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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리즈에서 신발은 봉제가 아니라 제조이기 때문에 다양한 업체들이 모여 있다고 했다. 이번에는 그 실제 제조 업체들을 찾아갔다. 신발끈을 만드는 윤기영 대표와 EVA 미드솔을 만드는 이근중 대표가 직접 설명하는 형식으로 원고를 구성했다. 이렇게 구성한 이유는 두 가지다. 일단 독자들께 낯선 내용이라 이해를 돕기 위해서다. 아울러 평생을 제조업에 계신 분들께 보내는 존중 때문이다.
서일산업 윤기영 대표. 책임감 있어 보이는 미남이었다.
1. 서일산업사의 전경
2. 생산 설비의 전경. 동그란 신발끈과 납작한 신발끈 기계가 다르다.
1. 신발끈이 되기 전의 실들이 기계에 설치된 모습. 실제로 보면 장관이다.
2. 서일산업이 보유한 다양한 신발끈 샘플
성공의 비결이요? 열심히 합니다. 사실 저와 아내가 밤에 일합니다. 직원은 10명 정도인데, 직원들이 퇴근하고 나면 아내와 제가 밤에 신발끈을 만듭니다. 매년 성장하고 사원들에게 보너스도 주려면 이렇게 해야 합니다. 성장하는 만큼 밤낮 없이 해야죠. 그 덕에 이른바 유망사업은 아니면서도 제가 인수한 이후 연에 30%씩 성장하고 있습니다.
좋은 신발끈의 품질 기준도 있죠. 신발끈은 약 40가닥의 실을 꼬아서 만듭니다. 그 실을 꼬는 기계 아래에 스프링이 있어요. 그 스프링의 탄성을 늘 같게 유지해줘야 실을 깨끗하게 꼬아서 만들 수 있습니다. 끈을 만드는 건 기계지만 사람이 계속 붙어서 컨트롤해줘야 합니다. 실시간으로 에러를 잡아서 계속 수정해줘야 하고요.
1. 보통 신발끈 하나를 만들 때 40개의 실이 쓰인다고 한다.
2. 동그란 신발끈을 만드는 기계의 모습
3. 신발끈의 끝부분을 잘라 마감을 처리하는 기계
아웃도어 신발끈의 경우에는 신발끈 안에 심재가 있어요. 보통은 부직포를 얇게 자른 걸 심재로 쓰는데 저희 서일산업은 그러지 않아요. 심재를 위해 별도로 얇은 줄을 한번 더 꼬아 만들어줍니다. 심재를 만들기 위해 줄을 두 번 꼬는 거에요. 심재 전용 줄을 꼬아서 신발끈을 만들면 그만큼 튼튼해집니다. 당기는 힘을 견디는 정도인 인장강도가 높아져요. 아웃도어 신발처럼 극한 상황을 상정한 신발에 좋겠죠.
설비 사이에서 신발끈 기계를 점검하는 서일산업의 숙련공
전에 오셨을 때 일하던 젊은 청년 중 한 명이 제 아들입니다.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죠. 그런데 20년 후에 부산의 신발 제조 산업이 존재할지 모르겠어요. 저희끼리는 "항상 불안하다" 고 말합니다. 신발 제조공장들이 베트남으로 넘어가면서 부산의 업체들이 점점 없어져요. 물건을 잘 만드는 게 다가 아닙니다. 한국의 산업 동향이 불안하죠. 그래도 20년은 자신 있습니다.
1. 도원인젝션 이근중 대표. 농담을 잘 하지만 전문성이 확실했다.
2. 도원인젝션의 전경
저는 컴파운드 회사의 기업 부설 연구원이었어요. 지금 EVA의 원료인 컴파운드를 연구했습니다. 30대 초반에 파트너에게 제안을 받아 EVA를 만드는 제조업체를 차리게 되었습니다. 그게 2003년이니 20년이 되었네요. 도원인젝션은 부산의 EVA 가공공장으로는 가장 오래된 업체입니다. 코오롱스포츠 신발에도 저희의 EVA 미드솔이 들어갑니다.
1. EVA 미드솔을 만드는 알루미늄 몰딩이 쌓인 모습. 비중이 낮은 알루미늄인데도 개당 무게가 40kg에 달한다.
2. EVA를 넣기 전 몰드의 모습
EVA의 V가 비닐입니다. 에(E)틸렌과 비(V)닐 아(A)세테이트에서 온 약자에요. EVA '컴파운드' 라고 하는 작은 알갱이를 몰딩 안에 쏘면 부풀어 올라서 EVA 미드솔이 됩니다. 몰딩 안에 넣는 건 붕어빵을, 부풀어 오르는 건 뻥튀기를 생각하면 돼요. 그 전에 쓰던 소재는 비효율적이었어요. 원료가 몰딩 바깥으로 튀어나와서 재료 낭비도 있고 환경에도 문제가 있었죠. 튀어나온 소재를 관리하고 정리해야 하니 인건비도 추가로 들었어요. EVA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1. EVA의 원료가 되는 컴파운드. 자갈처럼 생겼다.
