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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사람의 구미에 딱 맞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옷의 소재도 마찬가지다. 자연 소재는 결국 식물성과 동물성이다. 식물성 소재인 실과 천은 대개 너무 약하다. 동물성 소재인 가죽은 너무 두껍고 뻣뻣하다. 소재의 역사는 자연의 소재들을 잘 달래고 다스리며 인간의 생활에 맞춰 온 과정이다. 오늘의 주인공 스웨이드 역시 그 과정에서 나온 지혜의 결과다.
보통 의류 소재의 어원에 그 뿌리가 담긴 경우가 많다. 스웨이드도 그렇다. 스웨이드의 어원은 프랑스어 ‘gants de Suede’다. '스웨덴의 장갑'이라는 뜻이다. 프랑스로 수입된 스웨덴산 가죽 장갑이 부드럽고 질긴 가죽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그 스웨덴 사람들이 만들었던 가죽 가공 방법이 오늘날의 스웨이드 만드는 방법이다. 스웨덴은 추운 북유럽에 위치하니 방한용품 수요가 절실했을 것이라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실제로 여전히 스웨덴에는 유명 장갑 브랜드가 많다. 궁하면 하게 되어 있다.
통가죽을 만져본 사람은 알 텐데 가죽은 원래 뻣뻣하다. 통가죽은 장갑이 아니라 부채에 더 잘 어울릴 정도로 뻣뻣하다. 어떻게 스웨이드는 장갑 소재가 될 만큼 부드러울 수 있는 걸까? 가죽은 베지터블 가죽 등 일부를 제외하면 수요에 맞는 사용을 위해 가공된다. 스웨이드 역시 상당한 정도의 가공이 들어가 있다. 방법을 요약하면 뒤집기와 깎기다. 스웨이드의 표면은 가죽의 표면이 아닌 가죽의 반대편, 즉 안쪽이다. 그 가죽의 안쪽을 쓸 수 있도록 얇게 저미면 스웨이드가 된다. 단면 색종이의 반대쪽 면을 보이게 쓰는 개념이다.
가공을 거친 덕에 스웨이드는 가죽 소재의 기존 장점만 취합한 소재가 되었다. 가죽의 특징인 보온성을 살리면서도 부드러워졌고, 가죽을 저몄으니 한층 가벼워지기도 했다. 그러니 스웨덴 사람들의 장갑부터 오늘날의 의류와 가방에까지 쓰일 수 있다. 또 하나의 장점은 방수다. 스웨이드 신발이나 장갑을 착용했을 때 물이 새는 건 스웨이드에서 새는 게 아니라 스웨이드를 꿰맨 실밥에서 새는 것이다. 가볍다는 점도 착용할 때는 장점이라 일반 구두에 비해 스웨이드 부츠나 구두는 무게 부담이 덜 하다.
세상 모든 건 등가교환이기 때문에 그만큼 가죽의 장점이 사라진다. 스웨이드는 가공성과 가벼운 무게를 위해 내구성을 희생시킨 소재라 볼 수도 있다. 스웨이드 구두는 보통 구두에 비해 가벼운 만큼 구멍이 나기도 쉽다. 보통 가죽을 저민 만큼 두께가 얇아졌으니 당연하다. 대신 가볍고 부들부들한 만큼 고급스러운 느낌은 크다. 원래 고급스럽고 값비싼 것들은 나약하다. 실크, 캐시미어, 스웨이드. 모두 내구성 면에서는 나약한 소재다. 그런 소재를 걸치고 둘러도 될 정도로 편안한 삶이라면 역시 고급스러운 삶이다.
촘촘한 조직감과 깊은 발색은 스웨이드 소재의 고유한 매력이다.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면 그 매력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스웨이드는 고급 소재답게 가공 난이도도 낮지 않다. 스웨이드는 일반 가죽보다 다루기 어렵다. 부들부들하고 잘 찢어지기 때문에 피할(가죽 제조 공정에 따라 시접 면을 깎아주는 과정)할 때 조심스럽다. 가죽의 측면을 마무리하는 에지코트 과정 역시 더 신중하게 해야 한다. 가공 난이도가 높다는 건 더 숙련된 인력이 필요하다는 걸 뜻한다. 이는 인건비가 높아진다는 걸 뜻하므로 결국 스웨이드 제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스웨이드가 고급스러우며 싸지 않다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동시에 이런 걸 몰라도 스웨이드를 보고 으레 고급스럽다는 느낌이 드는 걸 생각해보면 인간의 감각이 얼마나 영특한지 감탄하게 된다.
