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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KBO 리그 통합우승을 이끈 기아 타이거즈 이범호 감독을 올모스트홈 스테이 강진에서 만났다.올모스트홈 스테이 강진은 도시 생활자와 로컬 라이프의 만남을 주선하는 한옥 숙소로, 로컬을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는 공간이다.
이범호 감독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반가운 인사를 건네며 호탕한 웃음과 위트 있는 농담으로 밝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지만 ‘야구’ 이야기가 시작되자, 감독으로서, 또 야구인으로서 자신의 철학을 진지하게 전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80년대생 최초의 사령탑으로서 감독 첫 해에 우승을 차지한 이범호 감독은 ‘선수들이 즐겁게 야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감독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하며, 승패를 떠나 ‘야구 그 자체’를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야구 문화를 만들어 가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언제든 해낼 수 있다'는
긍정의 마음
KBO 시즌 우승 정말 축하드려요.
하하, 감사합니다.
올해를 좋은 결과로 마무리해서 너무 기쁠 것 같아요. 휴식 기간인데 좀 쉬셨어요?
휴식 기간이지만 아무래도 우승을 했기 때문에 찾아주시는 곳도 많고, 인사를 드려야 할 곳도 많아서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벌써 12월 휴식 기간의 반이 지나가버렸네요. 그래도 즐겁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하하.
선수 생활부터 코치 그리고 감독의 자리까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감독이 됐죠. 긴 선수 생활 경험이 감독의 역할을 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고, 또 어떤 도움이 되나요?
제가 프로에 들어가서 처음부터 야구를 잘했던 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지금 프로에 있는 선수들, 특히 젊은 선수들이나 퓨처스팀에 있는 선수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고충을 겪고 있는지를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요. 저도 그 나이를 지나오며 비슷한 경험을 했으니까요. 선수 시절 겪었던 어려운 경험들이 지금 젊은 선수들과 편하게 소통할 수 있게 해주고, 감독과 코치로서 역량을 갖추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감독님의 선수 시절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이었나요?
어릴 때 가장 큰 고민은 '경기를 나갈 수 있을까, 없을까.'였어요. 그 고민을 안고 정말 피나는 훈련을 했죠. 지금 선수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거예요. ‘프로에서 베스트 라인업에 들어가서 시합에 뛸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 ‘빨리 성장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가장 큰 고민이자 목표일 거라고 생각하고요. 제가 할 일은 선수들이 가진 어려움을 잘 이해하고, 경기에 나섰을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심어주는 거고요.
감독님도 굉장히 치열한 선수 생활을 했을 것 같은데요. 선수로서 꼭 지켰던 루틴이 있었나요?
저는 루틴에 크게 얽매이지 않았어요. 루틴을 못 지키게 되면 '오늘은 안 될 것 같다.'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될 수 있잖아요. 그런 생각을 아예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선수 생활 동안에도 ‘오늘 안 되면 내일 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죠. 지금도 선수들에게 비슷하게 이야기해요. ‘오늘 안 된 걸 내일까지 고민하지 말고, 내일은 더 잘될 거라고 믿어라, 잠을 자고 나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를 수 있다’고요. 물론, 젊은 선수들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바로 와닿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 나이대에는 불안감이 높고 현재의 어려움이 크게 느껴지니까요. 하지만 제가 이런 말을 계속 전하는 이유는 시간이 지나 그 선수들이 성장했을 때라도 제 조언이 떠오르기를 바라기 때문이에요.
해야 한다는 강박보다는 ‘언제든 또 해낼 수 있다’는 긍정의 마음이 중요하군요. 감독님의 선수 시절 영향을 준 인물이나 감독이 있는지 궁금해요.
아뇨. 저는 특정 인물을 모토로 삼아 '그 사람처럼 되겠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초·중·고 시절에 겪었던 안 좋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프로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주셨던 감독님들의 성향을 참고해 왔어요. 지금도 좋은 모습들을 제 방식대로 접목시켜 이범호만의 색깔 있는 야구 철학을 만들어보려고 노력하죠.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요. 선수들에게 '감독님은 많은 경험을 통해 이런 말씀을 하시는구나. 믿고 따라가 볼만하다.'라는 믿음을 얻는 데 더 시간을 들여야할 것 같아요. 꾸준히 노력하며 선수들과의 신뢰를 쌓아가고 싶습니다.
