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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름을 사랑하는 베짱이 에디터 P입니다. 이른 무더위에 고생하는 요즘입니다. 올해는 역대급 폭염이 예상된다고 하니 곧 다가올 열대야가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오지 않는 잠을 기다려야 하는 당신께 책을 추천해봅니다. ‘더워 죽겠는데 웬 책이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더위로 잠도 안 오는데 그 시간에 책을 읽으면 똑똑해지고 완전 럭키비키잖아?’라는 원영적 사고로 무더운 여름밤을 책과 함께 지혜롭게 이겨내 보는 건 어떨까요?
한여름 밤의 책과 함께 시원한 beer~ cheers~ 바랄 게 뭐 더 있을까요?
첫 번째 추천 책은 헤르만 헤세의 시로 엮은 필사집입니다. 요즘같이 도파민이 가득한 콘텐츠들이 넘쳐나는 시기에 책에 온전히 집중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이렇게 책에 집중하기 힘들 때 필자는 필사집을 활용했습니다. 쓰는 행위를 통해 자연스럽게 집중이 되고, 손글씨로 꾹꾹 단어 하나씩 적으면서 시를 음미하면 단순히 눈으로 읽는 것을 넘어서서 마음에 새기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장석주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헤세의 시들은 “시대를 넘어서서 운명에 대한 깊은 통찰로 우리 생의 감각을 쇄신”합니다. 삶에 대한 애정과 존재적 고민이 오롯이 담긴 헤르만 헤세의 시 100편을 필사하다 보면 삶에 대한 묵직한 울림과 꾸준히 나아갈 힘을 얻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유쾌하게 생의 방들을 하나씩 통과해 가야 하리라”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르게 흘러가는 분주한 시대, 이런 시대에 고요히 테이블에 앉아 헤세의 시를 필사한다는 건 시대정신을 거스르는 멋진 행위가 아닐까요? 헤세의 시에 몸을 푹 담그고 헤세의 마음과 공명하는 귀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추천하고 싶은 책은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욘 포세의 단편 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입니다. 살면서 노벨문학상 작가의 소설 한 번쯤은 읽어봐야 어디 가서 "나 책 좀 읽어!" 하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이 책은 두께가 얇아 부담도 적고요. 하지만 책이 얇다고 책이 주는 감동의 깊이가 얕을 거라 생각했다면 큰 오산입니다.
욘 포세는 노르웨이 출신의 소설가입니다. 북유럽 작가의 소설은 처음이라 호기심과 함께 책을 열었고, 읽고 난 뒤의 여운이 훨씬 큰 소설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마침표가 없는 문장과 독특한 문체에 당황할 수도 있겠지만, 읽다 보면 작가가 왜 마침표를 찍지 않았는지 자연스레 깨달으며 어느새 그의 운율에 빠져들게 되죠.
“모든 것이 지나가, 그의 때가 되면, 스러져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대단한 주인공이 등장하지도, 드라마틱한 사건이 발생하지도 않는 지극히 평범한 시골 어부의 삶을 단순하고 간결한 언어로 심오하게 풀어냈습니다. 잠깐의 점으로 왔다가 사라지는, 그러나 그 자체로 고유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을 우리의 인생을 가장 잘 표현한 소설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 번째 책은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입니다. 처음에는 소설인 줄 알고 읽었는데 읽다 보니 전기 같고, 또 과학책 같기도 하다가 다 읽고 나니 마치 철학 책을 읽은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장르를 도대체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혼란스러움도 잠시, 있는 그대로 책을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Let it be~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구요? 저자는 인간의 편의로 자연계에 그어놓은 선 때문에 그 너머 복잡성을 바라보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실을 경계하자고 말합니다. 책에는 집착에 가까울 만큼 자연계에 질서를 부여하려 했던 어느 과학자가 등장합니다. 평생을 물고기를 분류하는 데 헌신한 그의 열정에 감탄하며 삶의 흔적을 쫓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혼돈을 맞이하게 됩니다. ‘뭐?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우리는 전에도 틀렸고, 앞으로도 틀리리라는 것. 진보로 나아가는 진정한 길은 확실성이 아니라 ‘수정 가능성이 열려 있는’ 회의로 닦인다는 것.”
알고리즘이 불러온 확증편향, 그리고 양극화. 지금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질문이 바로 이 책에 담겨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네 번째 추천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입니다. 이 유명한 책을 추천해도 되나 고민했지만, 국내에 책이 발간된 것이 1988년임을 감안하면 이제 막 사회 초년생이 된 분들에겐 생소할 수도 있으니 추천해봅니다.
<노르웨이의 숲>은 무라카미 하루키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어준 작품입니다. 그의 소설들은 대체로 초현실적인 성향을 보이는데 이 작품은 드물게 현실을 배경으로 1960년대 말 고도성장기 일본을 배경으로 고독한 도시 속 청춘들의 상실과 아픔을 그려냈죠.
“자신이 어디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확신도 없었다. 다만 어디로든 가지 않을 수 없으니 한걸음 한걸음 내디딜 따름이었다.”
마흔을 넘긴 뒤 다시 읽어보니 모든 것이 어설프기만 했던 과거가 떠올랐습니다. 와타나베의 방황이 마치 자화상처럼 느껴져 씁쓸하고 아련하면서도,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밀려오는 신비한 감각. 다음 번 이 책의 페이지를 넘길 때 필자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요.
지금까지는 이 책을 추천하기 위한 빌드업이었습니다. 끝판왕은 모든 퀘스트를 통과한 뒤 만나게 되는 법이니까요. 이 책은 ‘벽돌책’이라고 불릴 만큼 600페이지가 넘는 두께를 자랑합니다. 총 4부 20개 챕터로 촘촘히 나뉘어 있어 하루에 한 챕터씩만 꾸준히 읽는다면 생각보다 쉽게 정복할 수 있으니 지레 겁먹지는 마시길.
그는 인류가 지금까지 이룩해온 혁명들을 하나씩 짚어 업적 뒤에 숨겨진 그림자에 대해 통찰합니다. 나아가 유발 하라리는 오늘날 인류가 그 그림자를 외면하고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한다는 대담한 주장을 펼치기도 하는데요, 날카로운 분석들이 펼쳐질 때마다 우리가 지금껏 진리라고 믿어온 많은 것들이 뒤집히고 혼란스럽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 혼란이 이내 형용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로 변한다는 것이 이 책의 진짜 매력이라고 할 수 있죠.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 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인류의 역사가 시작한 이래 가장 풍요로운 오늘을 살고 있지만 이 길의 끝엔 과연 무엇이 남게 될까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몰입감을 선사하는 유발 하라리의 문장들과 함께 장대한 질문의 여정을 떠나보시길.
자극적이고 짧은 콘텐츠의 범람으로 집중력을 도둑맞는 시대. 쉽게 잠들기 어려운 무더운 여름 밤, 책과 함께 사고의 근육을 키워보는 건 어떨까요? 어쩌면 삶을 지탱해줄 근사한 여름 밤을 맞이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눈부신 여름날을 사랑하는 베짱이 에디터. 술을 마시면 발라드를 부르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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