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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수업을 진행한 지 5년, 지금까지 수업에서 만난 사람만 1,000명이 넘는다. 그 모든 사람이 글쓰기가 어렵다고 입을 삐죽이며 왔다가, 수업이 끝나면 이제 좀 알겠다며 입꼬리를 올리며 돌아간다. 어쩔 줄 몰라 산만했던 페이지는 조금씩 원만하게 정돈이 되어간다. 글을 쓰면서 복잡한 마음속 정리할 부분을 발견한 것이다. 이 발견의 미소를 목격하기 위해서 나는 글쓰기 수업을 한다. 그리고 이 발견의 미소를 짓기 위해서 나도 계속 글을 쓴다. 미소를 발견하는 글쓰기, 그 방법이 궁금하다면?
내가 신병 때, 내무실에 울려 퍼진 중대장의 질문이었다. 중대장 앞에 차렷 자세로 서 있는 30여 명의 병사 중에서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글을 쓸 줄은 알았지만 말이다. 숨 막히는 정적, 누군가의 자원으로 이 순간이 끝나기를 모두가 바라고 있었다. 바로 그때, 내 맞은편에 서 있던 나의 선임이 손을 번쩍 들었다. "강기택 이병이 시를 쓴다고 들었습니다!". 아, 강기택은 나의 본명이다. "오, 그래? 그럼, 강기택 이병은 중대장을 따라오도록."
중대장이 지시한 일은 대대장에게 올릴 인사말을 쓰는 일이었다. 당시 내가 쓴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중대장의 만족스러운 표정은 기억나는 까닭은, 그 인사말로 포상 휴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휴가가 생겼다는 소식은 좋았지만 그 뒤로 나의 군생활은 연애편지 대필, 10분 만에 시 쓰기와 같은 문학적 가혹행위(?)의 연속이었다. 곤란한 요구가 많았지만 나름의 부드러움도 있었다. 강기택 이병의 입에서 나오는 문장은 '다-나-까-'로 끝나야 했는데, 그가 연애편지에 손으로 쓰는 문장은 미끈하고 아름다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로부터 12년? 13년? 정도가 흐른 지금, 전업 작가로 생활하고 있는 나. 글 쓸 줄 알던 녀석이 글로 먹고살고 있다. 다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글을 써서 버는 돈보다 글을 가르쳐서 버는 돈이 조금 더 많다. 위에서도 밝혔듯이 그동안 1,000여 명의 사람을 만났다. 나로서는 1,000개의 유니버스를 만난 것이라 여기며 겸손해지고 있다. 나이가 같다고, 성별이 같다고, 지역이나 직업이 같다고 모두 같은 생각을 가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모든 사람이 글쓰기를 위해서 시간을 낸다. 다들 글을 쓸 줄 몰라서 일까? 아니다. 잘 쓰고 싶은 것이다. 글과 마음을. 내가 연애편지를 대필하던 때처럼 미끈하고 아름답게. 아참, ‘미끈하고 아름답게’를 한 단어로 말하면 '유려하게' 라고 한다. 어쩌면 우리는 단지 유려하게 쓰기 위해서 빈 페이지 앞을 서성일 뿐이다.
수업에서는 보름 동안 두 편의 글을 쓴다. 어떤 이야기를 쓰든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게 된다는 사실은 공평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 사실 만큼이나 공평한 것은 쓰는 사람 누구나 끙끙대며 쓴다는 것이다. 이제 막 펜을 쥐고 글을 쓰기 시작한 수강생도 10년 가까이 글 밥을 먹고 있는 나도 끙끙댄다. 대신에 나는 일찌감치 끙끙댄 사람으로서 이제 막 글쓰기를 시작한 사람의 끙끙댐을 이해할 수 있다. 수강생들이 입술을 삐죽이며 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모습을 보면 뭐랄까, 귀엽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사회에서 제 몫을 하며 살아가는 다 큰 어른들이 한낱 빈 종이 앞에서 투정을 하다니.
수강생들이 가장 쉽게 하는 질문은 "그러면 이 문장은 어떻게 써야 할까요?" 인데, 실은 대신 써 달라는 말이랑 다를 게 없다. 그 말을 들으면 나는 속으로 '포상 휴가를 주시려나?' 싶어서 살짝 설레기도 하지만, 강의실에서 나의 계급은 이등병이 아니라 중대장이라는 사실을 직시한다. 그 다음은 눈에 힘을 주며 이렇게 말한다. "음, 그럼 이 부분을 빼보면 어떨까요? 꼭 필요한 부분이 아니라면요." 그러면 어렵다고 삐죽이던 입술이 오- 하고 동그랗게 열린다. 문장이 유려해진 것이다.
“더 써보면 어떨까요?” 가 아니라 “더 빼보면 어떨까요?” 라고 말하는 이유를 물어본다면, 딱히 별 건 없다. 무거운 것보다는 가벼운 게 좋으니까. 질질 끌리는 두 발보다는 경쾌한 총총걸음이 좋으니까. 일하는 날에는 혹시 필요할지 모른다며 이것저것 가방에 넣게 되지만, 쉬는 날에는 딱 필요한 것들만 남겨두고 가방에서 빼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무언가를 뺀다는 일은 단순히 양을 줄이는 게 아니라 필요 있음과 필요 없음을 구분하는 일이기도 하다. 남겨둘 문장과 빼버릴 문장, 이 구분이 어려워서 우리의 글쓰기는 끙끙댄다. 동시에 끙끙대며 계속 쓰면 구분하는 요령을 터득하기도 한다. 3개월 정도 꾸준히 끙끙댄 수강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을 옮겨본다. "선생님, 글 솜씨가 늘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좀 당당해진 것 같기는 해요(웃음)."
당당한 미소. 내게는 그것이 글 쓰는 사람의 쟁취로 보인다. 다른 사람의 무심한 한마디에 휘둘리지 않는 일. 유심히 들여다보고 조심히 구분하는 일. 글쓰기는 단지 그런 일이니까. 마음과 말을 분리수거하고 재활용하는 일. 지속 가능한 내 마음의 지구를 위한 일. 글쓰기는 단지 그런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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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운동하고 매달 수업하고 매년 만듭니다. 아담하고 씩씩하게 생활하고 그걸 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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