감독님은 어떤 환경에서 야구를 했었나요? 지금과는 많이 다른 분위기였을 것 같은데요.
지금보다는 엄격한 분위기의 환경이었죠. 그 과정에서 상처가 되는 말을 많이 들었고요. 요즘 세대의 선수들은 저희 때와는 달라요. 지금은 유연하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성장한 선수들이 많고, 그런 선수들에게 지나치게 압박하는 훈련은 오히려 효과가 떨어져요. 저 역시 강압적인 환경에서 야구를 잘하기까지 5년이 걸렸으니까요. 지금 선수들에게는 프로에 와서 1~2년 차에 다양한 경험을 쌓고, 3년 차부터는 본인의 야구를 펼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제 목표에요. 선수들이 즐겁게 야구를 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방식이 젊은 선수들의 성장을 더 빠르게 돕고, 긍정적인 영향을 줄 거라고 믿습니다.
감독님은 선수들간의 단합, 원팀을 이루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고요. 어떤 팀 문화를 지향하는지 궁금합니다.
현재 저희 팀은 20살 선수부터 43살 선수까지, 무려 23년의 나이 차이를 가진 선수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어요. 저는 모든 선수가 같은 생각을 가지게 하기보다 각 세대의 생각과 생활 방식을 존중하는 환경을 만들려고 해요. 20대 선수들만의 방식을 존중하고, 30대 선수들의 선호를 배려하며, 30대 후반이나 40대 선수들이 가진 선후배간의 예의에 대한 생각이나 전통적인 방식을 존중하려고 하죠. 대신, 고참 선수들에게 젊은 선수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설득해요. 경험상 고참들이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하면 팀 전체가 더 빨리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더라고요. 올해 감독으로서 이러한 방식을 실천하면서 팀워크가 강화되고 화합이 잘 이루어지는 것을 느꼈어요. 특히 올 시즌, 팀 분위기가 너무 좋았거든요. 그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봐요.
설득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중요시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너무 중요해요. 코치들도 감독이 추구하는 야구 관을 따를 수밖에 없고, 선수들도 감독이 추구하는 방향을 따라야 하잖아요. 제가 코치들에게 지나치게 지시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일방적인 명령을 내리면, 코치들 역시 선수들에게 그런 태도를 보이게 될 거예요. 저는 권위적인 태도를 지양해요. 다만, 누구든 틀을 벗어나는 행동을 한다면 "정확한 틀을 지켜라!"라고 강하게 말하죠. 기본적인 원칙과 틀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믿거든요. 개개인이 조금 양보하고 건강한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임하면, 팀 내 분위기도 좋아지고 본인의 성적도 좋아져요. 그게 결국 팀의 성적이 되고요.
벌써 지도자로 5년 차예요. 선수에서 감독으로 변화하면서 어떤 점이 가장 달라졌나요?
선수로서 느끼던 성취감과 지도자로서 느끼는 보람은 확실히 달라요. 선수 때는 내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바로 나오고, 그걸로 '오늘 잘했네!'라고 만족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지도자는 내가 아무리 준비하고 노력해도, 선수들이 그 노력을 온전히 구현하지 못하면 목표를 이룰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지도자로서의 삶에 더 큰 울림과 보람을 느껴요. 선수들이 성장하고 목표를 이루는 과정을 지켜보며 선수 때와는 다른 깊은 행복감을 느끼거든요. 각각의 장단점이 있지만, 지도자로서의 역할이 제게 더 큰 기쁨과 의미를 주는 것 같아요.
경기를 운영하다 보면 플레이가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도 있잖아요. 선수가 다치기도 하고요. 이런 변수에는 어떻게 대처하는지 궁금해요.
