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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식 없는 취향 수집가, 김정현을 만났다. 8년간 약 1,700개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작성한 정현은 좋아하는 것이 많은 만큼 삶이 지루할 틈이 없다. 새로운 것들에 쉽게 감탄하고 감동하며 자기만의 취향의 궤적을 그려가는 정현을 보면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나다움이라는 단어로 스스로를 섣불리 규정하기보다, ‘하나라도 더 보고, 한 곳이라도 더 가고, 한 번이라도 더 감탄하는 편을 택했다’는 정현. 그의 아지트 다섯 곳을 추천 받았고, 을지로의 커피사(coffesa)에서 만나 그에게 궁금했던 것들을 물었다.
#편식 없는 취향 수집가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소개 부탁해요.
안녕하세요. 프리랜스 에디터로 활동 중인 김정현입니다. 디지털 미디어, '디에디트(THE EDIT)'와 뮤직 앤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 ‘BGM’의 객원 에디터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주로 동시대의 재밌는 장소, 사람 콘텐츠, 물건 들을 소개하는 글을 기고하고요. 작년 9월, ‘나다운 게 뭔데’라는 첫 책이 나와 작가로도 발걸음을 뗐습니다.
저도 정말 재밌게 읽었는데요. 에디터라는 직업에 대한 동경심으로 이 일을 시작했다고요. 에디터는 ‘새로운 것과 트렌디함’을 필연적으로 따라야 하는 업이에요. 원래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편인가요?
기본적으로 호기심도 많고, 호들갑도 많이 떠는 편이에요. 호들갑을 많이 떤다는 건 무엇인가 좋아하는 걸 발견하면 덤덤하게 넘어가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한다는 거예요.
기질과 잘 맞는 업을 찾은 거네요.
그렇죠. 대학 졸업을 준비하며‘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 하잖아요. 에디터라는 직업이 제 성격과 잘 맞을 것 같았어요. 물론 직접 일을 해보니 타고난 기질 이외에도 갖추어야 할 것들이 많지만요(웃음).
어떤 역량이 더 필요하던가요?
에디터는 동시대적인 것, 다양한 것을 접하고 자기 관점으로 선별해서 사람들에게 소개해야 하는데 그런 일들은 생각했던 것과 비슷했어요. 반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취재하고, 전문성 있는 글을 쓰고, 단순히 글 이상의 무엇인가로 이야기를 풀어내야 하는 일이라 부단한 노력이 필요했죠.
(사진 : 김해서 에디터)
글을 보면 장면 묘사나 설명이 섬세하고 내용도 구체적이에요.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훈련을 한 건가요?
기록 자체는 정제되지 않은 형태로도 꾸준히 해왔어요. 그런데 에디터로서 기사를 쓸 때는 추상적인 감상으로만 그치면 안 되잖아요. 제가 느낀 ‘감상’과 ‘정보’를 더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쓰려고 노력해요. 요즘엔 ‘어떻게 하면 제 주관이나, 캐릭터를 드러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직접 느낀 걸 솔직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하고 글을 쓰고요.
본인을 솔직하게 드러내려는 노력 때문인지 글을 읽을 때 정현의 색깔이 느껴지더라고요.
현재 글을 기고 하는 디에디트(THE EDIT)가 필자의 색을 드러내길 원하는 매체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쓸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톤의 글을 원하지 않는 매체도 있잖아요. 그럴 땐 최대한 원하는 톤앤매너를 맞추려고 해요. 다만, 앞으로 지향하는 바가 제가 좋아하는 글을 쓰고, 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보니 어떻게 하면 제 캐릭터가 이야기에 스며들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죠.
글을 쓰는 데 있어 자유가 주어지는 게 긍정적인 역할을 한 거네요.
그렇죠. 그런데 그런 방식이 누군가한테는 안 맞을 수도 있어요. 글 쓰는 사람마다 선호하는 방식이 다르니까요. 어떤 에디터는 보고 들은 것에 대한 사실을 정확하고 명료하게 옮기길 선호하는데, 유머러스하게 쓰거나 자기 생각을 담아 더 솔직하게 쓰라고 하면 오히려 힘들 수도 있거든요. 각자 특성에 맞는 게 있다고 봐요.
