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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와 테니스 중 하나라도 제대로 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손현을 만났다. 그의 인스타그램은 딸 송이와 함께하는 순간들로 가득하다. 아빠가 육아를 분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여전히 당연하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기에 그의 소소한 일상이 더 눈에 띄었을지도 모른다.
『썬데이 파더스 클럽』 속에 담겨 있는 그의 육아 일기를 들여다보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아이와 함께 조금씩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빠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 손현에게 육아를 통해 얻은 것이 무엇인지 물었고, 그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고 넓어졌다고 답했다.
#조금씩 천천히 배워가는 것,
육아
아빠들의 육아 성장기를 담은 『썬데이 파더스 클럽』이 출간되었을 때 화제가 됐어요. 육아 일기를 써야겠다고 다짐한 계기는 뭐예요?
아이가 태어나 두세 살이 될 때까지의 일상은 굉장히 다이내믹해요. 아이가 성장하는 속도가 꽤 빠르거든요. 신체적으로, 정서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관찰하며 기록해 두고 싶었어요. 기록하지 않으면 다 잊어버리겠더라고요. 물론 사진으로 남길 수도 있지만 단편적인 장면보다는 구체적으로 담고 싶었어요. 그리고 육아를 하면서, 아이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부모가 24시간 최선을 다해 돌봐야 한다는 걸 몸소 깨달았거든요. 아내와 제가 아이 때문에 밤을 새우며 고생했던 모든 과정도 남겨두고 싶었어요. 아이가 자라서 본인의 어린 시절을 궁금해할 때 이 육아일기가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았고요.
『썬데이 파더스 클럽』은 다섯 명의 아빠가 돌아가며 쓴 육아 일기 뉴스레터를 엮어 만든 책이죠. 이 책을 세상에 내보이기로 했을 때 특별히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던 걸까요?
이미 나와 있는 양육서들을 보면, ‘아이는 이렇게 커야 한다’라는 정형화된 메시지가 많이 담겨 있는데요. 저는 아이를 느슨하게 키우는 아빠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요즘 사람들은 각자도생의 길을 걷잖아요.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하고, 반대로 누군가 내 삶에 침범하는 걸 불편해하며 선을 긋기도 하고요. 하지만 육아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누군가에게 폐를 끼칠 수밖에 없어요. 아이는 부모 뜻대로 통제되지 않거든요.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할 수도 있고, 식당에서 물을 엎지를 수도 있어요. 그럴 때 부모가 죄송하다고 말하고 이웃은 괜찮다고 답하며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으려 했어요.
현님처럼 육아에 적극적인 분도 있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에 막연한 불안을 느끼는 분들도 있어요. 현님은 아이를 꼭 낳아야 한다는 입장인가요?
'아이를 낳아야 한다, 안 낳아도 된다'라고 말하기는 조심스러워요. 다만, 부모는 아이를 낳기 전에 경제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독립적인 존재로서 스스로 바로 서 있는 게 중요해요. 아이가 태어나면 삶의 균형이 많이 깨지는데 그때 부부가 조율하며 균형을 찾아가야 하거든요. 서로가 독립적이지 않을 경우 그 과정이 쉽지 않아요. 그럴 땐 아이를 원하더라도 조금 더 준비를 한 다음에 가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청년세대의 결혼, 육아 등에 대한 고민에는 사회구조적인 부분도 있지만 스스로 느끼는 ‘불안’도 있을 거예요. 불안의 원인을 잘 들여다보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다음 준비해도 된다고 봐요. 부모가 건강해야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어요.