2. EVA 솔이 만들어지는 걸 설명해주는 모습
3. 다 만들어진 EVA 솔. 측면에 잘라내고 다듬을 부분이 없는 걸 볼 수 있다.
대신 EVA를 만들려면 컴파운드를 만드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EVA도 요령이 없으면 오차율이 있어요. 제가 처음 EVA를 만들 때는 금형 완성도가 불안정해 오차율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금형을 CNC로 깎게 된 게 약 15년 전 부터에요. 그때부터 금형 완성도가 비약적으로 높아졌습니다. 아울러 컴파운드의 최적 발포율을 찾기 위해 실험을 계속해 데이터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컴파운드를 공부해야 할 수 있는 일이에요.
EVA가 만들어낸 유행 중 하나가 통 슬리퍼에요. 요즘은 푹신푹신한 통 슬리퍼가 없는 브랜드가 없죠. 통 슬리퍼는 산업적으로 봤을 때 코로나 상황이 만들어낸 변이 상품같은 면이 있어요. 코로나 초기에 물류망이 막히며 부자재 수급이 어려워진 적이 있었고, 그때 한번에 찍어낼 수 있는 EVA 통 슬리퍼가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볍고 편하게 신기 좋으니까요.
EVA의 히트상품, '통 슬리퍼'
칸예 웨스트도 통 슬리퍼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사람이 통 슬리퍼를 신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생각이 변했어요. 그 전에는 신발에 대한 인식이 '신발은 묵직해야 한다' 였어요. 좋은 제품을 보여줘도 고객이 한 번에 받아들이지는 않아요. 제가 멕시코에 영업을 나갔을 때도 EVA 신발이 가볍다는 이유로 잘 안 된 적이 있었어요. 좋은 제품을 보여줘도 고객은 한번에 받아들이지 않아요. 그러다 칸예 웨스트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꾼 거에요.
앞으로도 부산에서 신발 산업을 할 수 있겠느냐고요? 모르겠네요. 이미 베트남으로 많이 떠났어요. 저는 해외 생활을 하자니 나이도 들어서 부산에 있는 거고요. 여기서 얼마를 더 벌까 싶어서. 이제 부산은 신발 제조 기술도 예전 같지 않고, 그 이유 중 하나는 노령화에요. 그래도 신소재를 개발하고 있어요. 요즘 유행하는 어떤 통 슬리퍼 브랜드의 소재를 확인하고 만들었어요. 푹신한 정도와 딱딱한 정도를 조절할 수 있어요. 부산에 또 오시면 좀 더 설명해 드릴게요.
EVA 솔이 만들어지는 기계들이 늘어서 있다.
어른이 된 이들의 삶은 말 그대로 글로벌 및 로컬 경제와 함께였다. 이들은 부산이 신발 제조의 메카일 때 신발 제조업의 일부로 일을 시작해 21세기 초반의 부산 신발 제조 업계 현황을 자신들의 눈으로 지켜보았다. 그동안 생산기지는 이전하고 현장 근로자는 나이가 들었고 한국은 저렴한 인건비로 경쟁하는 신발제조 등의 경공업보다 더 복잡한 반도체나 자동차 등을 만들어 수출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 사이에 여전히 스니커즈 시티 부산이 있다. 동남아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업체도 있고 업체 자체의 수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누군가는 뭔가를 한다. 밤까지 아내와 함께 신발끈 만드는 기계를 돌리는 윤기영 대표같은 사람들이, 사업을 할지 모르겠다면서도 시대 흐름에 맞춰 신소재를 개발하는 이근중 대표같은 사람들이 있다. 이 외에도 코오롱의 담당자들을 포함해 신발제조 현장 안팎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신발을 비롯한 패션 상품이 한없이 모호하고 예측 불가능하게 보일 때가 있다. 왜인지도 모르겠는 유행이 태풍처럼 시장을 휘감을 때, 탁상공론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려운 말을 쓰면서 유행을 철학적으로 설명하려 할 때면 '이게 다 뭔가'싶어진다.
현장에서는 그런 말이 통할 자리가 없다. 월 생산량이 있고 낮춰야 하는 불량률이 있다. 윤기영은 산업이 불안하다고 하면서도 늦게까지 일을 한다. 이근중은 업체 사장님인데도 일을 한 피로가 쌓여 팔에 깁스를 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쌓여 모호한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그 모호한 이미지의 밑단에는 우리같은 보통 사람들의 구체적인 노력이 있다. 부산에서 그 노력을 봤다.
정보를 찾고 정리해 페이지를 만듭니다. 2023년에는 잡지사 에디터로 일하며 각종 매체에 원고를 기고하고 있습니다.
풍경을 관찰하고 사람을 경청해 맥락을 사진에 담는 사진가입니다. 광고, 매체 등 상업 작업과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을 동시에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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