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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O매거진의 ‘OLO’는 사람의 눈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보는 눈이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우리는 자신의 취향을 알고, 이를 자신만의 언어와 경험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안목 있는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안목이 우리의 일상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는 사실까지도요.
OLO매거진은 TMT 토크 시리즈를 통해 이 시대의 취향을 만들어가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나만의 관점과 취향을 발견함으로써, 덜 후회하고 오래 만족하는 소비 경험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지난 6월의 마지막 토요일, TMT 시즌 2의 첫 시작을 ‘모베러웍스’의 대표 모춘님과 함께 열었습니다. 1부에서는 '기념품'이라는 독특한 주제로 자신만의 취향을 나눠주셨는데요, 이것이 어떻게 현재의 커리어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따라가는 과정이 흥미로웠어요.
다른 곳에서 쉽게 만날 수 없었던 모춘님의 솔직하고 유쾌한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의 보는 눈을 키워 보세요.
'기념품'이라는 취향에서 발견한 것
시간이든 돈이든, 한 분야를 꾸준히 소비할수록 안목이 쌓여요. 가장 관심 있는 소비 분야가 무엇인가요?
소비와 안목이라고 하니 거창한데요, 사실 저는 생필품 살 때를 제외하고는 소비를 거의 하지 않아요. 생필품을 고를 땐 가성비와 기능성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고요. 그런데 이 기준을 벗어나는 카테고리가 있어요. 바로 여행지에서 사는 “기념품”입니다. 특정한 제품군을 수집하기보단 지역 특산품부터 마그넷까지 다양한 종류의 기념품을 구매해요. 테마파크에서 600만 원을 쓴 적도 있고요.
어떻게 하면 테마파크에서 600만 원을 쓸 수 있나요?(웃음)
회사를 다니면서 브랜딩, 디자인 업무를 할 때였는데 LA에 출장을 갈 일이 있었어요. 휴가를 더 써서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디즈니랜드를 둘러봤죠. 워낙 브랜딩을 탄탄하게 하는 회사들이니까 얼마나 잘 하나 하고 가서 본 건데, 결국 600만 원어치의 기념품과 서울로 돌아왔어요.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아, 돈 날렸다’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깨달았어요. ‘이거다.’
기념품에서 인사이트를 발견했군요.
기념품이라고 불리는 상품들은 크게 두 가지 성격을 띱니다. 우선 텐션이 높죠.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현실의 온도에는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의 제품이 많아요. 또 하나는 상품적인 가치가 떨어진다는 거고요. 이렇게 말하긴 그렇지만 ‘짜친다’고 하죠. 질도 안 좋고 디자인도 조악하고. 근데도 사잖아요. 현실에선 결코 사지 않을 것들인데도 불구하고 마음이 가고요. 그게 기념품이 가진 힘이라는 걸 발견한 거예요. 제가 당시에 브랜딩을 하는 사람으로서 갖고 있던 고민과 맞닿아 있었어요.
퇴사하고 모베러웍스와 저희의 일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유튜브 채널 MoTV를 만들 즈음에 소위 말해 ‘업자’로서 좀 질려있었거든요. 정제되고 절제된 브랜드의 언어 같은 것들이 느끼하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마케팅 구루들이 일관된 정체성, 진정성 있는 소비자와의 스킨십을 강조해요. 그렇게 열심히 해서 브랜드가 제품을 출시했는데 제품이 안 팔리면 바로 할인을 해버리거든요. 그런 모순되는 관행들이 가짜처럼 느껴졌어요. 반대로 기념품은 관광객들을 위한 상품이잖아요. 누가 봐도 사기 치려고 만든(웃음). 순간의 틈을 파고드는 기념품의 솔직한 매력을 알아버린 거죠. “고객 경험이 중요하다”, “감각의 전이를 설계하라”처럼 이해는 되지만 마음 깊숙이 공감이 되지 않았던 구루들의 조언들이 비로소 깨달아지는 순간이었어요.
기념품을 살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이 있나요?
어떤 요소보다도 그 순간의 내가 가장 많이 관여되어 있어야 해요. 물건의 쓸모만 놓고 보면 거의 후회할 테지만, 그게 결국 기념품의 정의이기도 한 것 같아요. ‘내가 이걸 그 돈 주고 샀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그 순간만의, 일상을 벗어난 감정이 담긴 물건들이죠. 그리고 그걸 볼 때 ‘내가 그때 이성의 끈을 놓았구나’ 싶으면서 웃기잖아요. 그 기념품 덕에 여행이 좀 더 재밌었고, 웃음이 났다면 기념품으로서 충분히 의미가 있는 거 아닐까요?
가장 만족스러운 기념품 소비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자잘한 기념품들을 워낙 많이 사다 보니 최근에는 동료들에게 입사 기념일이 돌아올 때마다 하나씩 선물로 주기도 하는데요, 절대 버릴 수 없는 게 하나 있어요. 발리에서 9천 원에 구매한 돌 조각품이에요.
제가 MoTV를 시작하고 마케터 숭, 귤님과 함께 ‘두낫띵클럽’ 협업을 위해 발리에 갔어요. 저는 회사에 다닐 때부터 이미 두 분을 알고 있었거든요. 워낙 일을 잘 하는 분들이라고 소문이 났었으니까요. 근데 내가 그 사람들이랑 일을 하고 있다는 자각이 드니까, 평소보다 더 들뜨더라고요. 그때의 좋은 기분, 영감,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 같은 걸 담아서 산 게 그 돌이에요. 발리 이후로 제가 너무 바빠졌어요. 그 좋은 기운을 다른 분들과도 나누고 싶어서 무비랜드 기념품존에 전시를 해두었습니다.