말씀하신 것의 연장선에서 ‘아빠의 육아’에 대한 시선이 달라지기 위해서는 사회구조적으로 변화되어야 하는 부분도 있다고 보는데요. 직접 육아를 하고 있는 입장에서 어떤 부분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금 급진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저는 아빠의 육아 휴직이 강제로 시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빠의 역할이 아이에게 너무 중요하거든요. 만약 아빠만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면, 생계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정부와 기업이 일부를 보조하거나 단 한 달만 휴직하더라도요. 또 아빠가 혼자 아이를 돌볼 수 있어야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을 때 돌볼 수 있고, 그래야 엄마의 삶도 조금 편해져요. 물론 아빠의 육아 스킬이 부족해서 아내에게 핀잔을 듣기도 해요. 엄마가 아이를 맡기는 걸 미덥지 않아 할 때도 있고요. 그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아빠들이 육아에 대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도록 육아 휴직을 의무화하고 풀타임으로 아이를 돌보는 경험을 갖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육아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고 육아 스킬도 늘면서 아빠도 충분히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thsgus 인스타그램 캡처.
아내인 양수현 대표님이 ‘레디투킥'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잖아요. 현님의 육아 부담이 레디투킥 사업 성장에 도움이 되었다고 느끼시나요?
제가 육아휴직을 시작한 동시에 아내가 '레디투킥'이란 브랜드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사업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잖아요? 한 번은 아내가 심리 상담을 받았는데 의사가 소견서에 이렇게 적었더군요. "사업을 하면서 양육 이상의 가치가 성과로 돌아오길 기대하며 부담을 크게 느끼고 있으니, 배우자가 이런 심리를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란 내용이었죠. 그 뒤로 아내가 사업과 육아를 분리해 접근할 수 있도록, 두 가지 모두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을 덜어내도록 응원하고 있어요. 현실에 그런 슈퍼우먼은 존재하지 않고, 있어서도 안되니까요. 아내의 사업이 바쁜 시즌이면 제가 주로 육아를 분담하고 있고, 반대로 저 역시 급한 마감이 있으면 아내에게 육아 교대를 부탁하기도 해요.
육아에 아직 서툴지만, 잘하고 싶은 아빠에게 도움이 될 육아 꿀팁이 있을까요?
엄마는 열 달 동안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기 때문에 아이와의 유대가 굉장히 끈끈해요. 그런데 아빠들은 달라요. 계속 직장을 다니다가 아이가 태어나면 잠깐 보고, 아내가 조리원에 있는 동안에도 보통 출퇴근을 하거든요. 그러니 처음부터 완벽하게 잘하려고 하지 말고, 스스로 육아에 미숙하다는 걸 받아들이고 열린 마음으로 육아 스킬을 배웠으면 좋겠어요. 육아를 하는 다른 아빠들과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도 도움이 돼요. 썬데이 파더스 클럽이 있어 좋았던 게 육아를 하다가 모르는 게 생기는데, 아내한테 물어보기 민망할 정도로 사소한 것들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젖병을 소독하는 방법 같은 거요. 그런 걸 아빠들에게 물어보면 굉장히 친절하게 알려줘요(웃음). 육아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공유할 수도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좋겠어요.
#세계의 중심이
'나'에서 '아이'에게로
어느덧 육아 4년 차이죠. 아이가 태어나기 전과 후 삶의 가장 큰 변화는 뭐예요?
세계의 중심이 ‘나’에서 ‘아이’에게로 옮겨 가면서 두 가지가 가장 크게 변했어요. 첫번째는 끊임없이 스스로 타협하게 돼요. 지금 말하는 타협은 우선순위가 재조정되는 걸 말해요. 예를 들어, 회사 업무를 봐야 하는데 아이가 아픈 경우에 회사 업무를 조정하는 방향으로 진행하게 되는 거죠. 개인 약속이 있더라도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취소하고 아이를 돌보러 가고요. 예전 같았으면 아내에게 아이를 부탁하고 제 일을 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내의 시간을 보장해 주는 쪽으로 많이 바뀌었어요. 두 번째는 ‘부양의 의무’가 생긴 거예요. 이건 정말 큰 변화예요. 단순히 나의 행복을 좇으며 살기보다 가족적인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고, 어떻게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돈을 벌고, 시간을 써야 할지 고민하게 됐어요.
