 레시피를 알려달라는 메시지를 정말 많이 받았거든요. 감사하게도 요리 전문 출판사에서 에세이를 의뢰해 주셔서, 요리 관련 에세이를 준비하고 있어요. 레시피 위주의 책이라기보다 라이프스타일과 문화적인 코드가 함께 담긴 책이 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한국 된장과 일본 된장의 차이’라든지, 제가 사용하는 그릇을 소개하는 내용도 들어갈 수 있겠죠.
그러고 보니 요즘 인스타그램에 ‘mk의주방놀이' 해시태그와 함께 요리 사진이 자주 올라오더라고요. 요리는 언제부터 했어요?
코로나 때 재택근무 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하루 세 끼를 집에서 먹어야 하는데 계속 배달 음식을 먹을 수는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게 됐는데, 계속 하다 보니 재미있더라고요.
요리의 매력은 뭐예요?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잖아요. 창의적으로 제가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고, 요리하는 동안 완전히 몰입할 수 있어서 좋아요.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에드워드 리 셰프가 말했잖아요. ‘도마와 칼, 호기심만 있으면 어디든 주방이 될 수 있다’고. 저도 요리하는 순간엔 저만의 세상에 들어간 기분이에요. 일이 아무리 바빠도, 요리할 때는 오로지 그 순간에만 집중하게 되고요. 정말 재미있어요.
서울 큐레이션도, 요리 에세이도 기다릴게요.
잘 써야 하는데(웃음), 잘 써볼게요.
장소 협조: 홍건익가옥
참여 기간 11월 13일(수) 자정까지
당첨 발표 11월 14일(목) 16시 코오롱몰 고객센터 내 공지사항 게시판
*발표 후 제품 수령을 위한 개인정보 확인 절차가 예정되어 있으며, 해당 절차에 응하지 않을 시 당첨이 취소될 수 있습니다.
경품 증정 11월 25일(월) 이후 순차 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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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큐레이션』의 저자이자 최근 출간된 『패션 만드는 사람』의 공저자로, 인스타일을 비롯한 다양한 패션 매거진에서 에디터로 활동했다. 현재는 온·오프라인 매체에 라이프스타일과 브랜드 관련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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