경기 전에 늘 서너 가지의 시나리오를 준비해둡니다. 최고의 상황, 동점 상황, 최악의 상황 등으로 나눠 각각에 맞는 대처 방안을 준비하죠. 이겼을 경우에는 흐름을 이어갈 전략을, 동점이 됐을 경우에는 새로운 계획을, 지는 상황에서는 다음 경기를 준비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두고요. 또 경기 중에는 투수 교체 시점, 타자 교체 여부, 실책 후 선수의 기용 문제 등 다양한 변수가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들을 예측하고 준비해야만 빠르게 대처할 수 있거든요. 감독은 경기만 바라보며 넋 놓고 있을 수 없어요. 항상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상상하고, 그 상황이 실제로 벌어졌을 때 바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계속 준비하고 있죠.
매번 승패가 나뉘는 냉정한 스포츠 세계죠. 더군다나 열심히 준비했어도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도 있고요. 감독님께서는 결과와 과정 중 어느 쪽에 더 의미를 두나요?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 역시 굉장히 중요해요. 과정이 훌륭해도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가 있고 준비가 잘 되어 있어도 늘 좋은 결과를 보장받는 건 아니죠. 제가 선수들에게도 이런 말을 자주 해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될 때가 있어. 하지만 길게 보면, 열심히 해놓은 준비 덕분에 네가 더 긴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 거야. 당장의 결과에 흔들리지 말고, 한 걸음씩 올라가 보자.” 특히 젊은 선수들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느껴요. 지금 당장 슈퍼스타가 되고 싶고 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크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반드시 발돋움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과정 없이 단번에 목표를 이루겠다고 생각하는 선수들에게는 조금 날카로운 충고를 할 때도 있어요. 결국엔 선수들이 지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저의 역할이죠.
선수 개개인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각자의 특성을 발견해 내는 데 탁월하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관점으로 선수를 바라보는지 궁금합니다.
선수들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를 파악하면 그에 맞게 접근할 수 있어요. 선수들의 성향을 제대로 이해하면 성장 속도를 맞추고, 그들이 가진 잠재력을 더 빨리 끌어낼 수 있고요. 감독에게는 선수 개개인의 실력은 물론, 성격과 선수가 처한 상황을 세밀히 관찰하는 능력이 중요한 자질이라고 믿어요.
선수와 함께하기로 계약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저는 선수가 가진 꾸준함과 자기관리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자신만의 규칙을 가지고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선수는 시간이 지나도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물론 프로 세계에서는 실력이 가장 중요하죠. 하지만 실력 외에도 그 선수가 경기에 임하는 태도와 책임감이 얼마나 성숙한지, 이를 통해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중요해요. 프로의 세계는 냉정합니다. 매년 수천 명이 도전하지만 각 팀에서 10명 정도만 기회를 얻고, 새로운 자리를 만들기 위해 기존 선수 10명이 떠나야 하는 구조거든요. 결국 선수의 실력, 꾸준한 자세, 그리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며 선수와의 계약 여부를 판단합니다.
밑져야 본전,
무수한 도전이 이루어 낸 성장
감독으로 첫 시즌을 치르면서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이었나요?
솔직히 말해 모든 게 도전이었어요. 제가 마흔네 살에 기아 타이거즈의 감독이 된 건 위에 계신 분들이 저의 가능성을 보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죠. 처음에는 '왜 나를 감독으로 선택하셨을까?'라는 고민도 많았지만, 감독이 된 이상 제가 생각하는 야구를 최대한 펼쳐야 한다고 다짐했어요. 2년 계약 안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제 야구 인생은 여기서 끝이라는 각오로 임했고요. 감독은 빨리 되는 것보다 오래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바로 시즌이 시작되었기에 준비할 시간도 부족하다 보니 부담이 좀 컸어요. 저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 코칭 스태프들과 함께 팀을 이끌어야 한다는 점도 큰 고민이었고요.
충분히 부담스러운 상황이죠.