이 책은 아빠들의 ‘육아 성장기’를 담았죠. 현님은 육아를 하면서 스스로 성장했다고 느끼나요?
성장보다는 ‘성숙’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은데요.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면 모든 게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받아들이게 돼요. 불확실성이나 갑작스러운 변화에 있어서 유연하게 대응하게 됐죠. 웬만한 일에 크게 화를 안 내게 됐고요. 무엇보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걸 떠올릴 때마다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폭이 넓어지는 걸 느껴요. 그리고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나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이런 부분에서 성숙해지고 있다는 걸 느끼죠.
아이를 낳고 나면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고 들었어요. 현님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일을 엄청 좋아하고, 인정 욕구가 크고,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동료들이 유독 많았던 직장에 있었거든요. 동료들을 보면서 ‘이 사람은 어떤 계기로 이렇게 됐을까?’ ‘그의 유년 시절은 어땠을까?’ ‘어떤 결핍이 있을까?’라고 질문하며 사람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하게 됐어요. 예전에는 보이는 면만 보고 함부로 판단할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부모님을 이해하는 폭도 넓어졌어요. 어렸을 때 부모님도 나를 키우면서 고생을 많이 했겠구나 싶고요. 반대로, 가끔 아이가 떼를 쓰고 자기 고집을 부릴 때가 있는데 그럴 땐 저도 화가 나요. 그런데 문득, ‘나도 어렸을 때 이랬겠구나’하면서 아이를 이해하게 돼요(웃음).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 생겨요. 반대로 그보다 더 큰 것을 얻기도 할 거고요. 현님이 포기한 것과 얻은 것은 뭐예요?
포기한 것 중에 가장 큰 건 ‘시간’이에요. 시간을 제 마음대로 쓸 수 없거든요. 아이가 잠을 잘 때도 저를 찾고, 새벽에 깨서 또 찾고요(웃음). 그래서 글을 쓸 때도 호흡을 길게 가져가기가 힘들고 시간을 쪼개서 써야 해요. 그로 인해 커리어에 대한 야망도 많이 바뀌었어요. 모든 일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제게 맡겨진 일들을 안정적으로 '해내자'는 방향으로요. 여전히 일을 잘하고 싶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아이가 있는 상황에서는 일에만 몰두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느 정도 타협을 하게 됐어요. 반대로, 얻은 게 있다면 삶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진 덕에 여러 상황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거예요. 아이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콘텐츠 소스가 무궁무진하게 계속 발견되는 느낌이랄까요(웃음).
맞아요. 아이들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배우는 것도 많아요. 예를 들어 세상을 편견 없이 바라본다든지요. 현님은 송이를 키우며 배운 것이 있어요?
송이 덕분에 호기심을 갖는 태도를 배웠어요. 40대가 되니 ‘꼰대가 되는 과정’을 알겠더라고요(웃음). 예를 들어, 아이와 놀 때 위험해 보이는 게 있으면 “안 돼, 위험해.”라는 말을 많이 쓰게 되거든요. 어른이니까 어떤 행동이 위험하다는 걸 이미 경험해 봐서 아는 거죠. 예를 들어 씽씽이를 타거나 자전거를 탈 땐 넘어질 수도 있는 건데 과잉보호를 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아이에겐 그것조차 새로운 경험일 수 있거든요. 아이가 놀다가 넘어져 보면 아픈 걸 알게 되니 앞으로 조심하게 될 거고요. 너무 위험하지만 않다면 직접 부딪혀보고 극복해나가는 과정도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아이가 무언가를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때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지지고 볶더라도, 뭉쳐야 산다
딸과 부산 한달살이를 할 때, ‘자유는 무엇인가,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잖아요. 지금은 그 답을 찾았나요?