그리고 제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보충하는 것도 필요해요. 그런데 제가 앞으로 에디터로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모든 걸 다 갖춘 에디터로 성장하기보다, 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정현은 '좋고 싫고’가 명확하고, 그에 대한 이유도 확실한 편이에요. 그런데 무엇인가를 ‘좋아한다’고 공표하는 건 비교적 쉬운데, ‘싫다’라고 이야기할 때는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타인의 평가나 시선에 대해 자유로운 편인 것 같은데, 어떤가요?
저도 무엇인가를 ‘싫다’라고 얘기할 때는 조심스러워요. 싫은 것에 대해 말할 때 고민이 없어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글을 쓸 때 제 가치관에 위배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생각하고 글로 표현하려고 해요. 싫어하는 것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싫다’라고 말하는 게 무엇인가를 혐오하는 게 아닌 거죠. 그래서 대부분 개인적인 ‘불호’에 관련된 것에 대해서 얘기해요.
예를 들어, ‘인테리어는 멋진데 음악 선곡이 엉망인 카페가 싫다’고 말하는 데 누구를 비하하려는 목적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또는, ‘누군가를 쉽게 무안 주고, 민망하게 하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표현하는 것도 충분히 전할 수 있는 얘기고요. ‘싫다’고 표현하는 게 누군가를 혐오하거나 차별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라면 충분히 고민한 뒤 솔직하고 자유롭게 얘기하려고 해요. 좋아하는 걸 칭송하는 글만 가득하면 좀 지루하기도 하잖아요(웃음).
* 출처 : @kimjeonghyeon_
#두려움보다 큰 기쁨
주로 인스타그램을 통해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어요. 게시물은 얼마나 자주 올리나요?
무조건 2, 3일에 하나씩 올리려고 해요.
평소 다양한 장소, 사람, 문화를 경험하며 지내잖아요. 그 부지런함에 감탄했어요. 정현을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은 뭔가요?
세 가지가 떠올라요. 첫 번째는 기본적으로 제 성향이 유난스럽게 쉽게 감탄하는 편이에요. ‘덜 무덤덤’한 편이죠. 웃음도 엄청 많고, 잘 울고요. 그만큼 인상에 남는 것들이 많은데, 그것들이 제 안에 소스로 남는 거겠죠. 두 번째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누고 싶어 하는 성향이라는 거예요. 혼자만 알고 있는 건 직성이 안 풀려요. 귀여운 걸 발견하면, ‘아, 이거 너무 귀여워, 다른 사람들도 이것 좀 봤으면 좋겠어.’ 하며 나누고 싶어요. 세 번째는 인정 욕구도 강하고 관종이어서, ‘나 이런 것도 봤다. 이런 생각을 했다!’라는 걸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싶은 것도 있어요. 이런 제 성향이 동력인 것 같아요(웃음).
현재 인스타그램에 약 1,700개의 게시물이 있어요. 지난 8년간의 성실함의 결과물이죠?
오래하기도 했지만 정말 자주 올렸어요. 예전에는 게시물 수가 팔로워 수보다 훨씬 많았어요. 마치 수요 없는 공급처럼요. 그런데 그게 참 없어 보이잖아요. 좀 있어 보이는 건, 팔로우는 엄청 많은데 팔로잉이나 게시물은 많이 없는 그런 거잖아요(웃음). 그런데도 열심히 하는 스스로를 보면서,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욕구가 큰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주구장창 해보자!’하고는 열심히 올렸죠. 꾸준히 하다 보니 제가 쓴 글을 봐주는 분들이 늘어났고, 지금은 게시물 수보다 팔로워 수가 많아요. 결국 역전한 거죠(웃음).
