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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의 밑창은 자동차의 타이어와 비교할 만하다. 둘은 상징적 연결성을 넘어서는 몇 가지 공통점들이 있다. 고무가 주재료다. 접지력이 중요하다. 접하는 지형적 환경에 따라 바닥 패턴이 다르다. 제조사의 로고가 남의 회사 완성품의 제조사에 노출된다. 현대든 메르세데스 벤츠든 완성차의 외양을 봤을 때 제조사의 존재감을 알 수 있는 건 타이어 뿐이다. 타이어 제조사들의 기술력과 이미지가 그 자체로 인정받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늘의 주인공 비브람도 비슷하다. 신발의 고무 '솔'계에도 브랜드가 많다(엄밀히 말해 중창 부분인 미드솔과 바닥 부분인 아웃솔로 나눌 수 있다. 비브람은 둘 다 생산한다. 이 원고에서는 '솔'이라 표기하되 미드솔과 아웃솔이라는 이름을 필요에 따라 쓸 것이다). 신발 발바닥 부분을 보면 특정 솔 전문 브랜드의 로고를 볼 수도 있다. 비브람은 그 중에서도 다르다. 비브람 로고는 신발 측면에서 봤을 때 옆에서도 보일 때가 많다. 'Vibram' 로고는 특유의 노란색으로 처리해 확연히 드러나 보인다. 해당 제품군에 관심이 있다면 비브람 로고만 보고도 '비브람을 썼다니 신경 쓴 신발이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신발 밑창과 자동차 타이어에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보통 사람 수준에서는 차이를 느끼기 쉽지 않다. 보통 사람 중 '이 택시는 오늘따라 편안한 걸 보니 한국타이어 솔루스를 썼군'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신발의 아웃솔도 비슷하다. A 신발로 열 걸음 걸은 뒤 신발을 벗고 B 신발을 신는 정도가 아니라면 각 밑창의 특징은 바로 알기 어렵다. 비브람 창을 적용했으니 프리미엄이다, 비브람은 브랜딩을 잘 해서 남다른 존재감을 드러낸다 처럼 이런저런 말이야 붙일 수 있겠지만 그런 말로는 정말 비브람이 어떤 부분에서 다른지 설명하기 어렵다.
OLO매거진은 그런 면에서 쓸모 있는 정보를 드릴 수 있다. OLO매거진을 만드는 코오롱FnC에는 한국 아웃도어의 산 증인 코오롱스포츠가 있기 때문이다. 코오롱스포츠 역시 프리미엄급 등산화나 트레킹화에 비브람 솔을 쓴다. 최근 출시한 웨일즈보너 콜라보레이션 모델인 무브 2와 576에도 모두 비브람 솔이 적용됐다. 코오롱스포츠는 자사가 전개하는 아웃도어 신발의 40%나 되는 물량에 비브람 솔을 사용할 정도이므로 비브람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비브람을 자주 쓰지만 비브람 내부인이 아닌 사람이라니, 비브람에 대해 이렇게 잘 설명해줄 사람들을 찾기도 힘들다. 실제로 비브람과 함께 코오롱스포츠 신발을 기획하고 있는 박세종, 이현기 MD와 강동명, 김태하 디자이너에게 비브람에 대해 물었다.
비브람의 무엇이 좋습니까?
견인력, 접지력, 마찰력 등 주요 지표에서 퍼포먼스가 좋습니다. 보통 요즘 신발에서 쓰는 EVA 미드솔과는 달리 비브람은 목적에 따라 4가지 자사 소재를 사용합니다. 어떤 소재는 더 가볍고, 어떤 소재는 쿠셔닝이 뛰어납니다. 창의 구조나 러그 형태, 배열 등에도 비브람의 기술과 디자인이 적용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만든 모든 제품은 잘 갖춰진 테스트 설비와 그들의 전문적인 필드테스터 팀을 통해 검증됩니다. 80년 넘게 신발의 창(솔) 분야에 집중하니, 이런 고집이 자연스럽게 품질과 기능으로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비브람은 대체 불가능합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많은 브랜드가 자체적으로 미드솔과 아웃솔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타이어 전문 회사인 미쉐린과 콘티넨탈같은 회사들도 운동화의 밑창을 만듭니다(스위스의 마무트에는 미쉐린 아웃솔을 쓴 모델이 있다. 아디다스는 일부 러닝화에 컨티넨탈 아웃솔을 적용한다). 비브람의 대안이 없는 건 아닌데도 비브람을 쓰는 이유에는 가장 신뢰받고 있는 기술력과 브랜드를 사용한다는 면도 있습니다(마무트 역시 미쉐린과 협업하는 동시에 비브람 솔도 사용한 모델이 있다).
비브람 말고 다른 아웃솔 브랜드는 없습니까?
앞서 말씀드린 미쉐린과 콘티넨탈이 자체 아웃솔을 만듭니다(콘티넨탈의 경우에는 고무 제조업 역량이 있는 만큼 150년 전부터 운동화 아웃솔을 만들어왔다고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요즘은 각 브랜드가 자체적으로 미드솔과 아웃솔을 개발하기도 합니다. 코오롱스포츠 역시 연구개발을 통해 자체 개발한 아웃솔인 '뮤 그립(MU GRIP)' 기술을 강화시키고 있습니다('뮤'는 마찰계수의 단위다. 마찰계수를 향상시키겠다는 코오롱스포츠의 의지가 들어 있다. 코오롱스포츠는 2005년부터 자체 아웃솔 연구를 시작해 한국형 등산화 아웃솔을 만들고 있다.)
