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KOLONMALL. ALL RIGHT RESERVED
"아차, 여기를 먼저 보셨어야 하는데." 남자는 혼잣말을 하면서 차를 돌렸다. 우리가 탄 세단은 차가 한 대도 없는 산업도로를 U턴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여기는 순천과 광양 사이에 자리한 율촌산업단지, 혼잣말과 함께 차를 돌린 남자는 광양훼더 심상형 대표였다.
'훼더(요즘 표기법으로 쓰면 페더)'는 오리나 거위 등의 털을 지칭한다. 털 중에서도 가슴털을 다운이라 부른다. 훼더/페더를 의류산업 용어로 우모라고도 부른다. 광양훼더는 한국에 하나 뿐인 훼더/페더/우모 가공 업체다. 이 업체를 보기 위해 취재팀이 아침부터 김포에서 비행기를 타고 여수까지 갔다. 심상형은 친절하게 우리를 마중 나와, 공장에 가는 길에 '여기를 먼저 봤어야 한다' 며 차를 돌린 것이었다.
1. 광양훼더 공장 외부. 컨테이너 트럭이 한 번에 접안되도록 설계되었다.
2. 광양훼더 심상형 대표. 인상이 좋았다.
왜 광양인가? 나도 궁금했다. OLO매거진의 두 번째 현장 취재가 광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이기도 했다. '캐나다산 거위털(캐나다 구스)' 처럼 여기에 오리나 거위가 많나?(아니었다. 나중에 들어 보니 광양훼더의 원료는 다 수입해오는 새털이었다) 보조금이라도 받았나? (이 역시 아니었다. 대신 대출을 받았다. 광양훼더가 초기 시설투자 금액 확보를 위해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이익공유형 대출을 받았다는 기사가 남아 있다). 대표님이 광양 사람인가?(이것도 물어봤더니 아니었다).
광양훼더가 광양에 자리잡은 이유는 크게 둘이었다. 첫째는 물동량. 광양훼더 근처에 자리한 광양항은 부산항에 이어 한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물동량을 처리한다. 광양훼더같은 제조업 회사가 원재료와 상품 이동이 쉬운 항구를 근처에 두는 건 확실한 장점이다. 그 광양항을 보여주기 위해 심상형은 차를 U턴해 광양 앞바다를 보여준 것이었다. 광양의 더 큰 장점은 물동량이 아닌 물 그 자체였다. 오리털과 거위털을 만드는 데 왜 물이 중요하냐고? 그 이야기가 오늘 우리가 여기 온 이유였다.
1. 광양훼더 연구실에 전시되어 있던 다운. 각 통에 들어 있는 다운은 모두 무게가 같고 필 파워만 다르다. 필 파워가 다르면 부피가 이렇게 차이가 난다.
2. 필 파워가 높은 다운을 눌렀을 때. 손을 떼면 용수철처럼 되살아난다.
광양훼더가 왜 여기 자리잡았고 왜 물이 중요한가에 앞서 가장 먼저 대답을 들어야 하는 질문이 있었다. 왜 깃털인가? 왜 한국에 오리털 가공 업체가 광양훼더 뿐인가? 광양훼더와 심상형의 커리어 역사가 살아 있는 답이었다.
심상형 대표의 커리어는 한국의 산업화 역사와 맞물린다. 그는 약 30여년 전 오리털 담당 회사원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한국이 다운자켓 등을 주문 제작 생산하던 경공업 생산 기지국가 시절이다. 그때부터 심상형은 좋은 다운과 훼더 원료를 얻기 위해 북미와 유럽을 오갔다. 그러는 동안 한국이 잘 살게 됐다. 원래 나라가 잘 살면 근로자의 평균 임금이 오르며 경공업이 축소된다. 한국이 정확히 그랬다. 심상형이 다니던 회사를 비롯한 한국의 의류 생산 업체들은 해외로 생산기지를 이전시켰다. 커리어의 노하우를 깃털에 담은 심상형도 결정해야 했다. 그는 한국에서도 높은 품질의 다운과 훼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본인의 깃털 수급 노하우가 있으니 한국에 깃털 제조시설이 있다면 좋을 거라 판단했다.
질문이 남는다. 깃털왕의 네트워크를 통해 원료인 생 깃털까지는 구해와도, 이 원료를 상품화 하는 건 어렵지 않을까? 이걸 누구에게 맡길까? 그 기술적 고민을 해결한 남자가 심상형 옆에 앉아 있었다. 광양훼더 방극대 전무. 우리는 둘의 안내를 따라 공장으로 들어갔다.
광양훼더 공장 내부. 상당히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의류든 식품이든 생산 공장의 흐름은 거의 비슷하다. 원재료가 입고되어 공장 가공 공정을 거쳐 상품화를 마친 후 출고된다. 광양훼더도 그랬다. 세계 각국에서 수입된 깃털 원재료가 광양훼더로 입고된다. 광양훼더에서 가공 및 등급별 분류 및 상품화 작업을 끝낸다.