(사진 : 정찬웅 포토그래퍼)
독특한 장소도 많이 알고, 가야 할 곳이나 꼭 가고 싶은 곳의 리스트가 많을 텐데요. 꼭 가야 할 곳을 추천할 때의 기준이 있나요?
어떤 기사를 통해 소개하는 게 아니라, 개인적으로 ‘나, 여기 너무 좋았어’라고 소개할 때의 기준은 말하기가 애매해요. 수년간의 경험으로 데이터가 쌓이면서, ’여기 왠지 내 취향일 것 같아’라는 느낌이 들면 직접 찾아가 봐요. 그리고 ‘여기 좋아!’라는 게 직관적으로 느껴져요. 말 그대로, ‘그냥 너무 좋으니까’ 소개하는 거죠. 어떤 것들이 ‘좋음’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만, 제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의 형태로 올릴 때는 왜 좋았는지는 간단히 설명하려고 하죠.
그런데 어떤 매체의 기사를 쓸 때는 달라요. 어떤 주제를 잡느냐에 따라서, 제 방향에 맞는 공간을 선택해요. 예를 들면, ‘카페인데 편집숍을 겸하는 카페를 소개하고 싶어!’라고 한다면, 기본적으로 그 방향에 맞아야죠. 제가 직접 경험해 봤을 때 좋았던 것들을 위주로 우선순위를 정해서 소개하고, 왜 좋았는지를 자세히 설명하려고 해요. 대체로 제 취향이 반영된 것들이죠.
리스트는 주로 어디서 찾나요?
저와 취향과 안목이 비슷한 분이 추천하는 곳을 리스트업 해놔요. ‘이 사람이 추천한 곳은 괜찮았어!’라는 데이터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카페나 숍, 브랜드를 운영하시는 분이 추천하는 곳도 좋고요. 그리고 우연히 발견하는 곳도 많아요. 사진으로 보고, ‘여기 괜찮은데?’ 싶으면 휴대폰 메모장이나 네이버 지도에 저장해 두죠.
어느덧 4년 차 에디터에요. 이 일을 하며 언제 보람을 느끼나요?
개인의 신분으로 만날 수 없는 새로운 분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좋고, 그들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전하는 데에 보람을 느껴요. 그리고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받을 때죠. 제가 쓴 글을 읽는 독자분들에게 좋은 피드백을 받을 때, 다른 하나는 제가 소개한 공간이나 브랜드 관계자 분들에게 좋은 피드백을 받을 때 뿌듯해요.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는 걸 느끼죠. (웃음).
#나다운 게 뭔데
작년 9월, ‘나다운 게 뭔데’라는 책이 나왔죠. 제목이 흥미로웠어요. 처음 ‘나다움’에 고민하게 된 때가 언제예요?
10대 때부터 저는 하나에 진득하게 집중을 못 하는 성격에, 잡다하게 좋아하고, 싫증을 금방 느끼는 편이라 다른 것으로 갈아타는 성격이었어요. 그런데 어렸을 때, ‘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그렇다 보니 계속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지 생각하게 됐어요. 본격적으로 내 직업을 찾아야 할 20대까지 그 고민이 이어졌고요. 어떻게 보면 너무 관심사가 많아서 고민이었던 거죠.
그리고 에디터로 시작했을 때도, 제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에디터들은 전문 분야가 있었어요. 패션, 공간, 자동차 등등. 그걸 보면서 ‘나를 대표하는 게 뭐지?’ 계속 고민했어요. ‘이게 나다운 거야!’라고 뚜렷하게 말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불안이 10대, 20대를 지나 취업한 뒤에도 계속 따라다녔죠.
그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취향은 의도대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사는 대로 쌓이는 것이다’라는 거죠?
맞아요. 제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살면서 경험한 것들이 쌓여 자연스레 제 취향이 만들어진 거더라고요. 그리고 사람은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나 자신을 규정하려고 하기보다는 하나라도 더 보고 듣고 느끼면서, 경험하는 순간의 내가 어떤지 살펴보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자신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쪽을 택한 거네요. 같은 맥락에서, ‘어제의 나를 유쾌하게 배신하겠다’라는 문장을 썼어요. 그런데 사람이 한 번에 변하기 쉽지 않고, 새로움보다 익숙함을 선택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잖아요. 변화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요?