감사하게도 그간 기아에서 함께 일했던 경험 덕분에 팀워크는 빠르게 다질 수 있었어요. 가장 큰 부담은 팀이 작년에 6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승 후보'라는 기대를 받았던 거예요. '밑져야 본전이다.'라는 마음으로 매 경기 도전했죠. 한 경기 한 경기, 오늘은 1승, 내일 또 1승을 목표로 묵묵히 나아갔어요. 결과적으로 시즌이 끝났을 때 너무 좋은 기록을 만들어냈고요. 경기 당시에는 하루하루에 집중하느라 좋은 결과가 쌓이는 걸 잘 느끼지 못했는데 끝나고 나서야 보이더라고요. 2024년의 이범호 감독을 평가하자면, 그저 ‘막무가내로 도전했던 시즌’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도전을 거듭하며 쌓아올린 결과가 결국 팀의 성장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점 때문에 감독으로 선임되었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기아에서 주장으로 3년, 최고참으로 약 4년간 선수 생활을 했어요. 제가 감독 후보로 논의되었을 때 팀을 잘 알고 있고 팀의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인물로 평가받았기 때문에 좋은 의견을 많이 받지 않았을까 싶어요. 팀이 어려운 상황에서 새로운 감독이 필요할 때, 이미 팀을 잘 이해하고 틀을 마스터한 사람이 유리하다고 판단하셨던 것 아닐까요? 제가 가진 긍정적인 마인드와 태도가 팀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믿으셨던 것 같고요. 결국, 제게 큰 무언가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작은 것들에서 신뢰를 주는 모습을 보고 감독으로 선택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기아 타이거즈에 80년대생 선수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비는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저희 팀은 어느 팀보다도 선수층이 두껍다고 생각합니다. 주축 투수들은 대부분 30대 이하이고, 타자들 중에서도 30대 후반에 접어드는 선수들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선수들은 20대 초중반으로 구성되어 있어 팀 전체가 올드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아요. 많은 분들이 '기아는 앞으로 몇 년간 좋은 팀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팀의 중심에는 30대 후반 선수들이 있지만, 이들을 받쳐주고 성장 중인 젊은 선수들이 많이 포진해 있어요. 결론적으로, ‘80년대생들이 많다’는 평가는 단순히 중심 선수들만 보고 하는 이야기일 뿐, 팀 전체를 보면 젊은 선수들이 충분히 성장하고 있어 앞으로의 팀 운영에는 큰 문제가 없을 거라 자신합니다.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덕목은 무엇인가요?
젊은 선수들에게는 ‘겉늙지 말라’고 전하고 싶어요. 어린 나이에 야구를 잘한다고 해서 자신을 지나치게 성숙하게 포장하거나 30대 선수처럼 행동하다 보면, 선수 생활 말년에 지쳐 정상까지 가보지 못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 나이에 맞는 야구를 했으면 좋겠어요. 고참 선수들에게는 굳이 자신이 젊음을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격려하고 싶어요. 주변에서도 충분히 그들이 아직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 만큼 좋은 기량을 갖추고 있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저는 야구를 잘하는 선수가 나이 때문에 소외받거나 은퇴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반대합니다. 누구든 팀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선수의 자리를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이는 젊은 선수들에게 큰 메시지가 될 수 있어요. '이 팀은 실력만 있으면 40대에도 뛸 수 있는 팀이다.'라는 신뢰를 주는 거거든요. 저는 젊은 선수든 고참 선수든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실력을 증명하며,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꾸준히 발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감독
이범호 선수가 중요시하는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요?
저는 '옛날 생각을 지금과 똑같이, 지금 생각을 나중에도 똑같이.'라는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선수 시절에도 제 성격은 온순한 면과 날카로운 면이 공존했지만, 기본적인 성향과 틀은 변하지 않았거든요. 코치에서 감독이 되어 첫해에 우승을 했지만, 그로 인해 거만해지거나 과시하고 싶지는 않아요. 우승은 지나간 일이니까요. ‘우승 감독’이라는 타이틀은 다른 사람들이 불러줄 일이지, 제가 계속 붙잡고 있을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2024년에 우승을 했더라도 2025년에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해야 하니까요. 제게 중요한 가치는 '변하지 않는 사람'으로 남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감독이 되면 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런 고정관념을 깨고 싶어요. 감독이 되어도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감독으로서 야구의 본질과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제 성향 그대로 팀을 이끌어가는 것이 다른 어떤 욕심보다 더 중요하거든요. 변하지 않는 태도로, 야구의 가치를 지키며 걸어가고 싶습니다.
