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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더운 여름이면 종종 시원한 호텔 생각이 난다. 로비로 들어가는 문만 열어도 다른 세상처럼 흘러나오는 적당한 냉기. 키를 받고 객실로 올라가 문을 열면 꿈 속의 집처럼 모든 게 정리된 공간. 천천히 물을 담아 욕조에 몸을 담그면 스트레스가 물 속으로 녹아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피로와 더위와 스트레스를 씻고 나면 호텔의 작은 하이라이트를 드디어 만난다. 호텔 수건. 갓 지은 솥밥처럼 공기층을 머금은 채 차곡차곡 접혀 있는 호텔 수건. 그 수건을 한 장 펴서 몸을 닦고 있으면 가끔 내 몸이 이렇게 귀한 건가...싶은 생각까지 든다. 잘 손질되어 정리된 호텔 수건에는 일종의 위엄같은 것이 있다.
1. 깨끗한 수건이 차곡차곡 쌓인 풍경을 보면 자연스럽게 풍요로움과 안정감이 생각난다.
2. 고급 수건의 지표는 물리적인 실 사용량이다. 사진 속 수건들의 두께를 보면 이 수건이 실을 많이 써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집집마다 있는 게 수건인데 호텔 수건은 왜 좋을까? 풍요롭기 때문이다. 풍요는 어디서 올까? 더 많은 자원에서 온다. 더 많은 자원이란 무엇일까? 호텔 수건의 경우엔 크게 세 개다. 첫째. 실이 다르다. 티셔츠처럼 수건을 만드는 실에도 20수, 30수, 40수 등의 개념이 있다. '수'란 같은 단위 면적 안에서 몇 m의 실을 뽑아내는지의 개념이다. 수가 클수록 실이 얇고 부드러워진다. 둘째. 그 실을 쓴 단위가 다르다. 같은 면적의 원단에 더 많은 실을 쓴다면 그만큼 무거워지고 풍요로워진다. 그 사실을 상징하는 수치가 이를테면 '40수 210g 호텔 수건'같은 개념이다.
마지막 디테일은 실의 후가공이다. 수건을 구경하다 보면 '코마사'라는 말이 보인다. 자연 상태의 면사를 확대해서 보면 기본적인 보풀이 있는데, 그 보풀을 빗질해 정리했다는 뜻이다. 빗질은 영어로 '코밍(Combing)'이고, 이 개념이 한국으로 오면서 빗질한 실이 코마사라는 이름으로 유통된다고 정리할 수 있다. 즉 40수 210g 코마사 수건같은 걸 선물 받았다면 신경 쓴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해도 된다.
1. 수건 중 하나를 골라 아주 크게 확대 촬영해본 사진. 실 옆으로 가늘게 뻗은 선들이 실이 원래 품고 있는 보푸라기다. 이런 걸 보면 왜 수건을 단독세탁하라고 권하는지 알 수 있다.
2. '코마사'의 예를 보여주는 표면. 실 표면에 확실히 잔털이 덜해진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수건은 호텔 수건이 아니라 일반 답례품 수건이다. 이런 것만 봐도 품질을 파악해 적당한 가격을 매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그 좋은 수건을 집에서 써도 좋을까? 장담할 수 없다는 데에 수건의 미묘한 구석이 있다. 호텔 수건과 집 수건의 진정한 차이는 얼마나 무겁고 잘 닦이고 보송보송하냐가 아니라 누가 빨고 개느냐다. 호텔 수건이 그렇게 깃털처럼 가볍고 우아하게 접혀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담당 전문 인력이 매일 좋은 수건을 열심히 관리하기 때문이다. 뒤에 소상히 설명하겠지만 수건을 관리하는 건 보통 신경과 노동이 드는 일이 아니라서 일반 가정에서 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수건 보관도 일이다. 40수 210g 호텔 수건은 잘 접었을 때 보통 수건보다 두 배는 두껍다. 제 아무리 좋은 수건이라도 매일 갈아 쓰는 깨끗한 수건보다 좋을 수는 없다. 요약하면 '호텔 수건은 그것을 감당할 여유가 있는 이들에게 최적의 물건'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간 원인치에서 다룬 여러 제품과 소재처럼 수건의 품질도 몇 가지 디테일에 따라 좌우된다. 고급스러운 느낌은 물리적인 재료 투입에 따라 달라진다. 얇은 실을 풍성하게 쓰면 고급스러운 느낌이 나니까. 아울러 전 세계의 수건 제조 기술 역시 상당히 상향평준화되었다. 미국 수건보다 일본 수건이 좋고, 해외 수건이 한국 수건보다 좋다는 식의 말을 하는 시대는 지났다.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의 온정을 더하지 않아도 한국 역시 이미 훌륭한 수건을 만들고 있다.
테리 원단의 표면에 있는 고리 모양의 올이 보이도록 촬영한 사진. 원단이 품고 있는 실의 표면적이 넓기 때문에 물기가 잘 닦인다.
수건의 원료가 되는 소재를 '테리 클로스'라 부른다. 수건이나 테리 클로스는 엄밀히 말해 니트의 일종이다. 옷가의 표면에 실로 미세한 고리를 만들어 실의 표면적을 넓힌다. 다른 옷감에 비해 테리 클로스가 물을 잘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은 바로 그 넓은 표면적에서 온다.
