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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방을 고치면서 지금의 일(공간 디자인)을 시작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상업 공간을 더 많이 작업하게 됐지만, 가장 좋아하는 공간의 형태를 꼽으라고 하면 저의 대답은 언제나 ‘집’ 입니다.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기쁨과 이로움을 20대 시절의 자취방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 까지 몸소 체험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내 집을 어루만지는 일에 대해서는 싫증이 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대외적으로 인테리어 일을 하다 보면 집에 돌아와 또 비슷한 일을 하는 것이 싫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아닙니다. 도리어 고단한 업의 세계에서 ‘아름다운 나의 공간’에 대한 갈망이 저를 지켜주었던 것 같습니다.
사는 게 힘들고 인생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저는 집에서 해답을 구합니다. 우선 먼지를 쓸고 닦아 집을 깨끗하게 만든 다음 관찰을 시작해요. 집의 구조나 가구처럼 집을 이루는 커다란 틀부터 조명, 소품 그리고 장식품 같은 상세한 요소들 까지 자세히 바라봅니다. 그리고는 무엇을 빼야 하고 더해야 할지, 어떤 부분이 좋고 어떤 부분이 거슬리는지 생각합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기준을 남들의 시선이 아닌 나 자신으로 두려는 일입니다. 생각보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런 ‘나만의 더하기와 빼기의 결정’이 반복되다 보면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집을 일구어 낼 수 있어요. 그리고 이렇게 ‘나만의 기준으로 아름다운 집’은 진정으로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힘을 갖는 것 같더라고요.
집을 이루는 것은 흔히 커다란 것들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어떤 브랜드의 어떤 가구가, 무슨 무슨 조명이 달려 있는 것이 집의 인상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 착각할 수 있죠. 하지만 제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아름다운 집의 정수는 정말 사소한 것들에 담겨 있습니다. 어쩌면 집의 아름다움이란 사소한 부분에서만 발현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로요. 오늘은 이 사소하지만 중요한 집의 요소 중 몇가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저처럼 늘 아름다운 집에 살기를 꿈꾸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집에서 의외로 중요한 인테리어 아이템
1. 패브릭
집을 돌보며 저는 늘 패브릭 한 장이 가진 힘에 감탄합니다. 어딘가 비어 보이는 공간, 모양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 물건(주로 가전) 혹은 색상이나 질감이 혼자 튀는 소가구에 패브릭이 곁들여지면 그 공간은 갑자기 마법을 부린 것처럼 정갈한 모습으로 바뀌곤 합니다. 주방에서 혼자만 눈에 띄는 밥솥 위에 살짝 덮어둔 키친 클로스, 여기저기 긁힌 자국이 있는 협탁 위에 덮어둔 새하얀 소창 손수건 같은 것에 시선이 닿을 때마다 어찌나 마음이 뿌듯한 지요. 거실 소파에 올려두는 러너는 또 어떻고요. 낮잠을 잘 때는 이불이 되었다가, 벽에 걸어두면 근사한 작품처럼 변신하기도 합니다. 이 밖에도 식탁 위에 얇고 자그마한 천을 깔고 밥과 국, 수저를 올려두면 근사한 식탁 매트가 되기도 하고 식탁에 커다란 천을 덮으면 손님맞이에 안성맞춤인 식탁보가 됩니다. 천 한 장이 가진 힘은 무궁무진 합니다.
2. 구색에 맞게 갖춘 잔(컵)들
어린 시절엔 집에서 물, 우유, 쥬스, 커피, 콜라 등등의 음료를 모두 손잡이가 달린 도자기 머그잔에 따라서 마셨어요. 혼자 살기 시작한 이후에도 내내 컵은 그저 손에 잡히는 대로 사용했고요. 그러던 어느 날 살림 센스가 좋은 한 친구의 집에 초대 되어 갔을 때였어요. 친구가 차려준 밥상에 보리차가 담긴 작은 사이즈의 투명한 유리잔들이 놓여 있는 것이 눈에 띄더라고요. 식기와 테이블 세팅, 커트러리는 그렇다 쳐도 각기 다른 모양의 유리잔에 담긴 갈색 보리차가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후식으로 차를 준비했다며 꺼내 온 두어 가지 모양의 소담한 다기가 놓인 상차림을 보면서는 작은 전시에 초대받은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그 후로는 우리집에도 카테고리가 다양한 유리컵과 찻잔, 커피잔이 자리잡았습니다. 용도에 맞게 사용하는 적절한 컵과 잔을 갖추는 것이 다과와 식사시간에 얼마나 즐거움을 주는지 그 날 이후 매일같이 깨닫고 있습니다.
3. 식물 (꽃 포함)
집이 차갑거나 생기가 없어 보여 아쉬울 때가 있습니다. 구색을 모두 갖추었는데도 무언가 부족하게 느껴질 때, 식물이 답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돌보고 가꾸는 집에는 온기가 있습니다. 그 온기는 대부분 ‘손길’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어루만지고 보살피는 손길을 정돈된 집의 가구와 공기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결정적인 힘을 실어주는 건 식물입니다. 집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수형의 나무 하나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는 일을 경험 해보신 적이 있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공간에 어울리는 식물이 배치 되었을 때 비로소 인테리어가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 많더라도 살아 있는 것이 주는 싱그러움과 그것을 돌보는 손길처럼 빛나는 것은 없으니까요. 식물을 키우는 일이 부담스럽다면 계절의 잎사귀들(소재)이나 꽃을 꽂아 두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저는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것은, 사람보다 식물이나 꽃에게 더 어울리는 말이라는 생각을 가끔 한답니다.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저자이자 ’탠 크리에이티브‘ 인테리어 스튜디오(탠상점)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유튜브 채널 ‘고요의 집’을 통해'머물고 싶은 공간'과 '그 공간을 채우는 것들'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koyo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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