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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몬학습지가 익숙한 분들이 얼마나 되시려나 모르겠다. 어릴 때 눈처럼 쌓이던 학습지의 추억이 생각나는 분이 계실 수도, 기억 속 희미한 이름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구몬학습지는 고교 수학교사였던 구몬 도루가 만들어 이제는 세계적인 그룹이 된 학습지 브랜드다.학습지와 학습 효율 사이의 상관관계를 확신할 순 없어도 아직 전 세계의 학생들이 구몬학습지로 자신의 공부를 하고 있다.
고어텍스와 구몬학습지에는 의외의 공통점이 있다. 명명 규칙이다. 구몬학습지라는 이름은 구몬 (고안자 이름)+학습지(제품 이름)으로 구성되었다. 고어텍스 역시 고어+텍스. 여기서의 고어는 다른 게 아니라 사람 이름이다. 고어텍스의 창립자가 윌버트 리 고어이니 고어텍스는 ‘고어 가문의 섬유’라는 뜻이다. 명명 논리만 놓고 보면 고어텍스는 특수섬유계의 구몬학습지인 셈이다.
고어텍스는 고어 가문 2대에 걸친 발명 혹은 발견이다. 창립자 윌버트 리 고어는 듀퐁의 화학 엔지니어다. 듀퐁은 테플론 코팅으로 유명하다. 그는 회사의 합성수지인 폴리에트라플루오로에티렌(PTFE)을 집으로 가져와 그걸로 전선에 코팅 등을 하는 회사를 차렸다. 윌버트의 아들 밥 고어는 아버지의 소재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고생하다가 수타면을 가공하듯 가열된 PTFE를 쭉 늘려 보았다. 이 실수에 가까운 시도에서 밥은 중요한 발견을 하게 된다.
고어텍스의 뿌리가 된 발견의 키워드는 미세 구멍이다. PTFE는 쭉 늘려도 길이만 길어질 뿐 강도가 여전했다. 같은 양의 소재를 늘렸으니 미세한 구멍이 수도 없이 발생했다. 이들은 이 미세 구멍 소재로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이 소재는 PTFE를 늘어뜨렸다(expand)고 해서 e-PTFE라 부르기로 했다. 여전한 강도와 미세한 구멍이 고어텍스의 원리이자 원천인 동시에 향후 섬유산업계에 영향을 주는 고어텍스의 원천기술이다.
1. 고어텍스는 몇 가지 소재를 층층이 붙여 만든 ‘라미네이트’ 원단이다. 그 원단 특유의 서걱서걱한 질감이 있다.
2. 고어텍스 원단에 물방울을 뿌려 본 모습. 발수 원단이라 원단이 젖지 않는다.
그 전에도 물을 막아주는 소재는 많았다. 바버 재킷처럼 왁스를 바른 면직물도 물방울을 막아주고, 생각해보면 우산도 물방울을 막는 소재다. 그런데 왁스를 바른 면직물은 무겁고 불편하고 냄새가 난다. 우산 소재로 만든 비옷은 내가 흘린 땀도 보존하니 비옷을 입은 내 몸이 쾌적하지 않다. 물은 막아주고 땀은 내보내주는 것, 이것이 고어텍스로 대변되는 화학공학의 마법같은 효능이다.
밥 고어가 만들어낸 고어텍스의 구멍은 물방울보다는 작지만 수증기보다는 크다. 고어텍스 본사 자료에 따르면 물방울보다는 20000배 작고 수증기 분자보다는 700배 크며, 이런 구멍이 각 평방인치당 90억 개 있는 게 고어텍스다. 옷 밖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은 스며들지 못하는데 몸 안에서 발생하는 땀이 기화되어 빠져나가는 비결이다. 이 소재가 고어텍스의 핵심인 '고어텍스 멤브레인'인데 사실 이 소재는 소비자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고어텍스는 몇 겹의 섬유 층으로 이루어진 라미네이팅 구조이고, 소비자의 눈에 보이는 건 고어텍스 라미네이트의 표층과 저층이다. 멤브레인은 그 사이에서 물과 바람을 막고(발수, 방풍), 수증기를 흘려보내는(투습) 역할을 한다. 이게 고어텍스의 자랑거리인 방수, 방풍, 투습 기능의 원리다.
물론 마법의 고어텍스만 있다고 어디서나 잘 견딜 수 있는 건 아니다. 물방울이 맺힌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옷을 입은 채 분무기로 물을 뿌렸다. 멀리서 한두번 뿌리면 잘 보이지 않아서 바로 옆에서 계속 뿌려야 겨우 물이 맺혔다. 벌칙처럼 고어텍스를 입은 채 분무기의 물줄기를 맞다 보니 폭포수를 정수리에 맞는 승려처럼 깨달았다. 일단 몸에는 정말 물이 한 방울도 들어오지 않는다. 동시에 물을 막는 게 전부가 아니다. 몸에 냉수를 계속 뿌린다면 몸에 물방울이 묻거나 몸이 젖는 것과 상관없이 물을 맞는 부분의 온도가 내려간다. 세상 모든 소재가 그렇듯 고어텍스 하나로 모든 상황이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실제 에디터가 직접 고어텍스 제품을 착용한 뒤 물을 맞으며 촬영을 진행했다.