찾았어요(웃음). 그때가 바로 아내가 ‘레디투킥’ 사업을 시작했을 때인데, 아내와 트러블이 많은 시기였어요. 아내가 굉장히 바빠 야근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저는 육아휴직 중이었음에도 육아를 도맡다시피 하니 점점 힘들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아내에게 제안했어요. 본인의 일에 충분히 집중하라고. 대신 저는 환기도 할 겸, 서울의 아파트 단지에서 하는 육아에서 벗어나 부산에서 아이와 함께 살아보겠다고요. 그땐 제 나름의 환상이 있었어요. 아이가 잠들면 혼자 맥주를 마시며 넷플릭스를 보는 환상이요(웃음). 그런데 현실은 완전히 달랐어요.
어떤 점이요?
아이가 너무 어릴 때라 잠을 잘 깨서 불을 켤 수도 없고, 외식하면 장염도 쉽게 걸리다 보니 제약이 많았어요. 자유를 얻으려다 오히려 저를 극한 상황에 몰아넣게 된 거예요. 그때 아이를 위해 요리를 하며 요리 실력도 늘었고, 모래사장에서 놀면서 아이와의 관계가 더 단단해지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때 가족에 대해 깨달은 게 있어요. '나는 온전히 혼자서는 아이를 잘 키울 수 없다'는 거예요. 결국엔 주말마다 아내가 부산으로 내려왔어요. 아내랑 송이와 함께 맛있는 것도 먹고 다른 곳으로 여행하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그때 가족은 지지고 볶더라도 뭉쳐야 힘이 된다는 걸 느꼈죠. 아내도 떨어져 있는 동안 아이가 보고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시간을 통해 아내와의 관계도 다시 좋아졌어요.
자유에 대해서도 말해주세요(웃음).
제가 모터사이클을 타고 유럽 여행을 했던 때가 있었는데요. 그땐 싱글이었고, 지도를 딱 펼쳐서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되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무한정 주어진 자유 앞에서 오히려 자유롭다는 걸 못 느꼈어요. 어디를 가야 할지 막막하고, 외롭고. 전혀 행복하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동선을 친구들이 있는 도시 위주로 짜서 다녔어요. 사람이 그리우니까. 요즘은 (가끔 그때가 그리울 때도 있지만) 제한이 많잖아요. 어떻게 보면 ‘아이’에게 모든 것이 맞춰진, 아이에게 구속된 삶인 거예요. 그런데 구속 안에서 맛보는 자유가 훨씬 달콤하다고 느껴요. 아이가 낮잠을 자는 1시간 남짓한 시간에 마시는 커피 한잔이 꿀맛이거든요. 그때 ‘아, 이게 진짜 자유구나’라는 걸 느껴요. 자유라는 건 광활한 곳에 개인을 던지는 게 아니라, 연결고리가 있는 나의 사람들 속에서 누리는 게 진짜인 것 같아요.
문득 현님이 쓴, “내 시간을 어떻게든 확보하고 주도권을 상황에 뺏기지 말아야 한다는 집착을 내려놓으면서 새로운 해방감과 몰입도를 느끼고 있다.”는 구절이 생각나요.
살다 보니 일터에서든 내 인생 전반에 걸쳐서든 삶을 원하는 대로 통제한다는 건 환상이더라고요. 어느 순간엔 양보하는 것도 중요해요. 소위 말하는 기브앤테이크 있잖아요. 이번에는 내가 주도권을 내려놓을 테니 다음에는 나에게 주도권을 줘!라는 식으로 할 수도 있겠죠. 저는 제 주도권을 다 내려놓고 누군가를 도와야 하는 순간엔 타인을 돕는 데 집중해요.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나에게 다시 주도권이 넘어오는 때가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럼 그때 제가 해야 할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이건 육아를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부분인 것 같아요.
#따로 또 함께, 조화를 이루는 삶
“나만의 해피 아워를 늘리기보다 송이와의 해피 아워를 늘려가야겠다”라고 다짐했었죠. 최근에 가진 송이와의 해피 아워는 언제예요?
