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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단추에 대해
좋은 설렁탕집의 조건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 있으신지. 무엇으로 좋은 설렁탕집을 가늠할까. 재료? 국물? 넉넉한 양? 식당 안에서 거리로 풍기는 향? 확실한 지표가 있다. 깍두기. 좋은 설렁탕집은 예외 없이 깍두기가 맛있다. 맛있는 깍두기는 여러 가지를 상징한다. 주식은 물론 깍두기까지 신경 쓸 정도로 디테일에 치중하는 가게. 동시에 깍두기까지 주의를 기울일 여력이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는 가게. 깍두기가 계속 돌아갈 수 있을 정도로 매장 순환이 잘 되는 가게.
깍두기로 단추 이야기를 시작하는 하는 이유는 설렁탕과 깍두기의 관계가 옷과 단추와의 관계와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단추로 옷 보기
“디자이너끼리는 단추로 옷을 가늠하기도 합니다. 단추에 돈을 많이 쓰는 옷이 비싼 옷이니까요." 대형 패션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 지금은 자기 레이블을 준비하는 디자이너 A의 말이다. 말 된다. 모호한 환상 속의 패션 디자인을 걷어내면 단가와 판매가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실무의 세계가 나온다. 어떤 제품이든 단가를 생각하면 고급 자재와 부자재를 쓰는 데 한계가 있다. 의류도 마찬가지다. SPA 브랜드 옷에 천연 소뿔 단추를 달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진 1,2) 다양한 소뿔 단추의 모습. 자연 소재이기 때문에 불규칙한 패턴을 볼 수 있다.
디자이너의 눈으로 본 좋은 단추는 무엇이 다른 단추일까. "설계부터 하는 단추가 고가 단추죠." 실무자의 이야기는 늘 명쾌하다. "명품 브랜드의 단추는 디자이너들도 참고하기도 하고, 단추 샘플 북이 따로 있기도 합니다. 어떤 브랜드는 단추 구멍을 따라 단추를 달면 자사 브랜드의 글자가 완성되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 어떤 브랜드는 에르메스다. 옛날 에르메스 옷 중에서는 단추구멍이 6개인게 있다. 세로로 3개씩 두 줄인 구조다. 세로면을 각각 ㅣㅣ 형태의 한 줄로 꿰매고 그 면 사이를 ㅡ 모양으로 한 번 메꿔주면 단추 바느질 자국만으로 에르메스의 H가 완성된다. 구멍이 6개인 단추는 따로 만들어야 한다. 이런 게 숨은 럭셔리다.
우리의 모든 옷이 에르메스가 아닌 이상 단추 구멍 6개짜리 고급 단추는 큰 의미가 없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고급 단추의 조건은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 변수를 생각할 수 있다. 세공과 소재. 값비싼 소개를 재료 삼아 세공을 충실히 하면 그를 좋은 단추라 볼 수 있다. 다만 요즘은 각종 제조업 역량에 물이 올랐다. 단추의 품질에도 편차가 많이 줄었다.
단추의 작은 차이와 큰 의미
사람은 작은 차이도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세상에는 아주 많은 단추가 있으며 그 단추에 조금씩의 차이는 있고, 물건의 완성도 면에서 단추를 봤을 때 가장 큰 변수는 소재다. 의류 가격의 일정 부분이 소재에 좌우되고 단추도 그와 같다. 보통 상아, 소뿔이나 자개 등의 자연 소재를 고급 소재로 여긴다. 단추의 경우에는 야자열매의 씨도 단추로 많이 쓴다. 플라스틱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다. 21세기는 무조건 '자연 소재가 고급이고 인조 소재가 저급이다'라고 할 수 없는 시대다. 질 좋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단추에는 다른 소재와 다른 플라스틱만의 매력이 있다.
사진3) 너트 단추를 크기별로 정리한 것. 같은 셔츠라도 다른 사이즈의 단추를 쓴다.
단추의 경우 자연 소재와 인공 소재의 차이는 시각적 차이를 넘어선다. 실제로 여러 종류의 단추를 보면 질 좋은 플라스틱 단추는 뿔 단추의 미묘한 번짐같은 효과와 거의 흡사한 시각적 효과를 넣기도 한다. 다른 건 둘이다. 하나는 촉감이다. 물질마다 열 전도율이 다른 건 당연한 사실이니, 소뿔 단추와 너트 단추와 자개 단추와 플라스틱 단추는 모두 만졌을 때의 느낌이 조금씩 다르다. 플라스틱 단추를 만질 때의 느낌이 불쾌하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너트 단추나 소뿔 단추를 만졌을 때만의 부드러운 느낌은 확실히 있다.