그렇기 때문에 고어텍스를 100% 활용하려면 다른 옷도 잘 입어야 할 필요가 있다. 고어텍스를 입고 땀을 흘릴 만큼 격렬한 운동을 해야 할 때 면 내의는 적절한 소재가 아니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면은 젖었을 때 물을 머금는 소재다. 비가 오는 날의 트레일 러닝같은 걸 해야 한다면 땀을 머금지 않고 배출하는 기능성 화학섬유소재를 입은 뒤 고어텍스를 입어야 쾌적하게 운동을 즐길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산행의 명언은 고어텍스를 입을 때도 통한다. 덥기 전에 벗고 춥기 전에 입어라. 고어텍스도 마찬가지다.
화학공학의 사례에서는 비슷한 소재가 있을 수 있다. 고어텍스 역시 50여년 전에 처음 나온 소재이니 구조 자체는 이미 다 알려져 있다. 몇 겹의 기능성 소재를 포갠다. 그 사이에는 방수 투습 성능이 있는 멤브레인 소재를 넣는다. 그래서 코오롱을 비롯한 주요 업체 ,혹은 주요 아웃도어업체 역시 고어텍스와 같은 원리로 만들어진 대체 소재를 출시했거나 지금도 하고 있다. 코오롱 역시 2013년 방수 투습 기능을 강화시킨 아토텍을 출시했다. 이 외에도 이벤트, 드라이스킨 익스트림, 힐텍스 등이 고어텍스와 같은 기능을 하는 원단이다.
그러나 아류가 많을수록 원조가 빛나는 법이다. 방수 방풍 투습 원단에서 고어텍스의 지위를 가진 건 고어텍스 하나뿐이다. 트위드계에서도 좋은 트위드가 많지만 해리스 트위드만이 상징적인 지위를 가지는 것처럼. 고어텍스 역시 시장을 선도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한다. 고어텍스는 빙벽등반이나 등산같은 극한 상황을 견디는 '고어텍스 프로'에서 시작해 고어텍스 퍼포먼스, (일반)고어텍스, 고어텍스 액티브, 고어텍스 팩라이트, 윈드스토퍼 바이 고어텍스 등 의류와 용품의 쓰임새에 맞는 다양한 원단을 출시하고 있다. 각 소재는 더 두껍거나 더 잘 접히거나 더 가볍거나 더 투습성이 좋다거나 하는 등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악천후에 대비한다.
고어텍스는 꼭 필요할까? 고어텍스의 가격표를 보고 누구나 한번쯤 할 생각이다. 답은 반반이다. 특히 운동에서 체온 유지는 정말 중요하다. 체온을 유지하는 데 적합한 섬유로 된 용품을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산행을 안전하게 하고 싶다거나 비가 오는 날에도 바깥 러닝을 멈출 수 없다면 고어텍스 하나쯤 있어도 나쁠 것 없다. 동시에 일반인이 악천후에 아웃도어 활동을 굳이 할 이유가 없으니, 꼭 고어텍스를 고집할 이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도시에서 쓰기 좋은 고어텍스 윈드스토퍼 원단. 간단한 소나기를 막아주는 정도라고 했지만 실제로 물을 뿌려 봐도 상당히 쾌적했다.
그렇다면 운동과는 거리가 먼, 아웃도어 활동이 빈번하지 않은 도시생활자들에게 고어텍스는 불필요한가? 그렇지 않다. 자전거를 탔는데 가방에 고어텍스 바람막이가 들어 있다면 비가 와도 한층 안심이니까. 고어텍스 중에는 잘 접히는 팩라이트도 있으니 가방 한 켠에 접어 보관하기에 부담이 없다. 자전거를 타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기후 대변화기라 예전에 비해 예기치 않았던 소나기가 잦다. 고어텍스 팩라이트를 가방에 하나 넣어 다니며 비 올 때마다 꺼내 입으면 세찬 빗줄기에도 덜 불안하다.
옷을 고르고 입는 이유와 기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예측불가한 날씨에 맞서 쾌적하게, 쉽게 지치거나 분노하지 않는 평온한 하루를 원하는 도시생활자라면 진지하게 고어텍스 제품을 고려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정보를 찾고 정리해 페이지를 만듭니다. 2023년에는 잡지사 에디터로 일하며 각종 매체에 원고를 기고하고 있습니다.
풍경을 관찰하고 사람을 경청해 맥락을 사진에 담는 사진가입니다. 광고, 매체 등 상업 작업과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을 동시에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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