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KOLONMALL. ALL RIGHT RESERVED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수민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반려견 수리가 마중을 나왔다. 밝은 목소리와 웃는 얼굴로 환대해준 덕분에 긴장감은 0.1초 만에 사라지고 금세 편안함을 느꼈다. 따뜻하고 아늑하면서도 다채로운 색감의 물건이 가득 찬 수민의 공간. 독특한 오브제들이 곳곳에 숨어 있어 마치 숨바꼭질하듯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가장 먼저 시선을 끈 핑크색 이불과 노란 테이블, 초록 의자까지, 어느 것 하나 수민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와, 집이 아늑하고 따뜻하네요. 만나서 반가워요.
안녕하세요! 저는 스트리트 포토그래퍼이자 프리랜서 마케터, 그리고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임수민입니다.
특별히 스트리트 포토그래퍼가 된 이유가 있나요?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는 말 그대로 길에서 사진을 찍는 장르인데, 제가 사진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직관적으로 사진을 찍을 게 많은 길거리로 향했던 것 같아요.
현재 100명 초상 사진 촬영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요. 이번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프리랜서로 마케팅을 하다 보니 어떤 대상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매너리즘을 느꼈어요. 그래서 있는 그대로 의미 있고, 꾸밈이나 설명이 필요 없는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100명의 사진을 담았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충격적이고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주로 찍는 대상은 누구인가요?
제 지인이나 이웃을 촬영하고 있어요. 세상에 이미 알려진 사람들 말고도,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 모두 소중하고 특별한 이야기를 지니고 있잖아요. 그들이 가진 스토리에 대해 나누고 싶어요. 벌써 60명 정도 찍었고, 이제 40명 남았네요(웃음).
사진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의 시선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사진을 찍을 때 추구하는 원칙이 있나요?
찍는 대상의 ‘지금'을 담으려고 노력해요. 그 사람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나중에 먼 훗날, 이 사진을 봤을 때 지금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정보를 담고 있죠. 그래서 어떤 의도가 담긴 사진을 찍기보다 상황에 가장 솔직해지려고 해요. 내가 원하는 대로 대상과 상황을 꾸민다면 나중에 그 사진을 봤을 때 본인은 만족할 수가 없을 테니까요. 어떤 대상을 제 작업을 위한 수단으로 대하는 것을 지양해요.
그래서인지 수민의 사진을 보면 한 사람의 ‘스토리’가 보이는 듯 해요. 포토그래퍼로서 직업적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예요?
예전에는 제가 찍은 사진을 보고 무언가를 깨닫거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보면 보람을 느꼈어요. 지금은 제가 찍은 초상 사진을 본인이 직접 보고 ‘내가 이렇게 멋지게 살고 있다니!’하고 웃고 있는 사람을 볼 때 보람을 느껴요(웃음).
이번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기대돼요. 전시가 열리면 꼭 보러 갈게요(웃음). 이제 작업실 이야기를 해볼게요. 이 방이 작업실이죠?
이 공간은 필름이 가득한 보물창고와 바쁘게 일하는 오피스의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어요.
머리맡에는 제가 직접 자재를 모아 제작한 긴 선반이 있는데, 그 위에 필름들이 카메라와 함께 차곡차곡 쌓여 있어요. 전 제품을 사는 것보다 제가 원하는 물건의 길이나 넓이 등을 재서 직접 만드는 것을 좋아해요. 시중에 있는 것을 구매하면 너무 편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한 2000% 부족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반면에 내가 원하는 모양과 크기와 색을 골라서 만들면 오래도록 질리지 않고, 애정을 가지고 사용할 수 있어요. 제가 지금, 이 원고를 쓰고 있는 책상도 길에서 주워 온 책상의 다리만 남기고, 위에는 나무를 사서 남편과 함께 만들었거든요. 이렇게 길고 넓은 책상은 시중에서 쉽게 구매하기 어려울 거예요! 덕분에 제가 좋아하는 다양한 소품을 여기저기 펼쳐놓을 수 있죠(웃음)!
직접 만든 거라니, 정말 감쪽같은데요? 대부분의 작업은 여기서 하는 거예요?
프리랜서다 보니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요. 침실에서 일하는 시간도 어쩔 수 없이 생기는 편이에요. 침실의 유혹을 견디기가 어렵거든요(웃음). 그래서 침실도 작업실처럼 꾸미는 것을 좋아해요. 꼭 책상을 놓는다는 것은 아니고, 침대가 제 오피스가 되는 거예요. 책상에서 일할 때 잘 풀리지 않으면 몸과 마음을 유연하게 하기 위해 침실로 가요.
