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KOLONMALL. ALL RIGHT RESERVED
안녕하세요, 라멘 좀 먹는 객원 에디터 전국면입니다. ‘라멘’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보통은 하얗고 꼬릿한 국물의 돈코츠 라멘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라멘=돈코츠 라멘’이라는 공식도 성립할 정도니까요. 하지만 거기서 조금만 더 나아가면 정말이지 방대한 라멘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오사카에서 맛 본 라멘을 시작으로 10년 째 라멘을 취미 생활로 삼고 있는데요. 그 10년 사이 한국의 라멘은 많은 발전을 이뤘습니다. 종류가 다양해진 것은 물론 맛에 있어서도 일본 현지와 견주어 전혀 밀리지 않는 수준의 가게들도 생겨났으니까요. 그것은 곧 ‘라멘 좀 먹는’ 사람들이 전보다 많이 생겨났기 때문이겠지요. 코로나 이후 일본 여행 열풍이 불면서 ‘라멘 좀 먹는 사람’ 의 수는 더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라멘. 그 라멘의 시작부터 현재 한국의 라멘까지 길고도 짧은 얘기를 써보려 합니다.
1. 라멘은 중화요리?
‘중화소바 中華蕎麦(ちゅうかそば, 일어 발음으로 츄카소바)’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지금도 쓰이고 있는 이 말은 사실 라멘의 기원과도 같은 말입니다. 1867년의 일본 메이지 유신과 1871년 청일수호조약 이후 많은 중국인들이 일본으로 건너오면서 요코하마나 나가사키, 하코다테 같은 항구도시에 중국인 거리가 조성되었죠. 여기서 팔았던 중화풍 면요리가 라멘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초기 라멘은 난킨소바(南京そば, 난킨=중국 난징의 일어 발음) 나 시나소바(支那そば, 시나=China의 일어 발음)로 불렸는데요. 이후 중화소바로 불리다가 1958년 일본 식품회사 닛신이 만든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치킨라멘’이 등장하면서 ‘라멘(ラーメン)’이라는 용어로 널리 쓰이게 됩니다. (현재 일본에선 ‘라멘’과 ‘중화소바’ 둘 다 사용합니다.)
우리가 오늘날 익히 알고 있는 형태의 라멘이 그 모습을 갖추게 된 정확한 시기는 불분명하지만, 본격적인 일본식 라멘은 1910년 도쿄 아사쿠사의 ‘라이라이켄(来々軒)’이라는 식당에서 시작되었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닭뼈를 우려 내어 만든 육수에 일본 음식의 핵심인 쇼유(간장, しょうゆ)로 간을 한 ‘쇼유라멘’ 이었죠. 간장 베이스의 음식에 익숙한 일본인의 입맛에 맞춘 이 중화소바는 선풍적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후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더불어 중국으로 갔던 많은 일본인들이 중화요리 레시피와 함께 돌아오면서 라멘 시장은 폭발적 성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전쟁 후 식량난을 타개하기 위해 라멘의 주 재료인 밀이 값싸게 풀리면서 라멘의 대중화에 더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이후 라멘은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서민들의 음식으로 자리잡았고, 각 지역별 특색이 담긴 라멘들과 다양한 레시피로 무장한 새로운 라멘들이 개발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2. 라멘의 종류
라멘을 크게 구분하자면 맛의 근간이 되는 베이스가 무엇이냐에 따라 구분할 수 있습니다. 간장베이스인 쇼유, 소금간을 한 시오, 된장(미소) 베이스의 미소 3가지로 구분되죠. 더러는 쇼유, 시오, 미소, 돈코츠(豚骨, 돼지뼈)로의 4가지 구분이 쓰이기도 합니다만, 엄밀히 따지면 쇼유, 시오, 미소는 ‘소스’이고 돈코츠는 ‘스프’로 봐야 하기에 같은 범주에 두기에 모호한 게 사실입니다. 돈코츠 스프가 주는 임팩트가 워낙에 강한지라 상위 범주에 함께 묶이는 경우가 많지만요.
그래도 라멘 좀 먹는 사람으로서 보다 정확히 하자면 소유, 시오, 미소 베이스에 하위 범주로 돈코츠, 토리가라(鶏ガラ, 닭뼈), 교카이(魚介, 어패류), 규(牛, 소) 로 구분하는 게 가장 적합할 것 같습니다. (버섯과 채소로 우린 야사이(野菜, 야채) 계통도 있지만 야사이 단독으로 국물을 내리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제외하였습니다. 비슷한 계통 중엔 마이너 장르 이지만 토마토라멘이 은근 널리 퍼져 있고요.)
3. 라멘의 시작, 쇼유와 시오
앞서 설명한 라이라이켄이 쇼유라멘의 시작이었지만 라멘이 난킨소바로 불렸던 아주 초기 시절, 그 시작은 시오라멘이었습니다. 시오로 시작한 라멘에 라이라이켄에서 쇼유를 넣음으로써 베이스로 만들면서 쇼유라멘이 시작 된 것이죠. 그러고 보면 라멘의 원형은 시오라멘이라 볼 수 있겠네요.
간장이 어느 정도 재료의 맛을 덮는 쇼유라멘과 달리 시오라멘은 소금간만을 하므로써 재료의 맛이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이 때문에 누린내 등 재료 본연의 냄새를 잡아야 하는 난제가 있죠. 그래서 대부분 육수 단계에서 여러 방법으로 냄새를 제거한 탓에 깔끔한 청탕(맑은 국물) 계통의 라멘이 일반적입니다.