이전의 것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뒤부터는 두려움이 작아졌어요. 예를 들어, 전에는 무조건 깔끔하고 스타일을 좋아했는데, 최근엔 색깔이 밝고 눈에 잘 띄는 것에 마음이 가더라고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깔끔한 스타일을 싫어하게 된 건 아니잖아요. 상황에 따라 제게 어울리는 스타일이 뭔지 알게 된 거죠. 여러 선택이 쌓여가는 거고요. 언제든지 필요와 환경에 따라서 바뀔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선택지가 다양해진 만큼 크고 작은 상황 속에서 조금은 더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익숙한 것들과 새로운 것들 사이에서 균형이 필요하죠.
맞아요. 그래서 요즘은 새롭운 것들을 쫓아다니는 데만 급급하지 않으려고 경계해요. 늘 새로운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경험을 해보려고 하지만 새로운게 다 좋은 것도 아니고, 설령 좋다고 해도 나와 잘 맞는 건 또다른 얘기잖아요. 이게 나한테 맞는지, 정말 내 마음에 드는지 들여다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익숙한 게 나쁜 게 아니잖아요. 오히려 더 깊어질 수 있는 거고, 무르익을 수 있는 거니까 너무 경직된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제게 익숙하고, 안정감과 즐거움을 주는 것들에 매력을 많이 느끼고, 오래된 것의 가치를 알아가는 중이에요. 새로운 것들이 금방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많다 보니까, 오랜 시간을 견디면서 깊어지는 것들이 진짜 대단한 거라는 걸 새삼 느껴요.
‘오랫동안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하는 것이 있나요?
지금 문득 생각나는 곳은, 합정역하고 상수역 사이에 있는 ‘시간의 공기’라는 카페에요. 되게 조그마한 카페인데, 제가 알기로 10년이 넘었어요. 14년도부터 다녔는데,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군대도 다녀오고, 취업도 하고, 책도 쓰고. 사장님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서로의 오랜 추억이 담긴 거죠. 자주 가지는 못해도 가끔 한 번씩 가면 반갑게 근황을 나누는 곳이에요. 그곳을 생각하면 마음이 든든해요. 항상 그 자리를 지켜주고 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고요.
맞아요. 아지트 하나만 생겨도 대단한 부자가 된 기분이에요(웃음). 정현은 책에 부끄럽고 찌질한 모습마저 유쾌하게 풀어냈어요. 자기 얘기를 쓸 때 ‘멋있는 나'를 보여주고 싶기도 할 텐데, 그 반대를 택했고요.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썼는지 궁금해요.
이거는 제 책이고, 에세이잖아요. 에세이는 다른 정보도 들어가지만 제 삶을 가장 내밀하게 볼 수 있는 책이에요. 그렇다 보니 제 캐릭터를 잘 보여주는 데 중점을 뒀어요. 그래야 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잘 전달이 되니까요. 그리고 최대한 솔직하고 유쾌하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에는 이유가 있어요. 일단 제가 그런 글을 좋아하고, 감성적이고 진지한 글을 잘 잘 못 쓰거든요. 그래서 차라리 툭툭 유머를 더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구체적으로 담으려고 했어요. 첫 책이기 때문에 ‘정말 솔직하게 쓰네!’라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게 제 나름이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죠.
정현에게 ‘솔직함'은 어떤 건가요?
제 안에는 까불거리는 나, 감성적인 나, 진지한 나의 모습까지 다양한 모습이 존재하거든요. 그리고 기호나 취향에서도 굉장히 다양한 면들을 아우르고 있고요. 그런 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요. 솔직하게 보여주지 않으면 누군가는 저의 특정한 부분만 보고 판단하게 되는데 그러면 억울하거든요. 제 안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려면 필연적으로 솔직해질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있어요.