얼마 전 북촌으로 이사를 오면서 저녁 7시 이후부터는 제가 육아를 담당하거든요. 최근엔 송이를 씽씽이에 태우고 근처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놀러 갔어요. 송이는 미술관 근처 서점에서 그림책 보는 걸 좋아해서 같이 가기도 하고, 전시가 있으면 보여 주기도 하고요. 그리고 가끔은 주말에 썬데이 파더스 클럽 아빠들이랑 모여서 근교 나들이를 가요. 최근엔 청평에 있는 잣향기푸른숲에 다녀왔어요. 딸과 함께하는 산책이 너무 좋더라고요. 저도 행복하고, 아이도 함께 행복해하니 너무 좋았어요.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할 것 같은데요(웃음). 쉴 땐 주로 뭘 하나요?
전 테니스 모임을 주기적으로 가요. 새벽 6시부터 8시 또는 9시까지 치고 아이가 깨기 전에 들어오려고 해요. 음악을 듣는 것도 중학생 때부터 즐기던 취미였는데 요즘엔 자주 즐기진 못해요. 테니스든 음악을 듣는 것이든 시간을 확보해야 하거든요. 짧게 주어지는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선택해야 하는데, ‘테니스'가 먼저인 거예요. 음악 감상 시간도 조금씩 늘려가고 있어요. 최근엔 지인들과 함께 청음회도 했어요(웃음).
걷지도 못했던 아이가 어느새 두 발로 걷고, 씽씽이를 타는 걸 보면 감회가 새로울 것 같은데요. 최근에 아이가 ‘성장했구나'라는 걸 체감한 적이 있어요?
요즘은 말이 많이 느는 시기인데, 나름의 논리를 펼쳐서 생각을 말할 때 정말 깜짝 놀라요.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에요. 어린이집 갈 때 인형을 하나 가지고 가는데, 어린이집에 아이의 개인 장난감을 들고 갈 수는 없어서 가방에 넣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부모 입장에서는 들고 다니다 잃어버릴 수 있으니 가져가지 말라고 하는데 송이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아빠 나를 집에 혼자 둔 적이 있어, 없어?”라고요. 그래서 “거의 없지.”라고 답했어요. 그랬더니 송이가 “송이는 곰돌이 엄마잖아. 그럼 곰돌이를 집에 혼자 두면 돼, 안 돼?”라고 묻더라고요. “안 되지.”라고 답하니까, “그럼 오늘 내가 곰돌이를 데려가야지 어린이집 갈 때!”라고 하는 거예요. 그땐 정말 할 말이 없어서 데려가라고 했어요(웃음). 그럴 때 보면 아이가 자기가 원하는 바가 있을 때,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컸구나 싶어요.
송이가 어떤 아이로 자라길 바라나요?
저는 아이에게 무언가를 바라지 않으려고 해요.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라기보다는, 바라는 모습대로 부모가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아이가 영어를 잘하기를 바란다면, 부모가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면 되는 거죠. 부모가 아이에게 바라는 바를 몸소 잘 살아내는 게, 최고의 육아라고 생각해요.
송이에게 어떤 아빠로 곁에 있어주고 싶어요?
코치와 선수의 관계가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세상이 돌아가는 데에는 규칙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너에게 가능성이 무한히 열려 있다.’ 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테니스도 라인 밖으로 공이 나가면 아웃인 것처럼 세상을 살면서 지켜야 할 규칙들에 대해서는 알려주고 싶어요. 또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는 사람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잘 안내해주고 싶고요. 저는 자립심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자존감이 높은 것도요. 그런데 높은 자존감은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 가진 거더라고요. 제가 그런 사랑을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꿈꾸는 가정의 모습이 있어요?
저와 아내, 그리고 아이가 독립된 세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 각자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잘 꾸릴 수 있길 바래요. 그러면 세 명이 유기적으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아내는 아내대로 사업을 잘하고, 저는 저 대로 글을 쓰고 운동을 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잘 자라다 보면 그때그때 균형점은 달라지더라도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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