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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주 대표는 고미술품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공예품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공예 장생호를 열었다. 화려함보다는 자연스럽고 담백한 미에 더 큰 가치를 두며, 그가 전하는 공예품은 그 자체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는 이 공간이 단순히 다양한 작가들의 전시가 이루어지는 곳을 넘어 사람들이 가볍게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사랑방 같은 장소로 자리잡기를 바란다고. 공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의 눈빛은 밝게 빛났고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의 눈빛은 언제나 특별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다과 그릇이 너무 예쁘네요. 찻잔도요.
편하게 드세요. 또 드릴게요.
공예 장생호를 2017년부터 운영했다고요.
네, 벌써 8년이 흘렀네요.
이 공간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공예 장생호 운영 전에 연구소, 갤러리, 미술관,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장생호’ 등 다양한 곳에서 일했어요. 그런데 어떤 면에서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지더라구요. 공예와 미술 작품을 다루어왔으니까요. 그러면서 여러 좋은 작품 중에서도 특별히 제 마음에 와닿는 것들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싶은 욕심이 생긴 거죠. 고미술과 현대 공예품을 한 공간에서 어우러지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특별히 대표님의 마음에 와닿았던 것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나요?
저는 우리나라의 과거에서 이어져 온 공예품과 미술품이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옛것에 현대적인 감각이 더해진 것들에 매력을 느끼고요. 지나치게 화려하고 강렬한 작품보다는 있는 듯 없는 듯, 담백하고 정갈한 것들을 좋아해요. '자연스럽다'는 표현을 참 좋아하는데, 자연스러움이 느껴지는 모든 것에 끌리는 편이에요.
공예 장생호를 찾아오는 분들에게 어떤 경험을 선물하고 싶었나요?
부모님 가게에서 일하던 때를 돌이켜보면, 그곳은 사람들이 오가며 대화를 나누는 소통의 장소였어요. 인사동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전시가 열렸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미술 재료 상점이 많아서 작가님들이 필요한 도구를 사러 왔다가 자주 들러 대화를 나누기도 했고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정말 재미있었죠. 예를 들어 어느 작가의 20년 전 전시 이야기, 지금 누가 전시를 하는데 어떻게 변했다더라는 얘기, 몇십 년 전에 샀던 골동품을 여전히 잘 쓰고 있다는 이야기들까지요. 부모님 가게를 찾으시는 분들은 그들이 애정하는 작가들과 예술을 주제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시간은 쌓이고, 손님도 작가도 저도 나이 들어가며 그 변화를 함께 느끼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사랑방처럼요?
맞아요(웃음), 사랑방. 그런데 그 중심에는 '공예품'이 있어야 하는 거죠. 공예를 매개로 모인 사람들이니까 대화도 자연스럽게 잘 통하고, 서로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이곳을 오가는 분들이 많아졌거든요. 함께 차를 마시고 다과를 나누며 수다 떠는 게 정말 재밌어요.
처음 공예의 어떤 매력에 푹 빠졌던 건지 궁금해요.
일단 너무 아름답고 예쁘게 보였어요. 그리고 저는 물건이나 공간을 봤을 때 '사람'이 느껴지는 것들을 좋아해요. 예를 들어, 어떤 공간에 가면 그 공간의 주인을 닮은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지잖아요. 그런 특성이 공예품에서 가장 잘 나타나는 것 같아요. 공예품은 모두 손으로 직접 다듬고 만들기 때문에 그 안에 예술적인 관점과 손길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그것을 가시화해 보여주니까요. 그런 점들이 저에게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공간과 물건에 누군가의 안목이 담긴다는 말이 인상 깊어요.
맞아요. 그래서 저는 이야기나 감정이 담긴 물건들을 좋아해요. 그리고 공예품 대부분이 자연의 재료를 사용하잖아요. '흙, 나무, 돌, 천' 같은 재료의 물성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에요. 그 물질의 특성이 작업에 자연스럽게 반영된다는 것이 공예품의 특징이기도 하고요.
어쩌면 자연스럽고 편안한 걸 좋아한다는 대표님의 취향과 일맥상통하네요.
맞아요. 그리고 최근에 한강 작가님이 노벨 문학상을 받으면서, 노벨 박물관에 자신이 소중히 여기던 물품으로 찻잔을 기증했잖아요. 저는 그 찻잔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한강 작가님이 찻잔이 일상에서 늘 함께한 소중한 물건이었고, 책상으로 돌아가게 하는 주문 같은 것이었다고 말했잖아요. 그 찻잔이 그저 책상에 놓여 있던 평범한 찻잔이었다는 점도 인상 깊었어요.
대표님의 일상에 늘 함께하는 공예품은 무엇인가요?
너무 많지만, 그래도 하나를 꼽자면 찻잔이에요. 갤러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데 여기서 손님들에게 차를 내어드리기도 하고, 혼자 있을 때도 차를 마시면서 찻잔을 자주 사용해요. 화병도 좋아해요. 화병에 꽃을 꽂아두는 것만으로도 삶이 윤택해지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화려한 꽃보다는 계절마다 피는 꽃들을 좋아하고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계절에 맞는 꽃들을 화병에 꽂아두면 참 예뻐요. 오늘도 꽃을 사다 꽂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깜빡했네요. 하하.