아울러 이런 소재들은 시간이 지나며 멋지게 늙는다. 밝은 색 너트 단추는 주변 소재의 색에 따라 색이 번지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색이 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저급 소재는 시간이 지나며 허물어지는 반면 고급 소재는 시간이 지날수록 성숙한다. 와인이나 인생이나 교양처럼, 단추의 소재도 지나 봐야 진가가 드러난다. 오랫동안 잘 써서 반질반질해진 소뿔 단추나 너트 단추에는 시간을 품은 기품이 있다.
사진4) 지름이 같은 너트 단추의 다양한 변용. 단추를 깎은 정도, 그을린 정도, 단추구멍의 모양 등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너트 소재는 사람의 손이 탈 수록 더 반들반들해지기도 한다.
단추 속 또 하나의 재미있는 사실은 단추의 치수다. 남성복의 경우에는 보통 주로 쓰는 단추의 지름이 정해져 있다. 남자 코트는 25mm, 남자 재킷은 21mm, 피코트는 30mm같은 식이다. 셔츠의 단추 크기는 셔츠에 단추구멍이 몇 개인지에 따라 다르다. 단추구멍이 7개인 셔츠에는 지름 11mm, 단추를 달고 단추구멍이 6개인 셔츠에는 지름 13mm 단추를 단다. 버튼다운 셔츠에 달려 있는 단추는 이것보다 조금 작아서 보통 9mm다. 이렇게 내가 모르는 세상에도 규칙과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하면 세상이 조금 더 재미있어진다.
"예전에는 성수동에 단추 공장이 많았대요.” 단추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A는 성수동과 단추의 흥미로운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그 이유가 근처의 마장동 우시장이었다고 해요. 마장동 우시장에서 나온 소뿔이 근처의 단추 공장으로 넘어가기 쉬워서 성수동에 단추 공장이 자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 성수동에 가 보면 세상이 이렇게 금방 바뀌는구나 싶다.
인간과 단추
도시의 변천사만큼 단추의 역사도 극적이다. 최초의 단추로 추정되는 출토품의 연대는 기원전 5천년까지 올라간다. 다만 그때의 단추는 지금처럼 옷을 여미는 용도가 아니라 의류에 달아서 옷가지를 장식하는 용도로 썼을 거라 추정된다. 그렇게 치면 각종 단추를 장식용으로 써서 자기 옷을 리폼하는 사람들은 기원전 이래 인류의 전통을 계승하는 셈이다. 여러분이 어딘가 빈 옷을 보면서 '여기 단추를 달아서 DIY를 해볼까'라고 생각한다면 나의 개인적 기호와 상관없이 응원하고 싶다. 그건 인간의 본능을 이어가는 행위다.
사진 5~8) 소뿔 단추를 다양한 모습으로 가공한 것. 탈색을 하느냐, 광택 처리를 하느냐, 모양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양한 느낌이 난다. 소뿔 단추 역시 자연 소재이므로 만졌을 때 느낌이 다르다.
좋은 단추를 알아보는 가장 방법 중 하나는 빛을 비춰 보며 만져보는 것이다. 뿔은 빛을 약간 투과시키고 자개는 빛을 굴절시킨다. 거의 모든 의류 소재와 부자재의 품질은 빛을 비추면 드러난다. 빛을 대 보면 여러 가지 만듦새의 세부도 눈에 더 잘 보이기도 한다.
단추에 대해 알면 무엇이 좋을까? 아우터 등 가격대가 있는 옷을 살 때 단추를 주시한다면 조금 더 입체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고가의 코트에 싸구려 단추가 달려 있는 걸 보니 이 코트는 사지 말아야겠군'같은 식으로 추산할 수 있다면 여러분의 충동구매도 방지할 수 있다. 반대로 '고가의 코트에 저렴한 단추를 달았다니 중요한 부분에 신경을 썼고 단추에 돈을 아꼈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같은 현상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자신의 세계관에 달려 있다.
마지막으로 설렁탕과 단추의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소뼈다. 세상에는 소뼈로 만든 단추도 있다. 색은 새하얗고 질감은 딱딱하다. 뼈의 기름이 배어나와 만지다 보면 손에 조금씩 윤기가 든다. 어떤 소뼈는 국물을 우리고 어떤 소뼈는 단추가 되니 세상 모든 건 나름 쓰임이 있나 싶기도 하고 운명은 오묘한 거구나 싶기도 하다. 소뼈 단추를 만지작거리며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인생의 작은 재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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