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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삶. 삶과 일. 너도나도 ‘워라밸’을 외치는 세상이지만 실제로 균형 잡힌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일과 삶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나에겐 식물이 그 균형의 추 같은 존재다.
식물을 집에 들이기 시작한 건, 사실 별 생각 없이 한 선택이었다. 퇴근 길에 마트에 들렸다가 에스컬레이터 옆에 있는 식물 가게에 우연히 시선이 갔다. 작고 반질반질한 잎을 가진 미니 콩고가 눈에 들어왔고 푸석한 얼굴의 나와 참 다르다고 생각했다. 저 반짝이는 식물을 데려가면 내 삶도 조금은 빛나지 않을까. 당시엔 이 선택이 내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몰랐다. 이제는 매일 아침 식물에게 물을 주는 것이 나의 하루를 여는 리추얼이 됐다. 이 사소한 행동이 얼마나 큰 만족과 행복을 주는지! 일상의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이 작은 순간이 주는 평온함과 만족감은 매우 소중하다.
식물을 키우기 전 내 삶이 어땠더라. 그다지 좋은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다. 퇴근 후 집에 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잠에 들곤 했다. 지금은 너무나도 애정하는 현관 앞의 조팝나무는 팝콘 같은 무언가가 달려 있는 희한하게 생긴 나무, 베란다 앞의 커다란 가문비나무는 보기 싫은 송충이들의 서식지일 뿐이었다. 철쭉은 진달래를 닮은 무언가. 여기저기 왜 이렇게 많은 거야. 공무원들은 저 나무를 좋아하나 봐.. 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지금은 계절이 바뀌면 식물들의 변화부터 살피며 사소한 점에서 감동을 받는다. “벚꽃이 지면서 푸른 잎이 올라오네. 곧 여름이 오겠어.” “이 자리엔 아무것도 없었는데.. 이 식물은 뭐지?” “여기 모란이 피었네, 어쩐지 주위에서 좋은 향이 나더라!” 예전의 나라면 상상조차 못 할 일이다.
식물을 키우는 햇수가 늘어나면서 가끔 인터뷰 요청이 온다. “가장 애정하는 식물이 무엇인가요?” 인터뷰를 할 적에 꼭 나오는 질문인데, 애정하는 식물은 매번 바뀌지만 “가장”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대답의 방향이 달라진다. 여럿 가운데 하나만 고르자면 늘 클리핑 로즈마리를 꼽는다. 무언가를 할 때 그것만은 예외에 둔다면 정말 아낀다는 뜻인데, 나에겐 클리핑 로즈마리가 그렇다. 계절이 바뀌면 식물의 특성에 따라 주기적으로 위치를 옮기지만 클리핑 로즈마리는 예외다. 일년 내내 바람과 햇살이 가장 잘 드는 자리에 둔다. 통풍과 일조량이 중요한 허브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녀석은 나에겐 조금 특별하다.
클리핑 로즈마리는 내가 식물 초보 일 때 데려온 식물이다. 이 때 수 많은 식물들이 초록별로 떠났지만 이 녀석만은 정말 잘 자랐다. 진한 초록빛 잎들 사이로 매일같이 연둣빛 새싹이 돋았다. 초보인 내가 보기에도 이 식물은 나와 쭉 함께 하겠다는 막연한 확신이 있었다. 여러 일들로 인해 식물에 소홀해진 시기에도 클리핑 로즈마리는 내 곁에 있었다. 그 시절엔 늦은 밤 베란다에서 클리핑 로즈마리 잎을 만지작거리는 일이 하루의 유일한 위로였다. 손가락을 문질러 향을 맡아 깊게 들이쉬고 가지 끝에 달린 연둣빛 새싹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 가느다랗고 딱딱한 가지안에 얼마나 더 많은 연둣빛들이 있을까? 내일 밤엔 이 녀석이 조금 더 자라있는 모습을 볼 수 있겠지, 나의 내일도 오늘보다 더 나은 하루가 될 거야. 이렇게 다짐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겨울에 냉해를 입어 잎의 반 이상이 얼어버렸을 때도 이 녀석은 쉽게 죽지 않을 것 같았다. 잎을 다 떨구고 가지만 남아서, 화분을 비우고 새 식물을 심어보라는 가족들의 이야기에도 꿋꿋하게 물을 주었다. 생사고락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 하던 친구인데, 쉽게 나를 떠날 것 같지 않았다. 기다림에 보답하듯 이듬해 봄에 새 잎이 돋기 시작했고 그 즈음 내 일도 원만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클리핑 로즈마리는 울창한 숲이 되어 지금도 베란다 한편을 지키고 있다.
식물을 키우며 배운 인내심과 관심은 내 삶의 다른 영역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집중하고, 더 차분하게 접근하게 됐다. 식물이 자라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모든 문제가 즉각적인 해결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걸 이해하게 됐다. 이 작은 깨달음이 나를 더 인내심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삶의 균형을 찾는 것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일상 속 작은 변화에서 시작될 수 있고 이것이 심지어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식물을 키우기 같은, 어쩌면 사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취미가 스트레스를 줄이고 더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으로 이끌 수 있다. 무엇보다도 내가 배운 것은 일상의 순간들이 모여 삶의 질을 높인다는 것이다. 식물을 키우는 것에서 얻은 인내와 섬세함, 그리고 일상의 작은 성취감이 나를 더 행복하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 변화들이 모여 나의 워라밸을 실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진정한 삶의 균형과 만족은 거창한 결심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작은 순간들에게서 피어난다. 오늘도 식물이 주는 행복을 온전히 즐길 준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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