사람들이 저를 보고 ‘힙하고 트렌디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고, 실제로 그렇기도 해요.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다양한 모습의 제가 있어요. 허세가 강했던 나, 남들 보기에 멋져 보이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했던 나, 멋진 것들을 쫓아 다니면서 자격지심이나 열등감을 느꼈던 나의 모습이 있거든요. 그걸 보여주지 않으면 사람들이 ‘멋있다’고 봐주는 제 모습이 설명이 안되는 거죠. ‘김정현이라는 사람이 이런 걸 좋아하는데, 사실은 저런 모습도 있네!’라는 걸 같이 보여줘야지 제 스토리가 설명이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저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책을 쓰기 전과 후가 달라진 게 있나요?
책을 쓰기 전에는, 이 책을 에디터로서의 경력을 쌓아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책을 쓰면서, ‘나는 내 이야기를 전하는 것에 굉장히 즐거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구나'라는 걸 알게 됐고, 그게 단순히 경력을 쌓는 수단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어느 매체 혹은 회사에서 에디터로서 커리어를 탄탄히 높여가는 것보다, 제 타이틀이 무엇이든지 간에 책이나 다른 방식으로 내 이야기를 계속 전하고 싶다는 쪽으로 삶의 방향이 많이 전환됐고요. 외적인 변화보다 내적인 변화가 훨씬 많이 일어났던 것 같아요.
그런 변화를 겪으면서 퇴사도 했어요.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요.
김정현이라는 에디터, 김정현이라는 작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해요. 주 5일 출근하는 형태의 근무만 아니라면, 길을 다양하게 열어놓고 다양하게 재밌는 일들을 계속해 보고 싶어요. ‘다양한 일’의 공통점이 있다면 ‘제 이야기를 하는 일’이 주가 되면 좋을 것 같아요. 타 매거진에 기고는 계속 하면서, 사람들한테 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들어 운영할 예정이에요. 지금은 유튜브가 우선순위라서 열심히 해보려고요(웃음).
#아지트, 커피사(Coffeesa)
분위기가 고풍스러워요. 이곳은 어떻게 알게 됐나요?
을지로가 한창 ‘힙지로’라고 뜨기 시작할 때 놀러 다니다가 알게 됐어요. 그 당시에는 이곳이 ‘커피사’가 아니라 ‘커피사 마리아’였어요. 드로잉 작업을 하시는 마리아 작가님의 작업실이 같이 있었거든요. 카페이기도 하면서 작업실 공간이 있는 독특한 컨셉이 재밌더라고요.
양쪽이 통창으로 되어있어 볕도 잘 들어오고, 공간도 넓고 쾌적한 데다가 테이블 간의 간격도 적당히 넓어서 좋았어요. 힙하기도 하면서 감각적인 느낌인데, ‘균형이 잘 잡혀있는 공간’이라고 느꼈어요. 심지어 커피도 맛있고 일도 잘되니까 최고의 공간이에요. 그래서 을지로에 올 때는 웬만하면 커피사로 와요. 주로 노트북 하나 들고 작업하러 많이 오고요. 여기 제가 좋아하는 지정석이 있거든요? 항상 거기에 앉아서 글을 쓰거나 아이템을 찾아요.
이 자리가 지정석이라고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나중에 한 번 앉아보면 알겠지만, 의자가 굉장히 편하고 등받이도 푹신하고 정말 편해요. 테이블의 높이도 너무 높거나 낮지 않아서 일하기에도 편하고요. 그리고 저는 카페에 가면 공간을 넓게 조망할 수 있는 자리를 좋아하거든요. 이 자리도 커피사 앞쪽의 통창과, 넓은 공간을 바라볼 수 있어서 마음에 들어요.
정현도 아지트를 꿈꾸잖아요. 아지트는 뭘 의미하나요?