아주 가까이서 포착한 스웨이드의 표면. 이렇게 봐야 에코 스웨이드가 진짜 스웨이드와 어떻게 다른지를 조금 볼 수 있다. 진짜 슬라이드는 표면 패턴이 미세하게 더 불규칙하다.
스웨이드는 가볍고 부들부들한 소재니까 보다 보면 자연스레 편안한 느낌이 든다. 그 결과 스웨이드는 의외의 요소에서 각광받는다. 가령 1960년대의 히피 룩에서. 웨스턴 히피 룩에서 스웨이드는 빠질 수 없는 소재다. 끝부분을 잘라서 술처럼 보이는 장식은 스웨이드 히피 룩의 인장과도 같다. 스웨이드는 스커트, 조끼, 바지, 재킷 등 다양한 소재에서 활용된다. 그 레퍼런스를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 추억 속 보아의 2003년작 '아틀란티스 소녀' 앨범 재킷 이미지다. 재킷 사진의 보아는 스웨이드가 덧대인 베스트를 입고 있다.
히피의 스웨이드 사랑은 흥미롭다. 이들은 자연 사랑 등 무해한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가죽을 뒤집어 얇게 저민다'는 스웨이드의 생산공정을 생각하면 히피들의 스웨이드 사랑은 앞뒤가 안 맞는다. 그러나 원래 정파를 막론하고 모든 이념에는 앞뒤가 안 맞는 요소가 있다. 중요한 건 이런 사연으로 인해 스웨이드가 오늘날의 옷장에 더욱 깊이 들어왔다는 사실이다. 히피 룩의 스웨이드에 교훈도 있다. 강성 히피처럼 온몸에 스웨이드를 두르면 좀 부담스러운 느낌이 든다. 청청 룩보다 스스(스웨이드-스웨이드)룩이 더 부담스러울 듯하지 않은가. 동감한다면 스웨이드 비중을 신발 정도로 타협(?) 하는 것도 좋겠다. 매년 가을 겨울이면 멋진 스웨이드 신발이 다양하게 출시되니까.
요즘에는 에코 스웨이드도 많다. 스웨이드의 장점인 촉감과 색의 깊이감을 살린 인조 소재다. 가죽 소재에도 반감을 갖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는데 에코 스웨이드라면 여러 모로 안심이다. 에코 스웨이드든 진짜 스웨이드든 스웨이드 소재 특유의 견고하면서도 포근하고 은근히 고급스러운 느낌은 여전하다. 가죽보다 가벼워서 편하게 입기도 좋다. 가죽 소재의 진정한 장점은 단순 보온성이 아닌 방풍 성능이다. 가죽은 털처럼 내 몸의 열을 품어주는 소재가 아니라 내 몸의 열을 뺏는 외부의 찬 바람을 막아주는 소재다. 그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지금이 스웨이드를 입기 좋을 때다.
스웨이드에도 역시 많은 이야기와 고유한 가치가 있다. 어쩌면 지나치게 많은 이야기라 느껴질 수도 있다. 이런 이야기를 즐기는 게 OLO가 강조하는 안목과 닿아 있기도 하다. 안목은 맞고 틀림같은 정답의 영역이 아니다. 높고 낮음 같은 점수의 영역도 아니다. 그저 조금 더 생각하는 일이다. 그저 내 눈 앞의 이 물건이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그에 따라 내가 떠올린 맥락과 선택은 무엇인지. 그렇게 고유한 시각이 생긴다면 옷 고르기가 고역인 사람들도 옷 고르기가 조금 더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유행을 무조건 따르는 사람들에게도 소재 생각은 좋은 의미의 숨고르기가 될 것이다.
정보를 찾고 정리해 페이지를 만듭니다. 에디터로 일하며 각종 매체에 원고를 기고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이채로운 포트폴리오를 가진 사진가 중 한명입니다. 유명 K팝스타부터 길가의 고양이와 한강의 표면까지, 그의 눈과 렌즈를 거쳐 조금 다른 사진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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