현재 사회에서는 쓴소리를 할 어른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윗세대의 조언을 귀담아 듣지 않으려 하고, 윗세대 또한 섣불리 조언을 하지 않는 분위기이고요. 감독님은 이 시대의 멘토가 갖추어야 할 자질이나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젊은 선수들은 어른들을 자신들의 관점과 생각대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어른들이 '우리 40대, 50대, 60대가 살았던 길을 똑같이 따라야 한다.'고 요구하면, 세대 간 간격을 좁히는 데 한계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20대, 30대, 40대를 모두 다르게 대하려고 해요. 예를 들어, 우리 팀의 20대 선수들은 30대 후반이나 40대 선수들이 하지 못하는 말을 저에게 서슴없이 하곤 합니다. 가끔은 충돌이 생길 때도 있죠. '감독님, 이건 이게 맞고, 저건 아니잖아요!'라며 강하게 주장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20대 선수들은 그 얘기를 하고 나면 금세 잊어버려요. 30대 후반이나 40대 선수들은 같은 상황에서도 다르게 반응해요. 예의를 중시하고, 말을 속에 담아두었다가 나중에 꺼내기도 하죠.
소통방식에 확연한 차이가 있네요.
그렇죠. 세대마다 사고방식과 소통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멘토는 세대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에 맞춰 대화하고 행동해야 해요. 특히 고참 선수들은 팀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고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고요. 젊은 선수들의 소통 방식을 존중하고 따라가려는 노력도 필요해요. 서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지키면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은 받아들이고 노력하는 태도가 중요한 거죠.
굉장히 철학이 단단해요. 감독님의 삶의 철학은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얻은 건가요?
네, 제 삶의 철학은 제가 직접 겪은 것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 제 인생에서 얻은 교훈을 통해 선수들에게 조언하고, 그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고요. 제가 걸어온 길을 후배들도 비슷하게 겪게 될 거라고 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20대 초반의 선수들에게는 그 시절 제가 마주했던 어려움과 배운 점을 공유하고, 20대 중반의 선수들에게는 어떻게 발전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설명해요. 30대 선수들에게는 선수 생활의 정점에서 어떻게 팀을 이끌고 겸손한 태도를 유지했는지 알려주고요.
경험에 비춘 조언은 힘이 세죠. 마음이 더 와닿고요.
제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을 단순한 말로 설득하려 하지 않아요.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야구는 20년 이상 지속해야 하는 긴 여정이기 때문에 말뿐인 가르침은 선수들이 결국 방향을 잃게 만들 수 있다고 보거든요. 대신 제가 겪은 이야기를 전하면, 선수들이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자연스럽게 제 조언을 떠올릴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지금 당장은 제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시간이 지나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면 비로소 깨닫고 더 나아지게 될 겁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팀이 점점 더 강해지는 기반이 다져진다고 확신합니다.
내년 목표나 야구인으로서의 꿈은 무엇인가요?
우리나라 프로야구는 약 45년 동안 성장해왔어요. 예전에는 단순히 승부만을 위한 프로야구였다면, 지금은 많은 젊은 여성 팬들과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어요. 앞으로는 승부에만 집착하기보다, 팬들이 ‘우리 팀이 졌어도 경기가 재미있었고, 또 보러 오고 싶다’라고 느낄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해요. 단순히 승리와 우승만을 목표로 삼는 방식으로는 프로야구가 더 발전하기 어렵고, 천만 관중 시대를 유지하기도 힘들 거예요. 저는 감독으로서 ‘젊은 나이에 감독이 되어 첫해에 우승했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기보다는, 제 역할을 통해 프로야구가 더 사랑받는 스포츠로 자리 잡고, 지속 가능한 팬 문화를 만들어가는 데 힘쓰고 싶어요.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80년대생 감독이 되는 것도 1년 만에 우승을 이뤄낸 것도 어려운 도전이었거든요. 앞으로도 우리나라 프로야구에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선수들과 함께 더 문화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야구를 만들어가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응원해주신 분들께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올 시즌, 프로야구를 사랑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드리고요. 특히, 저희 기아 타이거즈가 우승을 하면서 팬 여러분께서 "올 시즌 정말 즐거웠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그게 가장 큰 보람이었어요. 제가 요즘 항상 하는 말이 있어요. "우승에 만족하지 않고, 유지만 하겠다." 앞으로도 이 기세를 이어가 내년 시즌에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팬분들의 응원에 감사드리며, 계속해서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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