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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고 무심한 말투, 익숙하지만 묘하게 낯선 우리말 가사, 랩인지 노래인지 알 수 없는 박자와 리듬까지, 뮤지션 장기하의 독특한 색채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취향과 안목을 나누는 TMT 토크시리즈의 여섯 번째 연사로 나선 장기하님은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담백하게 자신을 소개했지만, 그가 고심하며 뱉는 단어와 문장들 속에서 “어쩌다 보니”라는 다섯 글자 너머의 고민과 노력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의 음악 취향 여정을 다룬 1부 "상관 없는 거 아닌가?"에 이어 토크쇼 2부에 진행된 OLO매거진 독자들과의 QnA 티키타카를 공개합니다.
✅ “상관 없는 거 아닌가? - 장기하의 안목과 취향 1부” 보러가기(클릭)
Q. 에세이에서 자연스러움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작가 소개를 읽었습니다. 장기하님이 생각하는 자연스러움이란 무엇인가요?
내가 편하게 느끼느냐.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떤 장소에 갔을 때, 무엇을 접할 때 편안한가를 생각해요. 어떤 일은 고생스러워도 마음은 편할 수 있어요. 저에겐 공연이 그렇습니다. 준비 과정에서 고생해야 마음이 편해요. 고생하지 않고 무대에 올라간다는 건 악몽 같은 일이죠. 편안함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러워지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고유한 매력도 생겨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Q. 앞서 음악 이야기를 하실 때 선배들에게 취향을 훈련받았다고 하셨는데, 사실 장기하님의 무의식 속에 그런 곡들에 대한 동경이나, 그것이 좋은 음악이라는 걸 인지하는 안목이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요?
‘너한테 원래부터 싹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미의 질문인 것 같은데, 명쾌한 답을 드리긴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도 늘 고민하거든요.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 때, 단 하나의 요인을 꼽을 수 있는 것인가. 나였나, 아니면 우연히 찾아온 무엇이었나. 그렇지만 저는 ‘눈뜨고 코베인’ 동료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많은 것들이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해요.
음악에 대한 소질은 어느 정도 있었어요. 음악 시간에 선생님이 무슨 이야기를 하시든지 항상 이해가 잘 됐거든요. 아버지가 음감이 뛰어나신 걸 보면 그걸 물려받은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음악적 소질이라는 건 도와 미의 차이를 식별할 수 있는가, 박자를 구분할 수 있는가, 딱 그 정도까지에요. 어떤 장르나 스타일에 관한 건 아니죠. 소질을 가진 사람이라도 어떤 우연을 만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어요.
조심스러운 말이긴 하지만, 요즘은 어릴 때부터 트레이닝을 받고 데뷔하는 친구들이 많잖아요. 단순히 음악계의 발전, 이런 거창한 문제가 아니라 그 친구들 한명 한명의 행복을 생각하면, 조금 더 우연한 인연에 기대어보면서 창작도 하고, 노래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Q.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처럼, 과거로 돌아가서 만나보고 싶었던 우상이 있다면 어느 시대의 누구를 만나고 싶으신가요? 장기하님이 생각하는 문화의 황금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무언가를 창작하는 사람이라면 동시대를 향한 불만을 조금씩은 다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동시대 사람들은 경쟁 상대이기 때문에, 조금은 깎아내려야 내가 우위에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잖아요(웃음). 그런 이유 때문이라는 걸 스스로는 자각하지 못하겠지만요. ‘나는 너희랑 달라. 왜냐고? 나는 60년대를 이해하고 있거든’ 같은 심리(웃음). 그래서 누군가 문화의 황금기를 규정하는 것에 열을 올린다면, 그런 심리가 저변에 깔려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20년 전에 저는 음악이 퇴보했다고 생각했어요. 비틀즈가 활동했던 6-70년대가 지난 뒤 조금씩 이상해져서 90년대부터의 대중음악은 망했다고요. 물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시대마다 좋은 점이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정도죠. 한 시대를 황금기로 규정하고 그걸 종교처럼 믿게 되면 창의성 면에서 불리하다고 생각해요. 정답을 정해둔 거니까요. 저 역시도 선배님들에게 덜 기대게 되면서 저만의 창법을 만들어냈고요.
Q. 여유롭고 초연한 태도로 삶을 사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하거나 두려움을 느끼실 때도 있나요?
제 가사를 보면 ‘저 사람 참 태평하게 산다’고 오해하기 쉬운데요. 그런 표현을 계속한다는 건, 실은 제가 불안하기 때문이에요. 원래 초연한 사람이라면 그런 노래를 만들 필요가 없겠죠. 가만히 있어도 편안하니까.