4. 삿포로를 대표하는 미소라멘
라멘이 시오로 시작해, 변주 되어 쇼유가 탄생했다면 거기서 다시 새롭게 등장한 것이 미소라멘 입니다. 미소라멘은 쇼유와 시오에 비해 역사가 짧습니다. 1955년 삿포로의 아지노산페이(味の三平)라는 라멘집에서 최초로 개발되었습니다. 미소시루가 국민음식일 정도로 된장을 참 많이 먹는 일본인들인데, 된장 베이스 라멘이 이렇게 늦게 나온 것은 다소 의아하기도 합니다. 아 참, 아지노산페이는 현재까지도 영업중인 점포이며 한국 방송에도 등장한 적 있는 일본 대표 맛집입니다.
미소를 라멘 3대 베이스로 넣긴 했습니다만 미소라멘은 삿포로 지역 라멘(고토치라멘 ご当地ラーメン, 향토 음식 같은 개념)으로 보는게 더 맞습니다. 간장이나 소금이 아닌 된장을 써서 간을 하는 독창적 레시피와 이미 전세계적으로 널리 퍼진 탓에 라멘의 대분류에 속해버렸지만요.
5. 한국인의 원픽, 돈코츠라멘
돈코츠라멘은 후쿠오카의 하카타 지역이 유명합니다. 미소라멘과 마찬가지로 지역라멘이 널리 퍼져 라멘의 대분류 중 하나로 간주되는 것으로 볼 수 있죠. 사실 돈코츠라멘은 후쿠오카 아래 지방인 쿠루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37년 미야모토 토키오라는 사람이 운영하던 라멘 노점 난킨센료(南京千両)에서 개발되었는데요. 개발 년도만 보면 미소라멘보다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죠.
돈코츠라멘은 이름대로 돼지 뼈를 우려 만드는 탓에 국물이 하얗고, 부산의 돼지국밥처럼 꼬릿한 돼지 냄새가 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 냄새를 최대한 잡고 부드럽게 만드는 곳도 있는 반면, 뼈를 부수고 우릴대로 우려 스프에 골분이 걸쭉하게 느껴지는 돈코츠라멘도 있습니다.
사실 난킨센료에서 만든 최초의 돈코츠라멘은 현재 우리가 아는 뽀얀 빛깔의 백탕(白湯)이 아닌 맑은 청탕(淸湯)에 가까웠습니다. 최초의 돈코츠라멘이 등장한 때부터 10년 후, 산큐(三九)라는 라멘집에서 점주가 자리를 비운 사이 직원의 실수로 스프를 높은 온도로 끓이게 되면서 지금의 백탕형태의 돈코츠 라멘이 탄생했다고 합니다. 실수로 만들어진 스프가 지금의 거의 모든 돈코츠라멘의 근간이 되었다는 게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돼지국밥과 유사한 육수가 입맞에 맞았던 덕분일까요? 한국에선 유독 돈코츠라멘의 대중화가 두드러집니다. 한국의 라멘 1세대라 불리는 ‘하카타분코’나 ‘나고미’, ‘라멘트럭’이 돈코츠라멘으로 성공을 했고, 오래된 돈코츠라멘 프랜차이즈인 ‘멘야산다이메’나 ‘산쪼메’ 등도 여전히 성업중이죠.
일본에서 돈코츠 라멘으로 가장 유명한 곳을 꼽으라면 ‘이치란(一蘭)’이 아닐까 합니다. 최근 일본여행 붐과 맞물려 한국인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구가중이죠. 국내 유명 백화점에서 이치란 밀키트 팝업 행사를 진행하기도 하는 등 한국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돈코츠라멘으로 이치란만큼 유명한 곳이 바로 ‘잇푸도(一風當)’입니다. 누가 정했는지는 모르지만 후쿠오카 3대 라멘으로 이치란, 잇푸도, 신신이 꼽힙니다. 그 중 유일하게 한국에 진출했었던 잇푸도는 불행히도 2016년 철수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자주 갔던 곳이라 철수하는 게 정말 아쉬웠던 기억이 나네요. 선호도가 높고, 오랜 시간 전개된 만큼 한국의 돈코츠라멘은 일본 현지와 그리 차이가 없을 정도로 수준이 많이 높아졌습니다. 그 덕에 지인들이 일본의 라멘집 추천을 부탁하면 어느샌가 돈코츠라멘은 제외하고 추천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후쿠오카 안에서도 하얀 국물의 하카타계, 간장색을 띠는 탁한 국물의 나가하마계 등 다양한 형태의 돈코츠라멘이 있으니 여전히 먹어봐야 할 라멘은 많습니다.
간단히 라멘의 기원과 종류에 대해 얘기해 보았는데요. 다음엔 소유나 미소라멘 등을 넘어서 다양한 스타일로 변화된 라멘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이 글을 보니 라멘이 좀 땡기시나요? 혹시나 라멘에 대해 더 궁금해졌다면 당신은 ‘라멘 좀 먹는 사람’이 될 준비가 되었습니다. 아무쪼록 이 글이 여러분의 라멘력(力)을 키우는 자그마한 양식이 되었길 바라며… 기분 좋게 선선한 바람이 부는 저녁, 집에 가는 길에 라멘 한 그릇 어떠신가요?
라멘경력 10년차. 밥보다 라멘을 더 많이 먹습니다. @jaykaym__
첫번째 댓글을 달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