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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 ‘기획'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전통적으로 마케팅이나 광고 분야에서 기획을 담당했다면 이제는 업종과 직무를 불문하고 기획 역량이 요구돼요. 서비스 기반의 산업구조가 경험의 디테일을 비즈니스의 결정적인 성공 요인으로 만들었고, 정보와 기술의 발달로 창작의 영역이 개인에게로 확대되었기 때문이에요. 기획만 잘 하면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리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지난 3월 마지막 수요일에 열린 세 번째 TMT는 ‘어른들의 놀이터’ 라고 불리는 문구점 포인트 오브뷰의 대표 김재원님과 함께 했어요. ‘취향’을 비즈니스로 설계한 대표적인 기획자로 손꼽히는 그녀의 소비 이야기 속에서 취향과 안목에 대한 인사이트를 발견해보세요.
HAVE AN EYE FOR 'CURATION'
브랜딩 에이전시 ‘아틀리에 에크리튜’의 오너이기도 한 김재원 대표는 공간을 기획하고 콘텐츠나 상품을 기획하는 일을 합니다. 동시에 디자이너이자, 문구점 사장이기도 하고, 한때 카페도 운영했었죠. 여러가지 일들이 있지만 그 모든 것에 앞서는 것이 결국엔 ‘기획’이기에 그녀는 자신을 ‘기획자, 아트디렉터’라고 소개합니다.
“저는 기획을 통해 사람들에게 잘 소비하도록 제안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제 소비가 저의 일과도 다 연결이 돼있더라고요. 소비, 그걸 위한 사고의 과정과 경험이 모두 제안과 연결돼있는 거죠. ”
김재원 대표는 지금 이 시대를 “누구나 센스를 가지고 좋은 제안을 할 수 있는 시대”라고 말해요. 그렇다면 좋은 센스를 기르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소비를 위한 디깅이 아닌,
디깅을 위한 소비
김재원 대표는 브랜딩과 리테일, 오프라인 공간에 관해서는 수많은 강연을 해왔지만 자신의 소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처음이라 고민이 많았다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저는 물건이 엄청 많아요. 정말 엄청, 엄청요. 근데 사고 나면 관심이 없어요. 안 뜯은 것도 많고요. 온라인 쇼핑은 거의 하지 않아서, 이미 오프라인에서 물건을 구매하며 충분히 봤기 때문입니다. 소비에 대해 생각하면서 ‘내가 왜 그랬지?’ 고민해봤어요. 전 소비하기까지의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제 이야기는 바로 그 과정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 같네요.”
먼저 그녀의 소비를 살펴볼까요.
출처: 인스타그램 @wonderkim
“만년필, 가위 같은 문구류를 많이 사모아요. 물건 자체보다는 구매하는 과정에서 얻는 지식을 사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최근엔 한 영국 브랜드의 우산만 계속 사고 있어요. ‘왜 이 브랜드는 비가 많이 오지만, 정작 사람들이 웬만해서는 우산을 쓰지 않는 영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따라가면서 거기에 담긴 귀족 문화 같은 걸 배울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러다 한 브랜드에 마음을 주게 되면, 계속 그 브랜드 제품만 사 모으면서 제 나름대로의 지지를 보내고요. 다양한 걸 사는 것보다 디깅 과정 속에서 얻는 지식으로 만족하는 거죠.”
그녀는 디깅의 대명사에요. 구글에서 무언가를 검색할 때면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보고야 만다는 것, 심심하거나 무료할 때 나무위키 랜덤페이지를 들여다 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죠. 컴퓨터 화면에 활성화된 브라우저 탭은 늘 천 개가 넘어요.
“저는 결국 디깅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수집 소비에 집중되어 있죠. 한때는 조개 껍데기 같은 것도 모았어요. 하루는 사고 싶은 산호가 있어서 찾아보다가 우연히 소라게를 키우는 분들의 인터넷 동호회 카페를 알게 됐어요. 다들 엄청 진지하시더라고요. 그분들에겐 조개 껍데기나 산호들이 소라게를 위한 인테리어 오브제인 거에요. 물론 저는 소라게를 키우지 않아서 가입이 거부됐지만(웃음), 그런 것들을 발견할 때면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문이 열리는 기분이 듭니다.”