갖고 싶은 거요(웃음). 전 집돌이가 아니에요. 밖으로 나가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물론 집에서 편안하게 쉬는 것도 좋아하는데, 집은 ‘휴식의 공간’이기 때문에 생산적인 일이 진행이 잘 안 돼요. 집중력도 많이 떨어지고요. 그래서 ‘남의 공간이 아니면서, 집과는 다른 역할을 하는 제2의 사적인 장소가 있으면 좋겠다’라는 로망이 있어요. 혼자 작업을 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을 초대해서 다양한 일을 할 수도 있고, 그냥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는 곳이 하나쯤은 있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제 취향을 많이 녹여서 ‘여기는 김정현의 공간이구나!’라는 게 드러났으면 좋겠어요.
아지트에 꼭 넣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일을 할 수 있는 넓은 테이블과 의자가 필요할 것 같고요. 꼭 큰 소파를 두고 싶어요. 소파에 둘러 앉아 편안하게 둘러앉아 쉬거나, 가끔은 진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죠. 그리고 근사한 커피 브루잉 바를 구비할 거예요. 커피머신과 도구들을 쫙 늘어놓고, 멋진 포스터들도 붙여놓고요(웃음).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커피를 내려주고 싶어요. 그리고 괜찮은 스피커를 하나 사서 ‘뮤직존’을 만들 거예요. 음악을 틀어놓고 일을 할 수도 있고, 멋진 음악을 배경으로 거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 수 있겠죠(웃음)?
그런 공간이 생기면 가장 먼저 어떤 걸 해보고 싶어요?
가까운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어요. 볕 좋은 날 낮에 불러서 제가 선곡한 음악을 틀어놓고, 커피를 내려주고 ‘편안하게’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아니면, 비공식적으로 주최하는 모임을 열어서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요.
정현 님에게 '편안함'이 중요한 키워드 같아요.
이전의 저는 굉장히 조급하고 남의 시선도 의식을 많이 하는 편이었어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저보다 자유롭고 느긋하게 사는 사람들, 자기만의 속도와 분위기를 가지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굉장히 부러워하고 동경한 적이 있었어요. 저도 저만의 속도로 살아가고 싶더라고요. 물론 아직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조금씩 삶의 기준을 제 쪽으로 옮겨와 조율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긍정적인 변화죠.
#나를 표현하는 도구
오늘의 스타일링은 어떤 컨셉인가요?
전문 용어로 ‘꾸안꾸’라고 하죠(웃음). 요즘에는 캐주얼하고 경쾌한 스타일을 좋아하고, 핏이 넉넉한 옷을 좋아해요. 적당히 ‘색’도 들어가 있는 게 좋고요. 지금 제가 입은 옷은 ‘아웃스탠딩’이라는 브랜드의 스웨트셔츠인데 좋아하는 옷이라 교복처럼 입고 다녀요. 그리고 안경은 색이 있는 안경으로 포인트를 줬고, 바지는 슬랙스, 신발은 편안한 스니커즈를 선택했어요. 너무 딱딱해 보이지 않고, 너무 힘이 빠지지는 않게요. ‘캐주얼’이라는 단어를 경계 없이 많이 쓰는데, 그 단어의 어감처럼 ‘경쾌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으로 주로 입는 편이에요.
<OLO MAGAZINE> ‘오피니언’ 코너는 ‘오늘날 잘 입는다는 것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시작됐어요. 오늘날 잘 입는다는 건 뭘까요?
어떤 브랜드나 가격이 ‘잘 입는 것’의 기준이 되지는 않는 것 같고요. 내가 가진 분위기, 외모, 성향, 직업 등 여러 가지와 자연스럽게 잘 어우러지는 스타일이 무엇인지 알고, 옷으로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다면 ‘잘 입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내가 보기에 자연스럽고, 멋있어 보이는 옷을 입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누군가는 그걸 별로라고 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너만의 스타일이 있네?’라고 볼 수도 있으니까요. 일단 ‘나’에게 자연스러운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나다운 게 뭔데> 저자이자, 프리랜스 에디터로 활동 중이다. 유튜브 채널 ‘현정김’을 운영한다. 디지털 미디어 디에디트(THE EDIT) 객원 에디터, 뮤직 &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BGM 에디터로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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