1. (위)전문가의 실 착용과 피드백을 반영해 개발한 트레일러닝화 TL-1. 비브람 소속 트레일 러너인 리투아니아의 게디미나스 그리니우스가 이 신발의 프로토타입을 신고 경기에 참가했다. (아래)비브람과 함께 전용 솔 시스템을 개발한 무브 2. 측면에 하키 스틱 모양으로 붙은 부품은 발이 뒤틀리는 걸 완화시켜주는 TPU 소재 스태빌라이저다
2-3. TL-1과 무브2의 앞창 비교. 이렇게 보면 신발의 세부적인 기능에 따라 각 부위의 모습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확실히 확인할 수 있다.
코오롱스포츠와 비브람은 어떻게 협업하나요?
TL-1 이 신발에는 최고 스펙의 쿠셔닝과 한국지형에 맞는 아웃솔이 필요했습니다. 연구를 위해 세계적인 트레일 러너 그리니우스에게 필드 테스트를 의뢰하는 등의 필드 테스트를 거쳤습니다. 그리니우스의 피드백 등 다양한 데이터를 이용해 제품을 개선시킨 뒤 상품을 출시했습니다. 트레일러닝 시장이 커지고 있으므로 단순히 상품 개발을 먼저 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지형에 맞게 비브람과 협업하며 수 차례의 개발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그 덕분에 완성도 있는 제품을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TL-1의 각 디테일. 가벼운 무게와 접지력에 중점을 두고 비브람의 경량 소재인 SLE를 사용했다. SLE는 EVA 미드솔 대비 30% 정도 가볍다.
무브 2 2020년작 '무브'에는 비브람의 완성품 아웃솔을 썼는데, 무브 2를 개발하면서는 비브람과 협업해 코오롱스포츠 전용 솔 시스템을 출시했습니다. 경량, 안정, 산에서의 접지력 향상이 목표였습니다. 미드솔에는 발의 뒤틀림을 막아주는 부품을 썼고, 아웃솔에는 접지력이 높으면서도 가벼운 구조적 디테일을 적용했습니다. 특히 산행 시 경사도의 방향에 따라 마찰력을 증가시키는 ‘V’ 모양의 돌기 구조가 한 예입니다.
무브 2의 각종 디테일. 코오롱스포츠와 비브람이 함께 개발한 전용 솔답게 다양한 부분에서 세부 패턴과 트레드가 달라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비브람은 품질을 보장하나요? 보장하지 않는다면 소비자는 어떤 디테일이나 지표를 봐야 하나요?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소재의 브랜드를 보이게 하는 건 제품에 어떤 소재가 쓰였냐의 문제이지 품질 자체를 확인할 수 있는 요소는 아닙니다. 코오롱스포츠는 다양한 신발 카테고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고객분들이 자신의 목적에 따른 신발을 확인할 수 있도록 말이죠. 신발의 품질은 결국 경험으로 알 수 있습니다. 매장에서 신발을 직접 신어 보고 경험해보며 품질을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오롱스포츠의 신발들을 직접 체험해 보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마침 이 원고를 작성하는 내가 코오롱스포츠와 비브람 솔을 체험할 기회가 생겼다. 모델은 무브 2, 무대는 거문도. 최근 코오롱스포츠와의 협업 건으로 한국을 찾은 그레이스 웨일즈보너를 인터뷰하며 무브2 웨일즈보너 콜라보 버전 하나를 선물받았다. 웨일즈보너와의 인터뷰가 끝나고 며칠 뒤 거문도로의 출장이 예정되어 있었다. 거문도는 여수에서 배로 2시간쯤 가야 하는 섬이다. 별로 상관 없는 여담이지만 웨일즈보너의 고향인 영국 해군이 1885년부터 23개월 동안 거문도에 머무른 적이 있다.
거문도는 섬의 대부분이 산악 지형이고 평지가 많지 않다. 무브 2는 '이거 안 신고 왔으면 어쩔 뻔 했나'싶을 정도로 뛰어났다. 가볍고 푹신하되 메모리폼처럼 힘없이 내려앉지는 않았다. 풀숲에 맺힌 이슬 때문에 날씨가 맑은데도 길이 젖어 있었다. 비브람의 접지력 때문인지 미끄러운 줄 몰랐다. 1905년부터 불을 밝힌 남해안 최초의 등대이자 대한민국 영해의 기준점이 되는 거문도 등대까지 걸어 갔다 오는 동안 발에는 별 피로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코오롱스포츠와 비브람의 역량이구나 싶었다.
정보를 찾고 정리해 페이지를 만듭니다. 에디터로 일하며 각종 매체에 원고를 기고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잡지, 브랜드 화보, 제품 사진 등에서 경력을 쌓아 온 사진가입니다. 성공적으로 경력을 쌓아 아기 아빠가 된 한편 마음 한 구석에는 다큐멘터리 포토 저널리즘의 모험을 아직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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