호기심이라는 문
김재원 대표가 소비하고, 디깅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호기심’입니다. 나아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든 ‘호기심’이 중요하다고 강조해요.
“새로운 문을 열게 하는 건 호기심이에요. 문을 연 다음 깊게 들어갈 수도 있고, 깜짝 놀라서 금방 닫고 나올 수도 있지만, 열어야 안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죠. 호기심으로 수많은 문을 열어왔던 그녀는 어떤 공간을 보면 인테리어에 들어간 비용이 얼마일지, 하루에 어느 정도의 매출이 발생할 지 보인다고 해요.
“‘desire to know’. 결국 무언가를 알고 싶은 욕구가 있느냐 없느냐, 그리고 실제로 알아보느냐에서 비롯된 차이에요. 제가 강의하면서 수강생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네가 라이크를 눌렀다고 네 것이 된 게 아니야’. 많은 분들이 좋아요 눌렀다고, 캡처했다고 자기 것이 된다고 착각해요. 이게 왜 좋은지 스스로 생각해보고, 알아보지 않으면 말로 설명할 수 없어요. 결국 “이런 거 좋아해요”라면서 사진만 보여주는 거죠. ‘이 느낌이 왜 좋지?’ 고민하다 보면 디자인 사조가 궁금해질 수 있거든요. 그 지식이 쌓인 다음의 나와, 이전의 나는 전혀 다른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이렇게 쌓인 지식과 경험은 다시 ‘흡수율’의 차이를 만들어요. 같은 팝업 공간을 방문하더라도 느끼는 게 달라지게 됩니다. 가령 ‘아 재밌었다’, ‘오늘도 사진 100장 찍었어!’하고 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이 공간에 투자된 자원이 얼마일지, 어떤 효과를 의도했을지 추론하고 검증해보는 거죠. 호기심과 지식, 경험과 관찰의 순환이 뾰족한 취향과 깊이 있는 안목을 만듭니다.
탐구를 넘어 제안으로
물론 취향과 안목에 위계나 계급이 있는 건 아니에요. 김재원 대표는 다수를 만족시키는 ‘보편’과 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특수’가 있을 뿐이라고 설명합니다. 다만 적절한 제안을 통해 타겟을 만족시켜야 하는 기획자라면 보편과 특수를 넘나드는 센스가 필요하겠죠. 현재 ‘포인트오브뷰’에서는 어떤 메시지와 제품들을 사람들에게 제안하고 있을까요?
“저는 직원들에게 럭셔리한 감각이 중요하다고 말해요. 보통의 문구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흥분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요. 우리가 매일 샤넬과 에르메스를 걸치고, 롤스로이스를 탈 수는 없겠죠? 한편 문구류에서는 그 감각을 경험하는 일이 비교적 어렵지 않아요. 세계에서 아주 유명하고, 잘 만들어진 것들이라고 해도 상대적으로 저렴하죠. 그런 작은 것들은 누구나 얼마든지 취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출처 : 인스타그램 @wonderkim
김재원 대표는 이어 포인트오브뷰에서 판매하는 ‘리온 델레라’사의 클립을 예시로 들었어요. 흔한 사무용 클립과는 달리 크기가 다양하고 끝이 뾰족하죠. 이 클립으로 종이를 묶었을 때의 야무진 느낌과 미감, 그리고 그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건넸을 때 느껴지는 감각들이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며 창작의 영감이 된다고 그녀는 믿습니다.
“저희가 지금 사는 시대는 물건이 넘쳐나잖아요. 어디서나 무엇이든 살 수 있어요. 최저가의 영역을 제외하면, 이제는 ‘얼마나 사람을 잘 꼬시느냐’의 문제에요. 어떻게 우리에게서 물건을 사게 만들까 고민해야죠. 제가 영국의 귀족문화에 대해 적힌 설명에 꽂혀서 수동 우산을 고집하는 것처럼요(웃음).”
여러분은 최근 소비를 위해 탐구하며 발견한 가장 재밌고 흥미로운 사실이 있나요? 탐구의 여정 속에 취향의 단서를 발견하고, 나의 생각을 정리하며 보는 눈을 키워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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