저도 불안을 느낍니다. 조급하고, 한번 할 때 완벽하게 해내야할 것 같고, 하지만 방법은 점점 모르겠고요. 공감하시는 분들 많으시죠? 그런 불안들을 극복하는 과정을 노래로 표현한다고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실제로 군 복무 시절, 하고 싶은 건 음악밖에 없는데, 음악은 돈이 안 될 것 같아서 고민할 때 만든 게 ‘싸구려 커피’거든요. 당연히 그 노래가 잘 될 줄도 몰랐고요.
Q. 스스로가 좋아하고 만드는 음악을 대중들도 좋아할 거라는 확신이 있나요?
눈뜨고 코베인 밴드 활동을 할 당시, 저는 동시대 한국 음악 중에 우리가 최고라고 믿었어요. 하지만 상업적인 성공이나 유명세를 얻지는 못했기 때문에 ‘나의 취향은 대중적이지 않다, 고로 음악으로는 돈을 벌 수 없다’는 게 제 결론이었죠. 그래도 음악이 하고 싶어서 ‘장기하와 얼굴들’을 시작했습니다. 밴드를 알릴 수 있다면 이것저것 다 해보자고 다짐했고, EBS 스페이스 공감에 출연하면서 점점 인지도를 얻게 되었어요. 열심히 하기는 했어도, 상상도 못했던 결과였죠.
이후 순풍에 돛단 듯 음악을 하나 싶었는데, 장기하와 얼굴들 3집을 내면서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흥행이 너무 저조했거든요. 그때 직업인으로서 대중음악을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더 깊게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나서 4집은 최대한 대중성을 고려해서 만들었죠. 당시 유행하던 힙합과 bpm을 비슷하게 가져가보기도 하고요.
‘장기하와 얼굴들’ 활동 마무리 이후 첫 솔로앨범 ‘공중부양’을 준비하면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갔어요. 욕심은 내려놓고 내가 무엇을 만들고 싶은가에 집중해서 만들었죠. 흥행을 못해도 상관 없다 생각하려고 노력했어요. 실제로 노래 듣고 한숨 쉬면서 큰일났다고 하는 동료들도 있었고요. 근데 저는 그때 가장 마음 편하게 음악을 만든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는 타이틀곡 '부럽지가 않어'가 밈이 되면서 뜻하지 않게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죠.
보시면 아시겠지만, 뾰족한 수는 없어요. 앨범이 잘 돼도, 또 그 다음은 어떻게 되나 고민되고요. 그냥 잘 먹고 잘 자면서, 하면 되는 거죠 뭐.
Q. 그렇다면 하고 싶은 일이 없을 때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미술을 공부하고 있는데 무엇을 그려야할지 떠오르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게 없을 때는 하지 않아요. 근데 해야만 하는 거라면 좀 다르겠죠. 제 지인 중에 오랜시간 DJ를 한 형이 있는데요. 선곡 작업을 할 때는 꼭 물 한잔이라도 옆에 두고 한다는 거에요. ‘여기서 무슨 곡 틀지?’ 골몰하다가, 물을 마시는 그 순간에 스치듯이 곡이 생각나기도 한다고요. 그 행동 자체로 환기가 되는 거죠. 그 이야기가 인상 깊더라고요.
나는 뭘 그리고 싶은가를 고민하기보다, 아예 다른 걸 시도해보시면 어떨까요. 캠핑을 간다든지, 술에 취해본다든지. 아니면 ‘서울에 걷기 좋은 길’을 검색해서 걸어봐도 좋고요. 세상에는 생각보다 우리가 안해본 일이 정말 많거든요. 시간과 여건이 허락한다면 때로는 곁길로 새보는 것도 방법일 수 있어요.
기하님의 말을 정리하자면 이런 게 아닐까요. 안목과 취향이란, 내가 편안한 것을 좇아 무언가에 흠뻑 빠져 젖어들기도 하고, 때로는 어제의 믿음과 과감히 이별하면서 만들어지는 것.
요란하게 왔다가 홀연히 사라지는 트렌드와 쏟아지는 선택지 사이에서 오늘도 나만의 취향에 대해 골몰하는 독자분들이 계시다면 기하님을 따라 이렇게 되뇌어 보세요. “상관 없는 거 아닌가?”
* 본 아티클은 Special TMT with 장기하 시리즈로, “상관 없는 거 아닌가”에 이은 2부 아티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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