이 과정을 보여주기 전 심상형은 모두에게 마스크를 권했다. 다운의 원료인 가공하지 않은 깃털에서 냄새가 조금 난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원고 작성자인 나는 이런 걸 느껴보고 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스크를 받지 않았다. 마스크 없이 원료 입고장에 들어가자 거대한 새장에 있는 것 같은 냄새가 났다. 이 냄새를 더 자세하게 묘사하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다. 나는 광양훼더의 실무자들께 실례를 범하지 않기 위해 표정 관리에 신경을 썼다.
1. 페더와 다운의 원물인 깃털이 입고된 모습. 부피 때문에 꽁꽁 묶여 있다. 냄새가 상당하다.
2. 현장에서 다운을 보여주는 모습. 실제로 저렇게 큰 깃털은 다운 자켓에 들어가지 못한다.
바로 이 냄새에 광양훼더의 경쟁력이 있다. 자연 상태의 깃털이 의류에 들어가는 '다운'과 '페더'가 되려면 우선 씻어야 한다. 씻기가 광양훼더의 큰 장점이다. 물 때문이다. 유럽 물은 석회질이 많아 한국처럼 세탁 효율이 좋지 않다. 다운을 세척할 때도 마찬가지다. 깨끗한 세탁수는 그 자체로 광양훼더의 경쟁력이다. 그 중에서도 광양과 순천으로 흘러 내려오는 물은 맑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심상형이 연고도 없는 광양까지 와 다운 가공 공장을 만든 것이었다.
광양훼더 공장을 찾은 날은 깃털 성수기가 아니라서 기계를 일부만 운용하고 있었다. 다운용 세탁기는 컨테이너 박스 두 개쯤 되는 길이에 높이도 컨테이너 박스를 세로로 세운 정도로 높았다. 세탁기를 지나자 다운의 원초적인 냄새가 많이 사라져 있었다. 나도 표정을 굳이 관리할 필요가 없어졌다.
광양훼더에서 운용하는 깃털 세탁기. 여기서 깨끗이 세척해 분류 단계로 넘긴다.
세척이 광양훼더의 경쟁력이라면 분류는 광양훼더의 볼거리다. 의류에 관심이 많다면 다운 의류의 '필 파워'라는 개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단위 무게당 차지하는 부피를 필 파워라고 한다. 같은 무게인데 더 많은 부피를 차지한다면 그만큼 개별 깃털이 공기를 더 머금었다는 의미다. 그만큼 더 따뜻하므로 '필 파워'라는 이름을 붙인다.
1. 광양훼더에서 사용하는 깃털 분류기. 실제로 보면 이 정도로 크다.
2. 깃털 분류기 안에서 깃털이 선별 되는 모습. 가벼운 다운은 아래에서 위로 날아가며 선별 되고, 무거운 것들은 빙빙 돌기만 한다.
3. 성인 여성이 깃털 분류기를 촬영하는 모습에서 기기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1. 깃털 분류기에도 종류가 있다. 이 분류기는 깃털을 5단계로 분류한다.
2. 깃털을 휘날려보며 설명하는 광양훼더 방극대 전무.
‘하얀 털 하늘 높이 자꾸 올라가는' 광경은 단순히 멋있는 걸 넘어서는 광양훼더의 핵심 경쟁력 이다. 방극대 전무는 안내하는 내내 “가장 중요한 건 바람을 관리하는 것”이라고 했다. 다운의 컨디션은 매번 다르니, 바람을 얼마나 어떻게 불어야 분류 효율이 가장 좋은지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이 기계(분류기)를 어떻게 써야 할 지 몰랐으니까 중국인 엔지니어를 모셔왔어요. 이 기계가 중국산이거든요. 그런데 이 분들은 매뉴얼로 기계를 운용하는 게 아니었어요. 제가 배우고 매뉴얼을 만들어서, 이 분들이 예상보다 일찍 중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방극대 전무의 말이다.
1. 분류를 마친 오리털이 쌓여 있는 모습.
2. 광양훼더 공장은 처음부터 지게차가 드나들 만큼 내부 통로가 넓도록 설계되었다. 그 결과 쾌적한 선별 작업이 가능해졌다.
클라이언트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된 광양훼더 다운과 훼더 샘플.
광양훼더 시설은 마지막까지 훌륭했고 곳곳마다 사려깊었다. 깃털은 필연적으로 먼지가 발생한다. 광양훼더는 먼지가 될 만한 깃털은 강력히 빨아들여 별도 설비로 처리한다. 자신들이 세탁한 물의 폐수처리 시설을 만들고 완비했다. 소비자들은 안타티카 사면 좋겠지? 라고 생각하며 구매하는 걸로 끝이다. 다만 좋은 물건을 만들기 위해 신경 써야 할 게 이렇게 많다. 신경을 쓸 수록 떳떳해지고, 떳떳할수록 멋있어진다.
광양훼더의 폐수처리 시설. 광양훼더는 이 시설을 강조했다.
정보를 찾고 정리해 페이지를 만듭니다. 2023년에는 잡지사 에디터로 일하며 각종 매체에 원고를 기고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댓글을 달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