놀랍게도 오늘날의 테리 클로스처럼 작은 고리가 연속된 직물은 고대 이집트와 페루에서부터 쓰인 유서 깊은 기술이다. 그걸 영국의 크리스티가 19세기 중반부터 상품화해 판매했고, 크리스티는 세계 최초로 테리 타올을 상품화한 회사로 알려졌다. 크리스티는 빅토리아 여왕을 고객으로 모실 만큼 성공했지만 모두 옛날 이야기다. 지금 크리스티는 얄궃게도 식민지 시절 영국에게 면화를 공급했던 인도 자본에 인수되었다.
특유의 촉감과 물을 흡수하는 기능성 덕에 테리 클로스는 의류에도 많이 쓰인다. 대표적인 경우가 스포츠 의류 중 손목 보호대와 스포츠 헤어밴드다. 땀 흡수 능력이 중요한 물품이니 테리 소재를 찾는 게 자연스럽다. 꼭 기능성 의류가 아니라도 테리 클로스의 자리는 많다. 테리 클로스는 강아지 털처럼 북실북실한 느낌 덕에 주로 귀여운 느낌의 옷을 낼 때 많이 쓰인다. 매년 여름 상쾌한 테리 클로스 옷이 많이 출시되는 이유다.
좋은 수건을 사고 싶다면 택을 열심히 보는 게 도움이 된다. 어떤 실을 썼는지, 어디서 생산하는지 등의 여부가 택에 쓰여 있다.
소재의 세계에서는 장점이 있다면 반드시 신경 써야 할 점들이 있다. 테리 클로스도 마찬가지다. 테리 클로스를 관리할 때 가장 신기한 점은 드럼 세탁기를 주의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드럼 세탁기는 사용하는 물의 양이 적고 빨래와 빨래를 마찰시켜 때를 빼는 구조이기 때문에 드럼 세탁기에 수건이나 테리 소재를 세탁할 경우 소재 표면이 뭉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드럼 세탁기로 테리 소재를 세탁하려면 '물 많이' 옵션을 쓰는 게 안전하다. 집에서 쓸 수건이라면 모르겠지만 테리 소재 외출복이 있다면 참고할 만한 이야기다.
사실 수건 소재는 무엇을 쓰느냐보다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일단 테리 클로스느 수건은 단독세탁이 권장된다. 구조적으로 실이 많이 튀어나와 있는 섬유이므로 다른 옷과 섞였을 때 서로의 보풀을 주고받기 쉽다. 염소계, 산소계 표백제, 섬유유연제는 권장하지 않는다. 테리 소재 표면을 손상시켜 수건의 흡수력이 떨어진다. 아울러 햇빛에 말리면 뻣뻣해지기 쉬우므로 보들보들한 사용감을 원한다면 그늘에서 말리거나 건조기를 사용하면 된다. 물론 쨍쨍한 햇빛에 말려 건 미역처럼 빳빳한 수건을 쓰는 것도 개인의 취향이다.
1. 이렇게 부드럽게 늘어지는 수건의 감촉을 느끼고 싶다면 자연 건조는 피해야 한다.
2. 끝단 처리 역시 수건 브랜드마다 다르다. 아래는 일반 수건, 위는 고가 수건이다. 고가 수건이 끝단 마무리를 할 때 한번 더 스티치를 넣은 걸 볼 수 있다.
어쩌면 럭셔리는 원가가 아니라 소요 시간과 정성일지도 모른다. 테리 소재와 수건에 대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든다. 테리 클로스는 면 니트의 일종이다. 결국 소재는 면이라는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테리 클로스 티셔츠나 의류는 캐시미어나 고급 가죽처럼 값비싸지 않다. '비싸다'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최상급 호텔 수건이라 해도 평생 꿈도 못 꿀 가격은 아니다.
다만 '호텔 수건을 매일 곁에 두는 삶'은 완전히 다른 장르의 이야기가 된다. 매일 호텔급 수건을 바꾸고, 그 수건들을 누군가가 관리하고, 그 수건을 어딘가에 가지런히 보관할 만한 면적의 집을 가지는 삶을 살려면 수건 값은 문제가 아닐 정도로 값비싼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 정리해 보면 호텔 수건은 호텔에서 쓰고, 좋은 테리 클로스 티셔츠 정도로 만족하며 여름을 보내는 일도 현대 사회의 현명한 소비일 것이다.
테리 원단이 옷에 사용된 경우. 수건에 쓸 때보다 테리 원단 특유의 미세한 고리가 작다. 고리가 크면 보풀도 잘 풀리니 의류로 쓸 때는 촘촘한 원단이 더 효율적이다. 테리 특유의 여유로운 느낌은 여전하다. 원단 자체가 부드럽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원고를 작업하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테리 소재 옷들이 있다. 남성복 중에서는 1964년작 <007 골드핑거>에서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숀 코네리의 테리 반바지 점프 수트다. 제임스 본드라기보다는 웨스 앤더슨 영화에 나올 법한 옷을 숀 코네리가 입고 있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역시 남자는 귀여워야 하는 걸까 싶기도 하고. 인상적인 여성복은 매년 여름 유행하는 테리 수영복이다. 사실 테리 소재가 수영복으로 쓰이기 좋은 소재일지는 의문이다. 물에 젖으면 무거워지고, 물에 젖어 무거워지면 몸에서도 헐겁게 빠져나가기 쉬울 테고, 그러면 입는 사람들도 신경 쓰일 것 같다. 하지만 올해도 여러 귀여운 테리 수영복을 볼 수 있다. 패션의 세계는 정말 오묘한 것 같다.
정보를 찾고 정리해 페이지를 만듭니다. 에디터로 일하며 각종 매체에 원고를 기고하고 있습니다.
풍경을 관찰하고 사람을 경청해 맥락을 사진에 담는 사진가입니다. 광고, 매체 등 상업 작업과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을 동시에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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