침대의 유혹은 너무 강렬하죠. 이불과 베개 커버도 색감이 톡톡 튀네요!
특별히 침실 오피스는 ‘침구’를 신중하게 고르는 편이에요. ‘침구로 쓰기에 조금 너무 화려한 것이 아닌가?’ 싶어도 한 번 도전해 보는 편이고요. 생각보다 침대가 차지하는 면적이 넓다 보니 침구 하나로도 분위기가 확 화사해지거든요. 그리고 조금 밝은 침구로 방의 분위기를 전체적으로 업시켜주는 것을 좋아해요.
물건을 살 때 기준이 있나요?
집 안에 두는 물건을 고를 때 형태와 색감, 실용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우리 집에 어울리는 색인지, 모양이 평범하고 기성 제품 같지는 않은지를 고려하고요. 전 꿈틀꿈틀한 모양을 지니거나, 손으로 직접 만든 듯한 물건을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예쁜 쓰레기는 아닐지’ 고민해봐요. 좁은 집 안에서 아름다움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실용성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간이 다양한 색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어요. 색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 보이는데요?
네 맞아요! 가끔 지하철에 타서 주변을 돌아보면 저 말고는 모두가 검은색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면 너무 신기해요! ‘다들 왜 검은색 옷만 입을까?’, ‘무엇이 두려울까?’ 싶어요. 집에서만큼은 그런 두려움에서 벗어나도 괜찮지 않을까요? 타월도 알록달록한 색, 주방도 컬러풀하게! 집 안의 물건들이 색색이 화려하면 그만큼 기분이 상쾌해져요!
또, 완전히 새로운 제품보다는 사용감이 있더라도 ‘특별한 물건’을 고르는 걸 좋아해요. 특히 화병 같은 경우는 옛날의 모양이나 색감이 훨씬 아름답게 느껴지거든요. 날씨가 좋아지면 꽃시장도 한 달에 두 번 정도 가려고 해요. 나를 위한 선물을 주듯이 꽃병에 꽃을 가득 채우면 집이 화사해지거든요. 그리고 물건에 사연이 있는 것을 좋아해요!
사연 있는 물건이라, 어떤 게 있나요?
예를 들면, 좋아하는 미국 드라마 ‘프렌즈’에서 조이라는 캐릭터가 들고나온 스마일 컵, 친구가 오래된 집을 작업실로 개조한다고 해서 페인트칠 도와주러 갔다가 발견한 빨간색 시계, 어렸을 때 엄마가 쓰던 유럽식 배 (pear) 모양 요리용 타이머, 강아지 모양 식물 분무기, 카페에서 앉아보고 너무 편해서 바로 구매한 초록 빈티지 휠 의자까지. 이렇게 사물에 사연이 있으면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을 때 물건을 집을 때마다 설명할 거리가 많아진답니다!
어느덧 마지막 질문을 향해 가는데요. 여러 인터뷰나 강연을 볼 때면 얽매이는 것 없이 자유로운 사람 같아요. 추진력도 강하고요. 수민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은 뭐예요?
전 생각보다 자유를 추구하지는 않아요. 자유는 조금 외롭고 무서운 것 같아요. 대신 행복을 추구해요. 행복하기 위한 노력이 작은 자유를 누리는 것이기도 하겠죠?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그대로 버티려고 하지 않고 문제를 바로 해결하려고 해요. 하루 중에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면 왜 그런지 생각해보고 지금 바로 고칠 수 있는 일인지 아니면 퇴사나, 이직, 이사 등의 큰 선택을 해야 하는 문제인지 계속 들여다봐요.
저는 지금 즐겁고 행복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 하는 일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길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불행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런데 미래의 나를 위해 선택한 것들이 지금의 나를 불행하게 한다면, 생각보다 미래에 기대하는 행복이 이 모든 것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일지도 몰라요. 저는 언제나 저 자신에게 최선의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요.
<OLO MAGAZINE> ‘오피니언’ 코너는 ‘오늘날 잘 입는다는 것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시작됐어요. 오늘날 잘 입는다는 건 뭘까요?
나의 내면을 밖으로 꺼내는 작업과도 비슷해요. 나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솔직하게 들여다보고, 그것을 유지하고, 더 뿜어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요?
스트리트 포토그래퍼이자 프리랜서 마케터,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현재 ‘100명 초상 사진 촬영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첫번째 댓글을 달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