무비랜드 1층 기념품존에 비치된 돌 조각품. 무비랜드가 적힌 항아리는 오키나와에서 기념품으로 구매한 도자기에서 영감을 받아 직접 제작했다. 무비랜드 개관 후 1년간 상영하고 싶은 영화들의 장면이 그려져 있다. @movieland.archive 인스타그램 캡처.
이야기를 파는 극장, 무비랜드의 탄생
자연스럽게 화제의 중심, 무비랜드 이야기가 나왔어요. 기념품에 관한 취향이 일을 하는 데 있어 영향을 미치기도 하나요?
기념품이란 그 순간의 감정이 개입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죠. 제가 무비랜드의 기념품을 만들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그 부분이에요. 기분 좋은 경험이 떠오르는 물건을 만드는 거요. 그리고 그게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졌으면 좋겠고요.
처음 모베러웍스를 시작할 때는 ‘메시지’를 팔겠다고 했어요. 봉이 김선달처럼, 노동자들을 위한 작은 농담을 건네겠다면서요(웃음). 그런데 3-4년 정도 브랜드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메시지라는 게 너무 일방적인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저희 의도는 그게 아니었지만, 프로파간다 같기도 했고요. 그래서 최근엔 같은 의미지만 ‘이야기’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이야기는 조금 더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거잖아요? 무비랜드에 와서 좋은 경험을 하고 다시 삶의 자리로 돌아갔을 때 그 시간과 경험이 또 다른 이야깃거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무비랜드는 모춘님의 취향의 집합체라고 보아야 할까요? 무비랜드를 만들게 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처음 무비랜드를 기획할 때 모베러웍스는 위기였어요. 외부로부터 신선하고 재밌다는 평가를 받았고 사람들은 우리가 뭘 내놓을까 궁금해했지만, 내부적으로는 넥스트가 보이지 않았죠. 방향을 잃었던 것 같아요. 모베러웍스가 잘 되면서 컨설팅 의뢰를 많이 받았는데 제가 어느 순간 브랜딩의 기술만 이야기하고 있더라고요. 모베러웍스가 내세웠던 메시지와 이야기가 아니라요. 그래서 가설을 세웠죠. 우리의 물리적인 공간이 있고 우리의 방식으로 공간을 이야기로 채워 판매하는 게 성공한다면, 파트너 비즈니스를 하는 데 있어서도 조금 더 우리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겠다.
그렇게 무비랜드를 기획했습니다. 무비랜드는 매달 새로운 큐레이터가 영화를 추천하고, 그 영화를 통해 철학과 가치관, 나누고 싶은 메시지들을 나누어요. 2층에는 큐레이터와 영화에 관련된 작업물들이 전시되어 있고요. 공간 전체가 큐레이터를 중심으로 하나의 이야기가 되도록 설계했습니다. 무비랜드는 단순히 영화를 보기 위해 오는 곳이 아닙니다. 저희는 신작을 상영하지도 않고 이제 웬만한 옛날 영화는 OTT에서도 볼 수 있잖아요. 제 개인적인 경험을 돌아봐도 영화에 집중하고 싶을 땐 집에서 혼자 보곤 했어요.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영화관을 가볼까?’ 생각했던 것 같고요. 영화는 되려 사이드디쉬 같은 거죠.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신다면?
혹시 극장 지어보셨어요?(웃음) 극장에 들어가는 게 정말 많거든요. 스크린을 사러가든 의자를 사러가든 만나는 모든 분들이 반대했어요. 길바닥에 돈 버리지 말라고 하셨죠(웃음). 공사 기간도 예상과 다르게 한참 길어지면서 예산도 맞추기가 힘들었고요.
솔직히 무비랜드를 만들면서 제 내면에는 ‘차라리 망해라’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모베러웍스를 시작했을 때의 동기가 너무 투명했기 때문에 방향을 잃었다 느꼈을 때 기분이 썩 좋지 않았거든요. 그렇게 번 돈을 시원하게 써버리고 싶은 충동도 존재했고요. 망할 때 망하더라도 “우리 재고 떨이합니다” 하면서 망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 여기 제 돈이 불타고 있어요!” 하면서 망하는 쪽을 선택한 거죠(웃음). 근데 이건 제 개인의 생각이고, 진짜 망하면 저를 믿고 따라온 동료들에게 큰 실례가 되잖아요. 어떻게든 커리어적으로 손해를 입히지 않기 위해서 정말 집중해서 공간을 설계했고요, 하반기부터는 개인이 아닌 브랜드를 큐레이터로 해서 운영해보려고 해요. 이걸 잘 해내서 동료들에게 우리의 방향이 맞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혹시 영화를 직접 만들 계획도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요즘엔 MoTV를 잘 만들어가고 싶어요. 무비랜드의 큐레이터들과 인터뷰하는 내용들을 MoTV에 업로드하고 있거든요. 큐레이터의 생각, 추천하는 영화, 그리고 2층의 전시가 결국 그 영상에 등장해 다 설명이 돼요. 그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세련되지 않더라도 우리만의 미디어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춘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치 그가 마운드 위 투수처럼 느껴졌습니다. 기념품에 대한 취향이 브랜딩에 대한 철학으로, 그 철학이 다시 무비랜드로 이어지는 과정이 꼭 승부처마다 변화구를 던지며 경기를 이어가는 투수 같았거든요. 깊어지는 안목과 함께 그가 써내려갈 앞으로의 이야기들이 더욱 기대됩니다.
TMT에 참가한 독자들과 2부에서 함께 나눈 이야기들은 비하인드 콘텐츠로 7월 12일 업로드 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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