이곳은 공예품 판매를 하기도 하고, 개인 전시도 이루어지죠. 작가를 선정하는 대표님만의 기준이 있나요?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과 작가를 선택하는 기준은 같아요. '자연스럽고 편안한' '심플하고 담백한' '자연스러운' 느낌을 내는 분들과 함께하고 싶어요. 작품에는 작가님의 손길이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에 그 느낌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작가님이면 너무 좋죠.
최근에 진행했던 전시 중 화제가 됐거나 인상 깊었던 전시가 있나요?
홍두현 작가님의 전시인데요. 아는 기물에 차를 내어주셨는데 너무 예뻐서 소개해 달라고 부탁드렸어요. 그렇게 시작된 전시가 쌍이잔 전시였어요. 양쪽에 손잡이 같은 귀가 달린 술잔이에요. 15세기 조선시대에 사용된 물건으로 원래는 손님을 대접할 때나 혼례에서 사용되던 귀한 물건인데, 지금은 잘 사용되지 않는 형태죠. 그럼에도 작가님은 이 고유한 형태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전통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었어요. 그 당시와 지금을 비교하면서 '왜 그 시절 사람들은 이렇게 썼을까?' 하는 질문을 품기도 했고요. 쌍이잔이 원래는 술 도구였지만 지금은 주로 차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더라고요. 작가님은 장작 가마를 사용해 작업을 하는데, 전통적인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가면서도 그 시대의 정서를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 멋진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공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데, 직접 공예품을 만들어 작가로 활동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나요?
학부 시절에는 정말 많이 작업을 했어요. 그런데 만드는 행위 자체는 정말 즐겁고 재미있지만 결과물에 대한 만족감이 항상 따라오지 않더라고요. 저에게 창작보다는 작품을 소개하고 전달하는 역할이 더 적합하다고 느꼈어요. 만드는 과정은 너무 즐거답니다(웃음).
대표님에겐 이 질문이 가장 어려운 질문일 것 같은데요. 가장 애정하는 제품은 뭐예요?
하나를 꼽기 참 힘들어요. 다 각기 다른 매력이 있거든요. 보통 저는 전시가 끝난 직후에 그 작업물을 가장 많이 사용해요. 최근에는 홍두현 작가님의 작품을 가장 자주 썼고, 애정을 담아 사용했고요. 다음 전시는 은성민 작가님의 전시여서 그땐 또 그분의 작품을 사용할 거예요. 저는 상설 전시를 주로 하다 보니 다양한 제품을 소개하지만 개인 전시가 시작되면 작가님 한 분에게 몰입해요. 은성민 작가님은 흙의 물성에 대해 많이 얘기하시는데요. 예를 들어, 작품에 흙이 찢겨나간 부분은 일부러 만든 게 아니라 흙 자체의 물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찢어진 거예요. 바로 그게 자연스러움이 반영된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작가님이 재료의 특성에 대해 설명해 주시거든요. 직접 기물을 사용하면서 특성을 잘 알게 되면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더라고요.
아는 만큼 보이고, 즐길 수 있는 것처럼요.
맞아요. 유홍준 선생님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이런 말을 쓰셨던 것 같아요.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전과 같지 않으리라’ 라고요. 정말 공감하는 이야기에요.
좋아하는 걸 말할 때 눈빛이 굉장히 반짝여요, 대표님.
그런가요? 사실 저는 좋아하는 걸 왜 좋아하는지 설명을 수려하게 잘하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이 공간을 빌려서 제 취향이 담긴 작품을 소개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언어라고 생각하면서 공예 장생호를 꾸려가고 있어요(웃음).
현대 사회에서 화려하고 반짝거리는 것들이 주목받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공예품이 이 시대에 기여하는 역할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일상에 작은 기쁨과 여유를 주는 것이 공예가 가진 큰 가치라고 믿어요. 공예도 삶의 공간에 일부를 차지하고 있지만 큰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하고요.
공예품을 처음 접하는 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팁이 있을까요?
공예를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면 돼요. 내가 산 물건을 사용하면서 궁금한 점이 생기거나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그때부터 찾아보면 되죠. 그러면서 내 취향이 되는 거고요. 작은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꼭 특정 방식이나 제품을 추구할 필요도 없고요. 저는 제 취향과 색을 좋아하는 분들이 공예 장생호에 오시면 좋겠지만, 모두 다양한 취향을 가지고 있으니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아가면 좋겠어요.
공예 장생호를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저는 이곳에서 뭔가 대단한 일을 벌이거나 큰 목표를 이루고 싶다는 생각은 없어요. 사람들이 편하게 오고 가며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제가 올해 했던 전시를 내년에 다시 하고, 내후년에 똑같은 전시를 해도 좋을 것 같아요. 매년 작가님의 성장이 있을 거고 그에 따라 전시의 차별화와 차이점이 생길 거라고 믿거든요. 작가님과의 관계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깊어질 테고, 그런 발전을 보는 것도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요. 결국 시간이라는 축적을 통해 이 공간이 계속해서 풍성해지기를 바라고, 그렇게 동시대의 분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1976년부터 어머니가 운영해온 고미술 가게 ‘장생호’의 이름을 따, 현대 공예를 소개하는 ‘공예 장생호’를 운영 중이다. @jangsaeng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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